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줄이자니 수익성 감소 불가피
사람 더 뽑자니 연봉체계 위반 우려
본사차원에도 문의 "묘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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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 근로시간을 맞추자니 생산성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익을 유지하려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그룹 내 연봉 체계에 반할 수 있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 근로시간은 지난해 7월부터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됐다. 국내 증권사들은 대부분 300인 이상이지만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올 하반기부터 제도 적용을 받는다.
외국계 IB도 52시간제 도입이 화두다. 300인 이하 5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부터 52시간제를 적용해야 한다. 100명 내외의 인력으로 꾸려가는 외국계 IB들이 이에 해당한다. 제도 도입 10개월을 앞두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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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IB는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하다.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 반면 구성원들의 근로 시간이나 노동 강도는 낮지 않다.
대형 M&A 자문을 따내려면 제안서 작성에만 1~2주가 꼬박 들어간다. 자문을 하게 되면 몇 개월간 그 일에 매달려야 한다. 언제 고객의 요청이 있을지 모르니 상시 대기 상태다. 기업공개(IPO)나 자금 주선도 거래가 진행되는 동안엔 밤샘 근무가 비일비재하다.
한 IB 대표는 과도한 근무를 막기 위해 야근 시 허락을 맡고 일정 시간을 넘겨서는 절대 일하지 말라 하기도 했다. 그 시간이 새벽 2시였다.
IB 인력 구조 상 한 명이 여러 거래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경사노위 합의대로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난다 해도 근로 시간 분산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법을 지키지 않기도 어렵다. 가뜩이나 금융당국의 외국계 IB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은 상황이다. 대표나 임원급들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수가 없다면 IB들은 근로시간을 지금보다 거의 절반을 줄여야 할 상황이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수익성 하락도 불가피하다. 한 국내 증권사는 금융지주 회장이 컴퓨터 셧다운으로 인한 이익 감소는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IB는 글로벌 본사가 이런 양해를 해줄 지 의문이다.
비는 시간을 보충하자고 인력을 무턱대고 충원할 수도 없다. IB 인력이 품귀 상태기도 하지만 각 하우스의 내부 규범 위반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 인력의 근로시간이 반으로 줄어들면 인력을 두 배로 늘려야 기존의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그러려면 연봉도 반으로 줄여야 하는데 각 IB 글로벌의 직급별 최저 연봉 기준을 맞추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웃나라의 예를 들어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일본은 4월부터 고도전문가제도를 시행한다. 작년 말 연 1075만엔(약 1억1000만원)을 받는 전문가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안을 확정했다. 금융상품 개발, 딜링, 애널리스트, 컨설턴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로사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고소득자의 근로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면에서 공감을 얻기도 한다. 본인 동의와 노사위원회 결의를 요건으로 해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줄였다.
한 IB 대표는 “52시간 도입을 앞두고 자문도 받고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다”며 “뱅커나 변호사 등 직종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IB 대표 역시 “아시아 본부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어떻게 할 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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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