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위주 2014년 때 우려와 달라
개발 사업 등 고위험·고수익 몰두
1년 반 만에 신용익스포저 15조 증가
수익성 개선 대가로 건전성은 하락
위험 증가에 상응하는 자본 확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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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국내 증권가에 우발채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증권사 우발채무 급증에 대한 우려는 한두 해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소형 증권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요약되는 지난 2014년의 '1차 우발채무 우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이다.
이번 우려는 대형 투자은행(IB)으로 불리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해외 자산, 무등급 기업투자가 핵심이다. 자산규모가 커진만큼 우려가 현실화했을 때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18년 9월말 기준 국내 증권사 우발채무 규모는 총 34조원. 1차 우발채무 우려가 불거졌던 2013년말(15조8000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6조원 수준이었던 2010년말과 비교하면 6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중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IB가 보유한 우발채무만 24조5000억원이다. 1차 우발채무 우려 때엔 자기자본 1조원 미만의 중소형 증권사가 보유한 우발채무가 전체 증권업 우발채무의 40%에 육박했다. 2018년 9월말 기준으로는 중소형 증권사의 보유 비중은 14%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우발채무의 72%가 자기자본 3조원 증권사에 집중됐다. 4년만에 우발채무 우려의 주체가 바뀐 것이다.
대형 증권사들의 우발채무가 극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증권업 지형 변동 때문이다.
2013년 대형IB, 2017년 초대형IB 제도가 도입되며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대형화의 길을 걷고 있다. 자본확충을 위해 2013년 이후 10조원에 육박하는 유상증자가 이뤄졌다. 이는 이들 증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급락시키는 핵심 요인이 됐다.
대형IB들은 수익성 회복을 위해 고수익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로 채권 평가수익 증가세가 주춤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해외 PF 및 부동산, 신용등급이 낮은 BB~A등급 회사채 투자, 무등급(무담보) 기업 투자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기업여신으로 기대할 수 있는 마진율은 3~5%에 달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미래에셋대우가 증자를 진행하며 주주들에게 약속한 사항 중 하나가 '2020년까지 ROE 10%를 달성하겠다'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대규모 자본확충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수익성 개선이었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점점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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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수익성은 개선됐다. 대형IB 평균 ROE는 8% 수준(2017년)에서 10% 안팎(2018년 상반기)까지 올랐다. 기업금융을 비롯한 투자금융(IB) 수익이 이익 성장세를 주도했다.
공격적으로 자기자본을 집행하고 있는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2018년 1분기 3조7000억원 규모였던 투자자산이 3분기말 기준 5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인천 기업형임대사업 PF 같은 국내 투자는 물론, 미국 하와이 포시즌스·독일 쾰른 정부청사 오피스 등 해외 투자도 잇따랐다. 미래에셋대우 IB부문 수익은 2017년 하반기 1364억원에서 2018년 상반기 1587억원, 3분기 누적 기준 2403억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신에서 나오는 이자수익도 급증세다. 2017년 3월말 8조원 수준이던 증권사 기업여신 규모는 2018년 9월말 기준 14조원으로 1년6개월만에 75% 증가했다. 초대형IB 5개사의 지난해 3분기말 누적 기준 이자수익 규모는 3조1000억여원으로 전년 동기 2조5600억여원 대비 20.8% 증가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2018년 10월부터 증권사의 신용공여 한도가 자기자본의 100%에서 200%로 상향조정되면서 증권사의 총 여신 및 이자수익 규모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수익성 개선의 대가는 건전성 하락을 가져왔다. 불과 2년만에 대형IB들의 자산건전성은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2017년 상반기 말 기준 291%에 달하던 대형IB들의 총위험액 대비 영업용순자본 비율은 2018년 9월말 기준 192%를 기록, 10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같은 기간 총위험액 규모도 2조원 이상 늘어나 1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2015년말 16%에 불과하던 종합IB 자산 내 우발채무 비중도 2018년 9월말 23%로 늘었다. 대형 증권사 자산의 4분의 1은 우발채무란 소리다. 증권사 전체 신용익스포저도 48조2000억원으로 1년6개월 새 15조원이나 늘었다.
총 신용익스포저가 커짐과 동시에 동일 거래상대방 대상 대규모 약정 비중 확대, 장기 투자 확대, 무등급 기업대상 투자 확대 등의 현상이 포착됐다. 이는 신용집중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추후 투자 회수때 난항을 겪을 우려가 커짐을 뜻한다.
신용평가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증권사에서 무수한 신용 관련 투자가 이뤄졌는데 어디에 어떻게, 어떤 리스크를 감수하며 자금이 들어가 있는지 파악이 곤란할 정도"라며 "리스크 관리보다는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 자금이 집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투자처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자 증권사들은 리스크 측정이 더욱 어려운 해외·개발형 투자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최근에 KB증권은 미국령 괌에 위치한 호텔 지분 100%를 인수했다. KB증권은 현지에 설립한 리츠를 통해 호텔을 가족형 리조트로 재개발하고, 호텔롯데에 운영을 맡긴다는 계획이다.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복합리조트 개발사업에 천억원 단위의 중순위 투자를 집행했다. 대신증권은 미국 맨해튼의 한 빌딩을 매입, 증축한 후 직접 분양에 나선다.
한 증권사 PF 관계자는 "국내엔 물건이 없고 해외에선 조달금리가 은행에 비해 다소 불리한 조건이다보니 수익성 확보를 위해선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건 사실"이라며 "주로 토지대금에 후순위나 지분으로 투자한 이전의 저축은행 PF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우발채무와 신용익스포저 규모가 앞으로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R'(Recession ; 경기 침체)의 먹구름이 내려앉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투자 및 우발채무가 크게 확대한 상황에서 경기 침체와 금융시장 불확실성으로 투자 자산의 가치가 변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증권사의 손실로 전이되는 구조다.
한국기업평가 관계자는 "대형 증권사의 자본적정성이 빠르게 저하되면서 신용도 유지를 위해 감내 가능한 수준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위험증가에 상응하는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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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