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인베브, 수입맥주 및 크래프트 맥주 확대 반겨
실제로 주요 IB들이 오비맥주 매각 가능성 타진중
결국 핵심 인수 후보로는 롯데가 유력
일부 인수 및 FI 유치 등으로 부담 줄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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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 인수를 위해 지불한 58억달러는 전혀 아깝지 않다. 앞으로 다시 한국에서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오비맥주를 어렵게 되찾은 만큼 우리는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지난 2014년 4월,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재인수하면서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카를로스 브리토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4년여가 지난 지금,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 1위 오비맥주는 때 아닌 매각설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매각설은 지난 9월부터 불거졌고 11월 들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세계그룹이 오비맥주 인수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관련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오비맥주는 물론 인수 대상자로 거론된 신세계그룹도 이를 적극 부인했다. 오비맥주는 향후 근거 없는 루머에 대해 진원지 추적을 비롯한 법적 조치 등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그런데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오비맥주 매각설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있다. 실제로 몇몇 글로벌 IB들이 AB인베브에 오비맥주 매각에 대해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AB인베브가 이에 대해 ‘노(No)’라는 확답을 하지 않아 매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국내 IB들은 오비맥주 의중과는 무관하게 관심을 보일만 한 후보자를 찾고 있다.
국내 맥주업계 부동의 1위인 오비맥주가 매각설의 주인공이 된 배경은 무엇일까. 국내 주류 시장의 환경과 AB인베브의 전략 변화 등이 꼽힌다. 회사 측은 매각설 자체를 부인하고 확산을 막으려고 하지만 주변에서 회사를 조용하게 놔두지 않을 상황이다.
1. 예전만 못한 '카스'의 브랜드 가치…시장은 바뀌었다
AB인베브가 보기에 오비맥주를 다시 인수했던 4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국내 주류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었고, 특히 국산맥주 인기가 크게 감소해 과거 같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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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수요는 2010년 이후 경제 및 인구 성장률 하락, 내수경기 둔화, 음주 자제 트렌드 등의 요인으로 뚜렷한 성숙기에 진입했다. 특히 전체 주류 출고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맥주는 2016년부터 국산맥주 감소분이 수입맥주 출고량을 웃돌면서 전체 출고량이 줄고 있다. 2017년에는 수입맥주 출고량은 약 48% 증가했지만 국산맥주 출고량이 약 8% 감소하면서, 전체 맥주 출고량은 2016년 대비 2.2% 감소했다.
한국기업평가가 통계청ㆍ국세청ㆍ한국주류산업협회ㆍ각 사의 공시자료에 기초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2017년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수입맥주의 점유율은 각각 55%, 25%, 5%, 15% 수준으로 추산된다. 소매시장에선 이미 수입맥주 판매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여기에 각 사의 수입맥주 유통분을 합하게 되면 수입맥주 비중은 2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앞으로 이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오비맥주는 확고한 국내 1위라고는 하지만 최근에는 ‘카스’의 성장보다는 AB인베브의 라인업을 활용해 수입맥주 판매가 늘어난 점이 주효했다”며 “수입맥주 시장 성장으로 ‘카스’ 브랜드 가치나 AB인베브 내에서 오비맥주의 존재감도 재인수 당시보다 약해진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주류업계와 금융시장에선 AB인베브의 오비맥주 재인수 목적이 지난 2001년 때와는 다르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2014년 기자간담회에서 카를로스 브리토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오비맥주 인수를 통해 세계 수준의 맥주를 한국 시장에 들여올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 대한 강화에도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말해 한국을 AB인베브의 아시아 지역 진출의 교두보를 삼겠다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그 라인업은 AB인베브 산하의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이지 카스는 아니라는 얘기다. 카스도 해외 수출을 하지만 AB인베브 전체 비중에서 그 수준은 매우 미미하다. 반면 AB인베브 브랜드의 국내 마케팅 확대, 그에 따른 점유율 증가는 눈에 띈다.
