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하락세…파운드리는 한계
시스템 반도체 기업에 눈 돌릴 듯
향후 수요, 전장·데이터센터 압축
네덜란드 'NXP'·독일 '인피니언'
미국 '자일링스'가 잠재 후보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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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역대급 초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설 움직임이 포착됐다. 타깃은 최근 고점 논란이 불거진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 변동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자동차 전장부품 등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키워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글로벌 업체들이 촌각을 다투며 주도권 다툼을 하는 상황이라 자체 육성보다는 대형 업체를 인수하는 편이 유리하다. 시장에선 NXP와 인피니언, 자일링스 등 시스템 반도체 업체가 삼성전자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M&A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외국계 컨설팅사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회사 한 곳의 현황을 살피고 있다. 인수를 염두에 둔 것인데 구체적인 대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거래가 성사될 경우 그 규모는 최대 5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르면 올 여름께 인수 여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M&A와 관련해선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쉬)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작년 4분기 실적은 시장 전망을 크게 밑돌았다.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데 사이클 하강 국면이 맞물렸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리 부문의 M&A를 추진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이미 시장 공급량을 좌우할 수 있는 입장에서 추가로 과점 사업자를 인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수탁생산)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으나 한계는 있다. 파운드리 사업만 하는 대만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종합반도체기업(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이다. 퀄컴, AMD,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고객이면서도 경쟁자다. 같은 기술과 값이라면 삼성전자에 맡기길 꺼릴 수밖에 없다. 과거 애플 물량을 받아와 자사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역량을 보강하는 데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결국 삼성전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곳은 시스템 반도체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 변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자체 파운드리 사업을 키울 물량도 확보할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기업 중에서도 자동차 전장부품과 연관성이 높은 곳이 최우선 인수 대상으로 거론된다.
자동차 산업의 축은 전기자동차로 옮겨 가고 있다. 각종 센서, 전자제어장치 등에 들어가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장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로 점 찍고 힘을 싣는 분야다. 글로벌 기업의 합종연횡도 치열하다.
삼성전자는 2017년 하만 인수로 일약 글로벌 전장업체로 떠올랐다. 대형 M&A를 통해 일거에 고객사를 확보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다. 몇 년간 반도체 호황을 겪으며 현금도 많이 쌓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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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NXP가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된다. 차량용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 업체다. 퀄컴도 2016년 인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퀄컴은 인수 가격을 최초 390억달러(약 44조원)에서 440억달러(약 50조원)까지 올렸으나, 중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된 바 있다. NXP는 삼성전자에도 협상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 외부 고객을 유치하기 어렵다면 가장 큰 손을 내재화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편이 낫다”며 “NXP는 이미 한 차례 시장에 나왔고 과거보다 시가총액도 줄어든 만큼 삼성전자가 노려볼 만 하다”고 말했다.
독일 인피니언(infineon technologies)도 잠재 후보다. 차랑용 반도체 부문에선 NXP에 이어 2위권, 세계 전력반도체 부문에선 1위로 사업이 다변화해 있다. 삼성전자가 수년 전부터 꾸준히 인수를 검토해 온 업체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경영권 지분 인수 시 공개매수를 진행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거래 대금은 시가총액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서버향(向)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분야 성장을 이끌었던 스마트폰과 컴퓨터 반도체는 점차 수요가 정체하는 모습이다. 데이터센터가 그 빈자리를 채워왔다. 작년 하반기부터 주요 고객들이 일시적으로 물량 확보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앞으로도 메모리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서버용 반도체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서버의 기능을 끌어올릴 대안까지 제시한다면 시장을 확대하는 데 더 유리해진다.
이 경우엔 미국 자일링스(Xilinx) 인수가 유력하다는 평가다.
자일링스는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부문 세계 1위 기업이다. FPGA는 일반 반도체와 달리 회로를 다시 새겨 넣을 수 있다. 값이 비싼 대신 유연하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기능을 바꿀 수 있다 보니 인공지능(AI) 환경에 적합하다.
이 기술이 데이터센터와 융합하면 데이터 저장 효율성이 높아지고 전력도 적게 소모한다. 일종의 가속기 역할을 한다. 기존 서버 하드웨어의 기능을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새로운 수요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글로벌 기업 중에선 인텔이 FPGA 2위 업체 알테라를 인수해 데이터센터용 서버칩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자일링스의 FPGA에 기반해 데이터 저장 효율성을 높인 스마트SSD를 개발하기도 했다. FPGA는 유연성을 갖는 반도체칩으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데이터센터에 채택되면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메모리 반도체 매출 증가 등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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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22일 08: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