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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반드시 대우조선해양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 조선업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선의에도 불구 이 회장의 청사진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 조선업 빅2 체제 완성이라는 변해선 안 되는 명제에 모든 것을 맞추려다 보니 '논리적 모순'이 적지 않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26일 산업은행 본점 기자실을 찾아 대우조선해양 M&A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에 대해 통과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는 안 될 확률보다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사소한 충격에도 수렁에 다시 빠질 수 있다. 주인이 바뀌는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그 성사가 담보돼야 한다. 대형 M&A에선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따진다. 이번 거래도 정부가 국내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에 해외 관련 국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일단 파트너를 점지하는 데만 몰두했다. 해외 승인은 사가는 사람이 알아서 풀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주도자이자 방관자인 모호한 정체성을 보였다.
현대중공업 역시 이런 문제를 알았다. 보통 조선사보다 발주처의 가격 협상력이 더 높다지만 LNG선 등 일부 선종은 다른 대안이 없다. 결합 승인을 얻어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밑질 것은 없다. 승인을 받으면 적은 돈으로 세계 2위 조선사를 안게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현상 유지는 가능하다.
이동걸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M&A에서 거짓 정보가 난무하면서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대우조선해양은 다시 산업은행 아래 20년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는 주장이다. 반면 애초부터 선택지를 좁힌 것은 산업은행이다. 반드시 조선사를 두 곳으로 줄여야 하는데 조선사 중에서도 의지가 있는 곳에만 기회를 줬다.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고 하는 삼성중공업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일부 대기업은 현대중공업과 같은 방식의 투자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산업은행의 연락을 받진 못했다.
이동걸 회장은 향후 1~2년은 수주가 개선될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이 M&A 적기라고 봤다. 반대로 보면 한 곳뿐인 원매자가 인수를 결정하기에 가장 유리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골치거리를 치운다면 후련하겠지만 두고두고 특혜 꼬리표가 달릴 가능성이 크다.
짧은 기간 동안 대우조선해양 인력 구조조정을 둔 판단은 달라졌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작년 하반기 들어 수주 증가를 근거로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산업은행 내부에선 잠깐 숨을 돌리니 다른 생각을 한다며 불편한 기색이 있었다. 자생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구조조정은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정성립 사장은 패싱 논란 끝에 사임했다.
몇 달 후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손을 잡고 나선 구조조정 이야기가 들어갔다. 이동걸 회장은 이미 두 조선사의 인력 구조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추가 작업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업종을 떠나 세계 1, 2위가 한 울타리에 있다면 공급 과잉은 필연적이다.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얻어내더라도 겹치는 선종을 축소하라는 등 조건부일 가능성이 크다. 수주 잔량이 얼마나 꾸준히 유지될 지 장담하기 어렵다. 조선업엔 환경 규제, 유가 추이, 선박 해체량 추이 등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다.
산업은행이 각종 부담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해양 M&A에 힘을 쏟는 것은 우리나라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사명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조선업 경쟁력 하락을 야기할 것이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가져온다면 해외 각국의 견제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복 사업을 덜어냈는데 일감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 이 회장의 언급대로 인력 구조조정을 최소화하면 수익성 하락도 피하기 어렵다.
조선 기자재 등 하청 업체들의 사업환경은 더 악화할 수 있다. 이동걸 회장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병렬 구조의 별도 회사로 경영될 것이고 이는 곧 저가 수주 근절, 협력사의 이익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는 '눈 가리고 아웅'식 기대다. 말이 별도 경영이지 한 그룹사 아래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업황이 꺾이면 그룹 차원에서 비용 절감에 나설 것이고, 첫 화살은 협력사들이 받을 수밖에 없다.
해외 경쟁당국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타격이 더 크다. 대우조선해양은 길게는 몇 년간 불안정한 지위 속에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된다. 현대중공업이야 경쟁사 부진으로 반사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한국 조선업 전반의 경쟁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회수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도 따져봐야 하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경영권 지분을 프리미엄도 받지 않고 현대중공업에 넘기고, 같은 규모의 2대주주 지분을 받아 온다. 그 자체로도 잠재적 손해다. 한국GM에서 애를 먹었던 점을 감안하면 전횡을 막고 경영에 관여할 여러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만 산업은행은 아직 말도 꺼내지 못한 분위기다.
이동걸 회장은 이번 대우조선해양 M&A에 직을 걸었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사심 없이 대우조선해양 회생에 힘 쓰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가지 명제에 꽂힌 나머지 다른 가능성을 너무 일찍 배제했다. 절차적으로도 실리적으로도 아쉬운 점이 많다. 이 회장의 선의(善意)에도 불구하고 조선업 경쟁력 제고라는 큰 뜻을 이루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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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2월 27일 17:00 게재]
입력 2019.02.28 07:00|수정 2019.03.11 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