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력차종 대부분 韓생산에 의존
현대차‧기아차 일부 차종 미국 생산 준비中
국내 생산 줄이며, 文 강조한 '광주형 일자리'도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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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한 해를 보낸 현대자동차 앞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큰 산이 남아 있다. 현대‧기아차의 제 1시장인 미국이 수입 자동차 관세부과를 결정하면, 사실상 국내 생산 차량의 대미(對美) 수출이 의미를 잃게 된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 주력 차종의 상당수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했는데 관세 쇼크에 대비하기 위해 주력 차종의 생산을 미국에 일부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광주형 일자리' 문제가 다시 떠오르면서, 현대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미국과 중국은 약 90일간의 무역전쟁 휴전에 돌입했다. 미국 상무부는 현재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자동차와 관련 부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중이다. '안보'라는 단어가 붙어있지만 사실상 득실(得失)을 따지는 의미에 더 가깝다.
상무부는 오는 2월 16일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조사 보고를 마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5월 중순까지 수입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상무부의 조사안에는 ▲모든 수입차와 부품에 대해 최대 25% 추가 관세 부과 ▲자율주행 및 전기차 기술에 관세 부과 ▲두 가지 방안의 중간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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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가 미국의 관세부과 방침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이 가장 큰 수출 대상국가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엘란트라(아반떼AD)‧투싼‧싼타페‧쏘나타‧코나 등이 가장 많이 팔리는데 앨라배마(Alabama)에 위치한 현지 공장에서는 3가지(엘란트라‧싼타페‧ 소나타) 차종만 생산한다. 이마저도 현지 공장에서 모두 소화하지 않고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판매 하고 있다.
기아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현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은 현재 미국 조지아(Georgia)주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현지판매에 의지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이 수입차에 최대 관세를 부과하면 현대‧기아차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국내 금융지주 자동차 담당 연구원은 "미국의 관세 조치는 어떠한 방향으로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며 "현대차와 기아차가 더 이상 국내에서 생산해 수익성을 맞추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도 이 같은 상황을 좌시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자동차 수출이 잘되려면 미국 관세 및 통상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와는 별개로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 내 주력차종의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생산 차량의 라인업을 확대해 미국 관세 조치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지 생산이 거론되는 차종은 기아차의 쏘울과 스포티지, 현대차의 투싼 등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기초 플랫폼을 공유하고,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이 서로 멀지 않아 각 공장에서 공동으로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대차 내부적으로 미국에서 잘 팔리는 차량의 국내 생산을 줄이고,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며 "이르면 오는 7~9월 사이에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이 방안이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과 충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안착을 위해선 무엇보다 국내 설비투자가 선행돼야 하고, 이에 따른 국내 생산도 늘려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와 미국 관세가 동시에 현실화하면 현대차는 국내 생산의 수익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을 더 늘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국내 생산 물량을 미국으로 일부 옮기게 될 경우엔 노동조합의 극심한 반발도 예상된다.
앞으로 늘어날 수소차 생산 물량을 국내 공장에 배정하는 방식 등의 협상카드를 현대차가 노조 측에 제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소차 홍보 모델'을 자청하며 수소차에 대한 플랫폼 지원을 약속한 만큼, 이 같은 협상 전략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현재의 수소차 및 관련 플랫폼 계획이 2040년까지인 중장기 계획인 탓에 실효성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대외 악재, 국내 판매 부진, 노동계와 갈등 등을 겪는 동안 현대차의 실적은 곤두박질 쳤다. 올해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국내외 공장가동률 ▲시장 점유율 ▲수익성 회복 여부 등 다소 빡빡한 신용등급 조정 조건(트리거)을 제시하고 있다. 판매부진이 지속하고 현재와 같은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현대차가 AAA의 국내 최고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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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1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