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성 입증 기대했지만 손실만 남아
업황 부진·사드 보복 등 복합적 요인
산은-KTB 관리 역량 부족 드러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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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브랜드 르까프를 운영하는 화승이 사모펀드(PEF)에 인수된 지 3년만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상업적 성과를 내겠다며 의욕적으로 투자했으나 업황 부진과 중국 사드 갈등 등 악재를 피하지 못했다. 펀드 운용사인 산업은행과 KTB PE는 산업 트렌드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화승은 1953년 설립된 국내 1호 신발기업 동양고무산업이 전신이다. 1980년 지금의 사명으로 바꿨고, 1986년 르까프 브랜드를 출시했다. 케이스위스(K-Swiss), 머렐(Merrell) 등 해외 브랜드 유통도 맡고 있다.
산업은행 PE와 KTB PE는 2015년 12월 2463억원 규모 케이디비케이티비에이치에스 사모펀드(KDB KTB HS PEF)를 결성해 화승을 인수했다. 구주를 인수하고 상환전환우선주(RCPS), 전환사채(CB)에도 투자했다. KTB PE가 투자 기회를 잡고 공동 투자자를 물색하다가 산업은행과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화승그룹이 출자금 절반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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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 투자는 기업재무안정 PEF가 아닌 경영참여형 PEF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았다. 화승은 실적이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정상기업이었다. 산업은행과 KTB PE는 경영참여형 PEF를 활용하되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더했다.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즉 기업가치를 높여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투자금으로 금융비용만 줄이면 기업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봤다.
이들은 신발 제조, 아웃도어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드는 시기였지만 반등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케이스위스와 머렐이 좋은 실적을 이끌었고, 자체 브랜드 르까프가 꾸준히 돈을 벌어다 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과 한 두 해 전만해도 아웃도어 투자가 첫 손에 꼽혔었다. 과거 등산 열풍, 워킹화 열풍이 불 때마다 관련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올렸다. 화승은 전국에 600곳이나 되는 영업망을 갖추고 있어 계기만 만들어지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만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화승의 영업망과 브랜드 가치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지원하면 실적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베트남 법인 화승비나(Hwaseung Vina)를 통해 생산원가 절감 등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두 회사 모두 화승 투자를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할 처지였다.
산업은행은 민영화 중단 이후 정책금융 역할 강화에 힘썼다. 민간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PE 업무는 기업재무안정 PEF 등 정책적 목적으로 제한됐다. 2014년 2000억원 규모 7호 펀드도 정책적 목적 아래 설립됐다. 시장에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PE로 거듭나기 위해선 ‘구조조정 기업에 투자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KTB PE는 예전엔 PEF 업계 인력양성소 역할을 했지만 최근 수년 간은 LG실트론, 전진중공업 등 회수에 애를 먹은 사례만 부각됐다. 블라인드 PEF 결성이 멈춘 지도 오래 됐다. 프로젝트 펀드로서 화승의 성공이 절실했다.
기대와 달리 화승은 유동성 압박을 버티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법원은 다음날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이달 중 화승 채권-채무 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다.
거래 관계자들은 '업황 악화'를 투자 실패의 첫 원인으로 꼽는다. 아웃도어 시장이 최근 수년 내 급격하게 위축됐고 경기 침체로 소비도 줄었다. 의류 시장은 고가의 명품과 저렴한 SPA 시장으로 양극화 하며 중간 가격대의 브랜드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 지난 겨울의 롱패딩 광풍에선 한 걸음 떨어져 있었고, 이후 대규모 생산을 했으나 올해 겨울엔 따뜻한 날씨에 직격탄을 맞았다.
화승은 2014년 아디다스의 주문자제작(OEM) 사업을 화승인더스트리에 양도한 바 있다. PEF가 인수하기 전이라 운용사의 경영 판단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매출 3000억원가량을 받쳐주던 사업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경기 변동성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도 있었다.
중국 사드 보복 여파도 컸다는 분석이다. KTB PE 측 관계자는 “화승의 매출 중 중국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는데 중국의 사드 보복이 일어나면서 타격을 입었다”며 “해외 라이선스 비용이 높아진 것도 부담이 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과거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영화엔지니어링, H&Q의 에스콰이어 등 PEF 투자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간 전례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블라인드 PEF 포트폴리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반면 화승은 개별 프로젝트 PEF 투자였고 투자 규모도 앞선 기업들보다 컸다.
이번 사태로 산업은행의 자회사 혹은 투자회사 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산업은행PE조차도 인력 이동이 잦고 투자를 집행했던 운용역들은 이미 자리를 뜬 지 오래다. 게다가 은행 차원에서 힘을 쏟는 분야도 아니다. 부행장급인사 등을 화승에 임원으로 부임시켰지만 내부갈등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생절차 신청 후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며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납품업체 피해는 안타깝지만 PEF에 증자하고, 그 자금을 유동성 위기 회사에 집어넣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분위기다. 화승그룹도 추가 자금 투입은 없다는 입장이다.
화승이 이왕 회생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에 향후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가 피해를 최소화하고, 브랜드 가치와 영업망을 지키기 위해선 빠르게 화승의 재무 상황을 개선하고 역량 있는 인수자를 찾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과거 화승그룹이 절반 가량 후순위 출자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화승의 실질 투자 가치는 크게 높지 않았다”며 “화승이 새 주인을 찾을 수 있느냐는 결국 가격에 달리겠지만 그리 무리한 가격이 산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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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2월 08일 15:2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