오비맥주가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을 들여와 판매한 상품매출(주세제외)은 2014년 555억원, 2015년 801억원, 2016년 1116억원, 2017년 1821억원으로 4년 새 328% 증가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올 1월부터 미국 맥주에 대한 수입관세가 없어졌고 올 7월부터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맥주도 무관세가 적용돼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국내 맥주 시장의 타깃이 2차 영업선(술집, 식당)에서 가정으로 이동하고 있고 수입맥주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며 “AB인베브가 그룹 산하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를 활용해 발 빠르게 대응해 맥주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전했다.
2. 글로벌 브랜드 수입 늘리는 AB인베브, 국산 크래프트 맥주까지 영역 확대
4년간 AB인베브의 경영 방식을 미뤄보면 한국 시장 전략에 변화가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2014년 브리토 대표는 “앞으로 한국에 더 투자할 수밖에 없으며,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추가적인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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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의 지난해 매출은 1조6635억원, 영업이익은 494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30%에 육박한다.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영업이익률은 4.6%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오비맥주는 연구개발(R&D) 및 생산설비 투자에 거의 비용을 쓰지 않았다. 그 새 오비맥주가 AB인베브에 현금으로 지급한 배당금은 7000억원이 넘는다.
AB인베브의 '친정체제'가 강화되면서 오비맥주의 영업방식도 바뀌었다는 평가다. 재인수 2년만인 2016년, 국내 영업통들이 떠나고 그 자리를 AB인베브 출신들이 채웠다. 국산 맥주의 경우 국내에서 도매상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활동이 점유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통·영업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했어야 한다. 맥주 시장 트렌드 변화에 맞춰 가정용 수입맥주를 타깃으로 삼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카스에 대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쳐봤지만 그것이 카스의 추가적인 시장점유율 확대를 이끌진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수입맥주 시장이 커지고 있는 한국은 이제 AB인베브의 다양한 제품을 팔 수 있는 주요 수출 시장이 됐고 AB인베브는 앞으로 이런 전략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산 맥주의 세금 이슈도 있다.
현 맥주세 방식은 '종가세'다. 종가세는 최종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세율 72%를 적용하고 있다. 최종가격에서 국산맥주와 수입맥주 간에 차이가 발생해 국산맥주가 더 불리한 상황이라 맥주업계는 술의 용량 또는 알코올 농도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로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종량세 개편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 상황과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AB인베브는 자사 브랜드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최근 AB인베브의 동향도 유심히 지켜볼 만 하다. AB인베브는 맥주 시장 트렌드에 맞춰 구스 아일랜드(Goose Island), 엘리시안(Elysian), 블루포인트(Blue Point) 등을 인수한 이후 크래프트 맥주 부문을 키우는 데 여념이 없다.
비단 해외에서만이 아니다. AB인베브는 2016년 국내에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전문 법인인 ZX벤처스를 설립했다. ZX벤처스는 AB인베브가 대륙별 혹은 각 나라별 크래프트맥주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별도로 두는 법인이다. 오비맥주와 마찬가지로 AB인베브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 ZX벤처스가 수입하는 구스 아일랜드 맥주는 '구스 IPA', '혼커스 에일', '소피', '구스 312' 등 총 14개 브랜드다.
ZX벤처스는 올해 4월 국산 크래프트 맥주 기업 ‘더핸드앤몰트’ 지분 100%를 인수했다. 핸드앤몰트의 맥주를 국내 시장에 활발하게 유통하는 동시에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 팔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AB인베브가 더핸드앤몰트 대표 제품을 오비맥주 광주공장에서 생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매각설이 나왔을 당시 AB인베브가 카스를 생산하는 이천, 청원공장만 팔고 호가든, 버드와이저 등 글로벌 브랜드의 아시아 생산을 전담하는 광주공장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3. '카스' 브랜드 가치는 지금이 정점…롯데, 다시 한번 뛰어들까
오비맥주 매각설은 AB인베브의 한국 시장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카스를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익성이 높은 글로벌 브랜드 맥주와 크래프트 맥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오비맥주 매각설은 카스 브랜드의 기업가치가 지금이 최고점이라는 판단 하에 ‘카스 EXIT(투자회수)’라고 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니 브리토 대표의 말대로 AB인베브가 한국에서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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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가 ‘카스’에 관심을 보이느냐가 문제다.
