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국 산업동향 민감한 외국인, 국내 반도체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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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익 전망이 지난 석 달간 30% 이상 하향조정되며 끝없이 추락하던 국내 반도체업체 주가가 'V자 반등'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갑자기 시작된 외국인들의 러브콜이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
중국 '반도체 굴기'가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으로 삐걱대며 공급 과잉 우려가 줄어든 게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국과 중국의 산업 연관성을 '키 포인트'로 삼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수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달 초 나란히 52주 최저가를 기록한 직후 급반전했다. 불과 15거래일만에 삼성전자는 최저가 대비 22%, SK하이닉스는 30% 주가가 상승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세가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외국인들은 최근 한 달간 2조3000억원어치 이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사들였다. 연초 사다팔다를 반복하며 기술적 대응을 하는 듯 했던 외국인들은 지난 9일을 기점으로 매일 평균 1000억원 이상 반도체주를 쓸어담았다.
지난 9일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날은 중국 국영 반도체회사 푸젠진화반도체의 첫 공판이 있던 날이었다. 푸젠진화는 미중 무역분쟁 우려가 고조되던 지난해 11월 미국 법무부로부터 기소당했다. 미국 마이크론반도체의 영업 비밀을 훔쳤다는 혐의였다. 미국 상무부는 앞서 지난해 10월 푸젠진화에 미국 기업이 반도체 장비와 부품, 기술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푸젠진화는 공판에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미국 법무부는 외국 기업에 대한 형사 기소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 마련에 착수하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9일을 전후해 푸젠진화의 기술협력사인 대만 UMC가 D램 관련 기술인력을 철수시키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올해 반도체 시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던 푸젠진화는 결국 D램 설계 및 양산을 포기하고 생산설비를 파운드리(제조 전문 기업)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급 과잉과 이로 인한 가격 하락 우려에 직면한 국내 반도체기업에 큰 호재로 받아들여졌다는 평가다. 조선업과 철강업의 전례에서 보이듯 중국의 기술 추격과 생산 확충은 국내 주력 산업군에 큰 피해를 입혀왔다. 반도체도 그 '사정권' 안에 들었다가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중견운용사 운용역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만으로도 포화된 시장에 푸젠진화와 허페이창신까지 들어오면 D램 가격이 반 토막 날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며 "한국과 중국의 산업 연관성을 큰 틀에서 보고 투자를 판단하는 외국인들이 매수 타이밍이라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2017년 기준 국내 연간 총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4.8%이며 이중 78.9%가 중간재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국내 기업에 투자할 때 중국의 동향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이번 반도체기업 주가 급등 역시 이런 투자전략의 결과물로 풀이된다.
지난해 4분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외국인들은 하반기들어 중국 내 휴대폰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자 삼성전기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삼성전기의 주력 품목은 IT기기에 들어가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인데, 중국향 매출 비중이 최대 40%에 달했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기관투자가들은 외국인의 매도세에도 연말까지 낙관론을 펼쳤다. 지난해 10월 한달 동안 외국인들은 1조원어치의 삼성전기 주식을 내다 팔았다. 국내 기관이 4500억원, 개인투자자들이 5500억원의 물량을 소화했다. 국내 기관들은 11월에 접어들며 삼성전기 4분기 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기 시작하자 순매도로 전환했다.
한 연기금 주식운용 담당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디테일은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큰 그림에서 베팅을 해왔고, 국내 증시에선 이런 전략이 대부분 먹혔다"며 "반도체주 주가는 단기간 급등한만큼 조정을 거치며 손바뀜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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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28일 12:0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