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헤지 비중도 역대 최고 기록
발행어음도 금리 경쟁 '치킨 게임'
"믿을 건 이자수익뿐" 작은 은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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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수익성을 끌어올렸던 대형증권사들이 올해에도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쉽게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신용 익스포저(위험 노출)가 커진만큼 관련 이자수익은 꾸준히 늘어나겠지만, 그 외 다른 부문에선 수익성을 키우기 쉽지 않아 보인다.
주식연계증권(ELS)으로 대표되는 파생결합상품 발행·운용을 통한 수익 창출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투자금융(IB) 부문에 힘을 기울인다 해도 '거래 기반'(deal base)이라는 업종 특성상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블루오션으로 여겨졌던 발행어음업엔 이미 역마진 공포가 엄습했다.
2018년 연말 기준 주식형 파생결합상품(ELS, ELB) 발행 잔고는 약 73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신규 발행 규모가 2017년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많기도 했지만, 일부 ELS의 조기상환이 지연되며 발행액이 상환액을 크게 앞질렀다. 이는 증권사들이 반길만한 상황이 아니다. 파생결합상품의 수익 구조는 '조기상환→발행→조기상환'으로 이어지는 빠른 순환을 통해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들은 2018년 3분기 누적 기준 1조1500억여원의 파생관련 손실을 냈다. 2017년 같은 기간(755억원 손실)의 14배였다. 국내에서 파생결합상품 발행 잔액이 가장 많은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파생운용이 포함된 트레이딩 부문 손익이 2018년 1분기 526억원, 2분기 803억원에서 3분기 150억원으로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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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후 국내 대형증권사들은 파생결합상품 운용에 대한 익스포저도 크게 늘려왔다. 파생결합상품은 목표 수익률 제공을 위해 상품을 매입하며 동시에 헤지(Hedge)를 하는데, 이를 외부에 위탁하는 '백투백 헤지'대신 손익이 자사에 귀속되는 '자체 헤지' 비중을 키운 것이다.
5대 초대형금융투자사업자(초대형IB)의 주식형 파생결합상품 자체 헤지 비중 평균은 70%에 육박한다. 2년 전 50%를 넘긴 이후 지속적으로 비중을 늘렸다. 삼성증권은 90%를 넘어간다. NH투자증권도 원금비보장형 ELS의 경우 100% 가까이 자체 헤지를 하고 있다. 파생결합증권 발행 규모 2조원 이상을 보유 중인 자기자본 1조원 안팎 중견 증권사들의 평균 자체 헤지 비중은 40%를 넘지 않는다.
2016년 자체 헤지 실패로 2000억원의 손실을 낸 한화증권의 사례처럼 자체 헤지는 대형사에도 '양날의 검'이라는 지적이다. 파생결합증권 발행 과정에서 홍콩H지수 등 해외 특정 지수에 70% 이상을 의존하는 상황에서 최근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되는 등 대외 변동성이 여전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변수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2018년 9월말 기준 매도파생결합증권(DLS 포함) 미상환잔액이 108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증권사 자기자본의 220%에 달한다"며 "향후 잠재적으로 부담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형IB의 새 수익원으로 희망을 모았던 발행어음도 이미 레드오션(초경쟁시장)이 됐다는 분석이다.
발행어음 1호인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4분기 시장 추청 3000억원 안팎의 발행어음을 추가로 판매했다. 발행 잔액은 3조7000억원이다. 3분기까지 20% 이상이었던 분기 판매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7월 NH투자증권이 경쟁자로 등장한 게 변수로 풀이된다. NH투자증권은 연 2.5% 수익률의 적립식 고금리 발행어음계좌를 무기로 2018년 하반기에만 1조8000억원어치의 발행어음을 판매했다.
금리 경쟁은 이미 '치킨 게임' 양상이다. 연 2.5% 적립식 발행어음에 고객을 빼앗긴 한국투자증권은 연 3.0% 수익률 적립식 발행어음을 내놨다. 그러자 NH투자증권은 최근 연 5.0% 수익률을 내건 적립식 발행어음을 한정 특판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에서 추정하는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의 발행어음 마진은 1.5~1.8% 수준이다. 발행어음 운용 수익률이 연 4.0~4.1% 수준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연 5.0%의 수익을 고객에게 주면 역마진이 발생한다. 올 하반기에는 KB증권까지 발행어음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커 한국투자증권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사활을 걸고 있는 IB부문도 한계가 명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년간 IB부문의 성과는 위험자산 투자를 대폭 늘린 덕분이었다. 이미 대형IB 7개사의 총위험액 대비 영업용순자본 비율이 192%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자본확충 없이 위험투자를 더 감행하긴 어렵다. 150%선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통한다. 국내 신용평가업계에서 이를 투기등급(신용등급 BBB 미만) 기준선으로 삼고 있는 까닭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인원과 자본을 늘린다 해도 IB 속성상 거래를 따내지 못하거나 참여할 수 없어지면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거래는 국내외 경기와 산업동향, 자금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다 거래를 '창조'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올해 목표 실적을 내는 게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결국 대형증권사가 기댈 곳은 여신 규모 확장에 따른 이자수익 정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침체 우려에 따라 시장금리가 떨어지면 지난 2018년 3분기처럼 누구도 예상 못한 대규모 평가이익을 다시 낼 수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형증권사가 결국 일각의 우려대로 '작은 은행'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며 "증권사 특성상 대형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신용이 낮은 기업에 자금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지방은행과 업태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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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