패션사업부 위상 '뚝'…제일모직 색채 지우기?
힘 받는 삼성물산 패션 사업부 정리설
2022년까지 매출 1조 목표로 한 롯데GFR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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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옛 제일모직 패션부분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서현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패션업계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 실적 악화가 지속해 온 탓에 삼성물산이 패션부문을 떼어낼 가능성은 꾸준히 거론돼 왔다.
이서현 사장의 퇴진 이후 삼성물산은 패션부분의 수장을 따로 선임하지 않았다. 삼성물산이 건설 등 주력사업 위주로 재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 패션 존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패션 분야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롯데그룹이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물산은 이달 1명의 사장 승진(김명수 EPC 경쟁력강화 TFT 사장)을 비롯해 19명의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삼성물산은 '현장 중심 성과주의 인사' 기조를 내세우며 총 19명의 임원 승진 인사 중 건설부문에서 12명, 상사부문에서 5명, 패션부문과 리조트 부문에서 각각 1명의 상무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물산의 패션 부문장을 맡고 있던 이서현 사장은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 인선은 없었다.
이서현 사장의 모든 경력이 '패션'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사장은 삼성패션의 독자 브랜드인 '빈폴'과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에 상당한 공을 들이며 패션부문에 애착을 보였다. 반면 패션부문이 삼성물산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6% 남짓이다. 매출액은 연평균 1조7000억원 수준이지만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서현 사장이 물러난 이후 새로운 인선도 없을 뿐더러 이렇다 할 회사의 공식 입장이 없다는 것은 삼성그룹이 사실상 패션 부문에 더 이상 힘을 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고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옛 제일모직이 전신이다. 삼성물산의 이번 인사가 '더 이상 패션부문에 대해 대대적인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만큼, 일각에선 삼성물산이 기존 '제일모직'의 색채 지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회사 측은 "(이서현 사장의 퇴진은) 실적 부진이 원인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관련 업계에선 삼성그룹이 사실상 패션사업 부문을 정리하는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최근 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한 홍역을 치르면서, 기존 제일모직에 대한 주목도를 낮추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패션사업부 정리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사업부 구조조정에 앞서 오너 일가가 먼저 떠나는 삼성그룹의 인사 특성상 앞으로 패션 사업부 향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삼성물산은 자체 브랜드 빈폴, 갤럭시와 같은 오랜 기간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자체브랜드와 2012년 론칭한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 외에 발망(Balmain), 띠어리(Theory), 콜롬보(Colombo)와 같은 해외 명품 브랜드 약 15개를 수입하며, 신세계에 이어 많은 브랜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정리수순을 밟는다면 패션업계에 상당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브랜드들이 예상보다 시장에서 자리잡지 못하면서 실적악화가 계속되자 수년 전부터 매각을 고민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금여력이 있는 대기업 계열사 등이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매물로 등장할 경우, 패션 부문에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롯데그룹은 유력한 원매자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롯데는 삼성물산의 패션부문에 수년 전부터 관심을 보여왔으나 거래가 성사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롯데의 패션부문 확장에 대한 의지는 상당하다. 올해 6월 패션사업 강화를 위해 여성복 브랜드 나이스클랍으로 유명한 계열사 엔에프씨(NFC)에 롯데백화점 글로벌패션(GF) 부문을 합쳐 롯데지에프알(롯데GFR)을 출범했다. 롯데GFR의 올해 추정 매출액은 약 2000억원 수준인데, 그룹은 2022년까지 적극적인 패션브랜드 M&A를 통해 매출 규모를 1조원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롯데GFR은 현재 겐조(GENZO), 소니아리키엘(Sonia Rykiel), 아이그너(Aigner) 등 명품 브랜드를 10여개를 수입하고 있고, 나이스클랍과 티렌과 같은 자체 브랜드를 보유 중이다. 40여개의 수입 브랜드를 보유한 신세계인터내셔널과 삼성물산에 비해선 다소 뒤쳐져 있단 평가를 받아왔다.
다양한 해외 브랜드를 삼성물산으로부터 넘겨받는다면, 롯데그룹이업계 수위권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삼성물산이 패션부문 정리에 나설 경우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체적인 브랜드가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점, 인수업체들이 라이선스 브랜드 인수에 대한 부담을 갖는다는 점 등은 제약 요인이다. 인수 업체 입장에선 굳이 실적이 나지 않는 수입 브랜드의 라이선스 계약을 넘겨받느니, 계약기간이 끝날 때 즈음해 유리한 조건의 새로운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단 해석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삼성물산 패션사업부의 주력인 에잇세컨즈의 처리 문제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삼성물산은 아시아 시장 3위권에 드는 SPA 브랜드로 키우겠다며 에잇세컨즈를 론칭했으나, 최근 실적부진에 시달리며 성장의 발판이라 여겼던 중국시장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폐점했다.
유력한 원매자 롯데입장에서도 굳이 에잇세컨즈를 인수할 유인은 없어 보인다. 롯데쇼핑은 일본의 대표적인 SPA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부터 2018년 8월까지 매출액은 1조3700억원, 영업이익은 234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11%, 영업이익은 33% 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 입장에서는 유니클로 지분이 있는 상황에서 에잇세컨즈까지 떠안을 경우 '카니발리즘'(제살 깎아먹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가 브랜드 확장을 위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인수를 심도있게 검토해 왔고, 패션부문 확장 기조를 비춰볼 때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질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다만 유니클로가 독보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잇세컨드와 같은 SPA 브랜드를 운영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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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12일 15:3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