앞서 매각설 당시에 언급됐던 신세계는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온라인 시장 집중 투자 계획을 밝힌 상황에서 조단위 투자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대중성을 지닌 카스 브랜드가 ‘프리미엄’을 내세우는 신세계의 방향성과는 결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KKR 전례처럼 재무적투자자(FI)도 언급한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들이 다수다. 사모펀드(PEF)가 인수하려면 시장의 성장성과 차후 매수자 확보가 담보가 돼 있어야 한다. 현재 맥주 시장의 트렌드를 감안하면 몇 년 후에 엑시트를 장담할 수 없다.
결국 IB업계가 쳐다 보는 곳은 롯데다.
롯데는 2009년 오비맥주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KKR-어피너티 연합군에 고배를 마셨다. 이후 롯데는 직접 맥주 시장에 진입했고 대규모 자체 자금을 들여 생산설비를 확충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롯데칠성음료의 주류부문은 맥주사업에 진출한 2014년 이후부터 수익성이 하락했다. 2017년에는 2공장 증축에 따른 고정비 확대와 ‘피츠’ 출시로 인한 판촉비 부담 증가로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맥주 부진 때문에 롯데칠성음료의 신용등급은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경영에 복귀한 신동빈 회장 입장에선 뼈아픈 결과다. 시장에선 롯데의 인사 쇄신, 그에 따른 식품 부문의 대규모 투자와 대형 M&A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실제로 연말 인사에서 식품BU장을 교체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롯데가 필요한 것은 오비맥주가 아닌, ‘카스’다. 롯데는 이미 맥주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는 만큼 앞서 언급한 대로 카스 브랜드와 생산 시설 일부만 인수하면 된다. 거기에 롯데와 손을 잡고 싶어하는 국내외 재무적투자자(FI)는 넘친다. 의지만 있다면 가성비 좋게 맥주 업계 1위에 올라설 수 있고, 그룹의 유통망 활용은 덤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카스 브랜드를 확보하게 되면 ‘청량한 카스’와 ‘묵직한 클라우드’라는 라인업을 구축할 수 있게 되고 시중에서 잘 알려진 ‘카스처럼’처럼 소주 ‘처음처럼’과 함께 소맥 라인업도 완성된다”며 “독과점 문제의 경우 롯데주류의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고 사실상 실패작인 ‘피츠’를 포기하면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오비맥주 매각설은 어디까지나 개연성이다. 하지만 각 주체들 입장에선 서로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는 딜(Deal)이기도 하다.
AB인베브는 카스 효과를 충분히 봤고 이제 자체적인 시장 공략이 가능해졌다. 그동안의 배당 성향을 감안하면 이미 배당한 7000억원에 더해 1조원 정도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카스 브랜드 매각은 인수 자금 상당 부분을 회수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AB인베브는 브랜드를 사고 파는 데 능하다.
롯데 입장에선 숙원이었던 국내 맥주 1위 자리로 단숨에 등극할 수 있다. 더불어 국내 투자 확대와 고용 증가, 더 나아가 외국계 기업에 넘어갔던 국내 기업을 되사와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는 점을 정부와 여론에 어필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배당, 세금 등 외국계 기업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불식시키고 오비맥주를 다시 우리 품으로 가져올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오비맥주가 내년 M&A 시장을 달굴 잠재적 대형 딜로 부상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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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