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인사로 구조조정 축소
정체성·전문산업 이해도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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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자본시장에서 입지는 미미해졌고 강점이라던 구조조정에선 성과가 마땅찮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무게 중심을 구조조정에서 혁신성장으로 빠르게 옮기며 과거 위상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연착륙 가능성엔 물음표가 붙었다. 정부 기조에 부응해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하나 산업은행의 정체성이나 역량이 혁신기업 지원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구조조정부문을 구조조정본부로 축소했다. 대신 혁신성장금융본부는 혁신성장금융부문으로 확대했다. 파격적인 부행장 인사도 이뤄졌다. 본부장은 부행장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번엔 신임 부행장 5명 중 3명이 본부장 출신이다.
산업은행이 과거 산업화 시대를 호령했던 시대는 저문 지 오래다. 기업들은 시설 자금을 빌리려 하지 않는다. 자본시장에서 산업은행의 영향력도 줄었다. 민간 영역과 마찰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긴 했지만 역량 자체가 줄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동걸 회장이 돈을 많이 벌어오라 독려해도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구조조정 분야도 힘이 빠지긴 마찬가지다. 한국GM을 눌러 앉히는 등 성과가 없진 않았지만 논란이 더 많았다. 특정 기업 특혜나 도덕적해이 논란이 이어졌고, 이후에도 기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잘 해서 일을 맡았다기 보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면이 컸다. 정부의 기업 연명에 산업은행이 활용되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자회사 수빅조선소는 최근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두 해 전만 해도 시중은행은 한진중공업의 상환 여력이 저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산업은행은 지원을 결정했다. 한진중공업의 자산이 많다지만 처분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수빅조선소 회생도 그룹으로의 위험 전이를 막기 위한 뒤늦은 결정이란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 2인자가 직접 구조조정을 맡았던 기업으로 적을 옮긴 점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금호타이어 회장에 이대현 전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이 내정됐다. 차이융썬 중국 더블스타 회장이 직접 회장 자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수석부행장은 잔여 임기 9개월을 그 이상으로 늘릴 기회를 잡았다.
산업은행 퇴임 임원들의 안식처였던 대우조선해양은 입구가 막혔다. 한국GM에도 산업은행 출신 이사가 많았으나 허수아비 역할에 그치면서 눈총을 받았다. 투자 기업의 감사 등 임원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혹여 전문성을 인정받아 외부 기관으로 적을 옮겨도 예전 같은 효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은행 고위직들은 아직 영향력을 지닌 현직일 때 움직여야 다른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도 유상증자 방식으로 매각하고 산업은행의 지분이 남는 기업을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법의 제약을 피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출자회사 관리 및 매각 작업을 맡긴다는 취지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직 안팎에서 있었다.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가 참여해도 결국은 산업은행, 나아가 정부의 의중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별도 회사 하나 세운다 한들 뚝딱 회사가 살아나거나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차 떼고 포 뗀 산업은행이 바라보는 곳은 혁신기업이다. 이동걸 회장도 줄곧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성장은 집권 3년차 정부의 국정운영 핵심이다.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 정책금융기관 본연의 역할과 위상을 되찾으려 한다.
혁신성장금융부문 아래로 온렌딩(On-lending)금융실을 옮겨 왔고, KDB넥스트라운드를 담당하는 넥스트라운드실을 신설했다. 넥스트라운드는 스타트업, 벤처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이다. 전임 회장 때 출범했지만 이동걸 회장은 꾸준히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은행 안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조직으로 꼽힌다. 최근까지 지하철 객실 등에서 적극 광고를 진행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혁신성장 정책의 중추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산업을 이해하고 지원할 역량이 있느냐에 대한 평가부터 갈린다. 일부는 외부 보증기관의 보증 없이 기술을 평가하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곳은 산업은행 정도가 유일하다고 본다. 해당 부서에 힘이 실리면서 우수 직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는 반론도 있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어떤 바이오 기업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매출 규모만큼 기업가치를 평가 받았다며 그 이상의 투자를 원했지만 자체 평가로는 절반도 쳐주기 어려웠다”며 “산업은행이 벤처 시장 육성을 위해 힘쓰고는 있지만 전문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하루 아침에 역량을 끌어올리긴 쉽지 않다”며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면 정부가 늘린다는 스마트공장 설립 자금을 대는 역할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성장의 주체가 꼭 산업은행이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중소기업이나 유망 초기기업 지원을 맡을 만한 곳들이 많다. 산업은행이 금융기관이 아닌 투자자의 시각에서 기업을 키우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외부 자문 인사는 “대기업 성장은 규제 완화로 풀어야 하고, 중소·벤처기업 지원은 기업은행이나 벤처펀드 등 다른 주체가 나서야 한다”며 “산업은행이 먼저 움직이기보다는 다른 투자자들이 먼저 시장을 형성한 후 서서히 녹아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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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2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