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밑서 통합 꾀했으나 현대·SM 모두 시큰둥
정부 “통합 추진 안 했다…선사들이 합의할 문제”
원양선사 통합 요원…”대조양 M&A가 낫다” 푸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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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진해운 파산 후 해운업 재건의 기치를 내걸고 선사 통합을 추진해 왔다. 갈수록 대형화하는 글로벌 선사와 대등하게 맞서기 위함인데 핵심인 원양선사 통합에선 이렇다 할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로선 보다 큰 원양선사를 출범시키는 성과를 내면 좋겠지만 앞장 서기는 껄끄러운지 선사들에 공을 돌리는 분위기다. 원칙론에 얽매여 한국 해운업의 재앙을 불러 왔는데, 해운업을 다시 살리는 과정에서도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을 보이는 사이 시장의 불안감은 커진다. 밖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선사들의 부담도 늘고 있다. 갖은 비판을 받긴 했지만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M&A에서의 실행력이라도 보여달라는 주문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 해운업의 현실은 여전히 엄혹하다. 지난해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힘을 싣고 있지만 대형 글로벌 선사들 틈바구니에서 고전하고 있다. 세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선사들의 덩치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란 주장에 힘이 실렸다.
성과가 없지 않았다. 근해선사인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은 작년부터 컨테이너 부문 중심 통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 역내(인트라아시아) 항로는 글로벌 선사들의 진입이 가속화하고 있고, 내년 우리나라와 중국의 협약이 끝나면 중국 선사들도 쏟아져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 공세가 본격화 하기 전 대응에 나섰다는 평가다.
한국 해운업의 핵심인 원양선사의 통합은 불투명하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 관리 아래 들어온 후에도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낮아진 위상 탓에 해운동맹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덩치를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SM그룹도 대한해운을 꾸려온 경험이 있지만, 컨테이너 업황의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SM상선을 현대상선에 넘기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핵심인 미주 노선에서 두 곳의 한국 선사가 경쟁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다. 정부로선 두 선사의 통합이 하나의 성과이자 해운업 재건의 이정표일 수 있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오래 전부터 두 회사의 통합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정부도 물밑에서 두 회사의 의향을 묻는 등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검토에조차 이른 적이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해운업계에선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나섰음에도 어느 곳도 움직이지 않았다.
SM그룹은 SM상선이 덩치는 작지만 현대상선보다 내실이 있다고 본다. 배를 싸게 확보했으니 수익성도 더 나을 것이란 판단이다. 우오현 회장도 일관되게 통합이나 합병은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밝혀 왔다. 통합을 바라더라도 기존에 투입한 자금 정도는 회수하길 바랄 수 있다.
현대상선도 탐탁지 않아 하긴 마찬가지다. 작은 곳을 더하더라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지, 혹은 두 회사의 역량을 모두 활용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데 얼마일지 모르는 자금을 달라고 정부나 산업은행에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니었다.
전임 유창근 사장은 SM상선과 통합 이야기만 나오면 정부의 압박으로 보고 불쾌한 티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국책은행이 대주주인 회사의 수장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와중에 현대상선과 SM상선 간 통합 문제와 거리를 뒀다. 정부 주도 통합 이야기가 다시 거론되자 13일 해명자료를 통해 통합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가뜩이나 해양수산부 장관과 현대상선 수장이 교체되는 미묘한 시기다. 원양선사 통합 의제가 계속 유효할 것인지 점치기 어려워졌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오랜 기간 현대상선과 SM상선의 통합을 꾀했으나 두 회사 모두 버텼다”며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었는데 장관 교체까지 맞물리면서 추진 동력이 더 약해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통합을 주도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공을 선사들에 넘겼다. 선사 간 통합은 해당 선사들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통합하겠다고 합의해서 정부에 알려오면 금융지원 정도는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그 동안 두 회사가 움직일만한 확실한 신호를 주거나 명분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원양선사의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면 두 회사를 공식적으로 끌어들인 협상의 장을 만들어야 했다. 합치면 어떻겠느냐고 두 회사의 등을 떠민들 중간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주지 않으면 움직이기 어렵다.
통합을 위한 실사나 시너지 효과 검토도 선행돼야 한다. 이를 생략한 채 정부가 해운업 재건이라는 추상적 명분, 합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만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통합이 거론될 때마다 의지도 없는 선사들만 불확실성에 노출돼야 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선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원칙’을 공식화했다. 원칙을 고수하면 통합 작업은 더더욱 요원해질 전망이다.
오너 일가로부터 돈 몇 천억원을 받아내야 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에 얽매여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산을 날린 한진해운 파산 사태와도 어느 정도 닮은 구석이 보인다.
일각에선 지지부진한 해운업 재건보다는 각종 논란 속에서도 진도가 나아가고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낫다는 푸념마저 나온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그래도 대우조선해양 M&A는 조정하고 조율해서 결론을 내고 해결해 가지 않느냐”며 “제자리에서 말로만 티격태격 하는 것이 해운업의 아픈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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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13일 17:5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