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과 낙관론, '실력' 둔 해석 갈려…"경쟁사 죽이기" vs. "기술 초격차"
"제일 무섭다" SK하이닉스 낸드 적자전환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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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반도체 경기가 안 좋다는데 어떤가"(문재인 대통령)
"좋지는 않지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이 이런 소리하는 게 제일 무섭다"(최태원 SK그룹 회장)
"이런 영업 비밀을 말해버렸네"(이재용 부회장)
지난 15일, 재계 수장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 방문했다. 경내를 산책하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반도체 대화'가 화제다.
단순한 재계 수장 간 농담이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반도체 업계의 체감은 다소 다르다. 올해부터 한 치 앞이 불확실한 산업 전망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 글로벌 선두업체인 삼성전자의 의사결정이 업황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국내외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매 분기 투자설명회(컨퍼런스 콜)에서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김기남 부회장의 단어 선택과 어조 하나하나에서 함의를 읽어내 전망 보고서를 작성한다. 짧은 발언이었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대화가 주목받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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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밝힌 삼성전자의 ‘진짜 실력’을 두고 설왕설래다.
올해 이후 반도체 업황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의 실력 발휘를 '경쟁사 견제 본격화'로 해석한다. 경쟁사와 신규 진입업체에 언제든 사이클이 급변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고, 자사의 점유율과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공격적인 전략으로 선회할 것이란 예상이다.
지난해는 반도체 업황이 유례없는 슈퍼사이클을 보였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호황 이후 전략을 어떻게 짤 지를 두고 첨예하게 갈렸다. 그간 삼성전자가 매출·점유율 극대화 대신 '수익성 위주' 전략을 폈지만 업계 전반의 호황으로 경쟁사까지 그 혜택을 누리자 유일한 '시장 조성자' 역할을 맡았던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업황 둔화를 견딜 체력 측면에서도 삼성전자는 압도적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후속업체 간 낸드플래시부문(낸드) 원가 차이를 최대 30%까지 내다본다. 낸드의 시장 가격 하락이 가속되더라도 삼성전자는 소폭의 이익을 유지할 수 있지만, 중국 등 신규 업체의 진입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업황 하락 폭은 급격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야성적 경쟁의 부활’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업황은 시장 예상보다도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59조원을 기록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올해 33조원으로, 21조원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9조원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낸드부문 적자 전환을 예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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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시각을 펴는 투자자들은 미·중 무역분쟁 등 외부 변수로 인한 올해 실적 둔화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하락 기조가 길었던 과거와 달리 내년도 이후 빠르게 호황이 되돌아 올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부터 글로벌 반도체사들이 투자 규모를 약 20% 가까이 줄이는 데다, 5G‧AI 등 수요 증가는 이미 '상수'가 됐다는 점에 무게를 둔 의견이다.
투자 축소안은 구체적으론 삼성전자가 화성 일부 D램 설비를 이미지센서(CIS) 생산 설비로 전환해 공급량을 줄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공급 과잉이 예상되는 낸드 부문의 일부 설비를 중국 시안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청주에 이은 국내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선정을 늦춰가며 투자 시기를 조율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대규모 국내 투자를 독려하는 정부 기조는 변수다.
삼성전자의 ‘실력’은 오히려 기술‧원가 경쟁력 등 중·장기 측면에서 후속업체와의 격차 확대로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 사 모두 차세대 기술로 꼽힌 노광장비(EUV)를 적용한 D램 양산 시기를 앞당기고 후속업체와 낸드분야에선 원가 절감 폭이 큰 쿼드레벨셀(QLC) 공정 기반 SSD 양산에 집중하면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에서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반도체 대화' 이벤트가 부각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수의 국내 업체가 시장을 과점 중인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한국 D램사들의 가격 담합 조사에 나서는 등 수요처들이 가격을 두고 트집 잡는 상황에서 대화를 공개해 작은 빌미라도 줄 필요는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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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16일 13:0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