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나쁠 땐 'ISD 소송'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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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한진칼 경영참여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주주권행사에 나서고 있지만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해외서 국가에 준하는 조직으로서 받아온 세제 혜택이 줄어들거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생활 안전과 복지 증진을 위해 국가가 관리하는 기금이다. 보건복지부가 주무부처로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민연금사업을 주관한다. 법에선 일정한 경우 국민연금을 국가로 간주하기도 한다. 기금 운용 이익은 국고로 귀속되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이런 지위는 해외로 확장되기도 한다. 국민연금은 국가를 나타내는 이름(National)을 쓰고 관리 주체도 국가다. 해외서 사설 조직으로 오해 받기도 하는 사학연금이나 공무원연금보다 강하게 국가적 성격을 인정 받는다. 우리나라와 해외 투자국 사이에 상대 국가 혹은 국가 기관의 운용 이익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기로 협의한 경우엔 면세 혜택도 볼 수 있다.
가장 큰 투자 시장인 미국의 세법 규정(Section 892조항)은 해외 국가기관이 미국에서 얻은 소득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도록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상호 면세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미국 과세당국에 외국 정부나 기관이라는 현지 법률 의견을 담은 양식(W-8EXP)을 제출하고 면세자로서의 지위도 인정 받고 있다. 미국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상당한 면세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와 더불어 주식의 직접 운용 비중을 늘릴 경우 세제 혜택의 효과가 반감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대체로 외부 운용사를 통해 미국 자산에 대해 투자하고 있지만, 해외 직접 투자 비중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미국 기업 주식을 직접 보유하면서 경영에 관여하게 되면 국가 기관으로서 성격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출신 해외 투자 전문가는 “국민연금은 W-8EXP를 제출해 두면 미국서 발생하는 웬만한 세금은 면제받지만 미국 기업에 경영권을 행사하거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 사업행위를 하는 경우까지 혜택을 받긴 어려울 수 있다”며 “국가적 성격을 유지하려면 별도의 협약이 체결돼 있는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세워 투자하는 방안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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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이달 들어 한진칼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꿨다. 단기매매차익 반환 우려가 있는 대한항공에 대해선 경영참여 하지 않기로 했지만 현대그린푸드와 남양유업 등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도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독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에서의 경영참여 활동이 미국 과세당국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움직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국민연금의 본질은 기업을 거느리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이 국민연금의 미국 내 지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가정하면 배당 이익을 더 얻으려다 더 큰 면세 혜택을 놓칠 수 있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경영참여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1조원대 ISD를 제기한 상황이다. 이는 경영참여 사례는 아니었다. 경영참여 의지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경우엔 국민연금의 책임 소지가 더 명확해질 수도 있다.
대형 법무법인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는 “국민연금이 어떤 의견을 밝히거나 주주권을 행사했고, 이후 주가가 떨어졌다는 점 만으론 국가의 책임을 주장하긴 어렵다”면서도 “외국과 맺은 투자 협정에 위배되는 부당한 권력 행사라는 점이 입증되면 ISD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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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2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