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매번 한진그룹 일가 조양호 회장ㆍ조원태 사장 이사선임에 반대하다가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해에만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혹은 의결권 행사가 오히려 주무부처 장관 '전관예우'에 활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이후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상장 계열사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이 사내이사 후보로 등재될 때마다 항상 '반대표'를 행사했다.

조양호 회장은 2014년•2017년 한진칼•㈜한진, 2016년 대한항공, 2018년 진에어 사내이사 후보에 올랐다. 조원태 사장도 마찬가지로 2014년과 2017년 한진칼•㈜한진, 2015년과 2018년 대한항공, 2017년 한국공항 사내이사 후보로 올랐다.

국민연금은 이때 매번 이들의 이사선임을 반대했는데 그 근거는 지난해까지 유효했던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명시돼 있다. 행사지침 27조(이사의 선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한 의무수행이 어려운 자에 한해 이사선임을 '반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조 회장 부자의 이사 선임을 반대한 것도 이 같은 근거에 기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던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는 예외적으로 조원태 사장 연임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무렵 조원태 사장은 상장 계열사 2곳(㈜한진, 한국공항)의 사내이사직을 내려놓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주회사 한진칼의 사내이사로 등재되어 있었던 터라 대한항공 사장으로 연임되면 여전히 '겸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게다가 당시 국민연금 외부의결권 자문기관에선 조원태 사장에 대해 '회사기회유용 등 기업가치 훼손의 이유'로 반대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지난 수년간 유지했던 입장을 바꿔 의결권을 다르게 행사했다.

공교롭게도 이 주주총회때는 임채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외이사 후보로 올랐다. 임 전 장관은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국무총리실 시장을 거쳐, 2011~2013년 보건복지부 장관, 2015년부터는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으로 재직했다.

알려진대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주무부처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며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전반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전관예우'를 위해 의결권 행사를 도구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조원태 사장 연임에 국민연금이 찬성을 해줘야 임채민 이사의 대한항공내 입지가 확고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

투자은행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자문기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간의 의결권 행사내역을 뒤바꿀만한 한진그룹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갑자기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의아하다"며 "사실상 전 장관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국민연금은 원론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이번 사안에 대한 질의에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는 내부 정해진 의결권 행사 지침(현 수탁자책임활동에 대한 지침)에 따라서 행사하고 있다"며 "반대시엔 사유를 공시하는데, 찬성을 행사한 건에 대해선 따로 사유를 공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주문했고, 첫 적용 대상은 3월 주주총회를 두고 있는 한진그룹이 유력하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이에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최종 결정은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마련될 전망이다.

올해는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상정될 전망이다. 또 사외이사 가운데는 김재일(대한항공), 조현덕(한진칼), 김종준(한진칼), 성시철(한국공항) 등이 올해 임기가 만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