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마진 4bp...연간 100억원 수익 시장
기금형 퇴직연금 등 도입되면 향후 1000조로 확대 기대
'트랙레코트 쌓자' 대형 증권사 잇따라 조직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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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위탁 운용관리(OCIO)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형 증권사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지금은 고작 연간 100억원 안팎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일 뿐이지만, 향후 수십배로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금 트랙레코드(실적)을 쌓아놓지 않으면 향후 10년간 1000조원 규모로 커질 OCIO 시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거란 절박감이 느껴진다는 평가다. 증권사-운용사간 밥그릇 싸움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주요 대형증권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따라 OCIO 관련 조직을 새로 설치하거나 확대 개편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기관영업본부 산하에 OCIO솔루션센터를 설치했고, KB증권도 OCIO전략팀을 신설하고 미래에셋자산운용 출신 송훈 부장을 영입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초 OCIO사업팀을 신설했다. 한국투자증권은 OCIO운용부와 OCIO컨설팅부를 운용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28일 설명회(PT) 진행 예정인 10조원 규모 고용보험기금 주간운용사 선정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투자증권이 맡고 있던 국토교통부 주택도시기금 주간운용사 자리를 NH투자증권이 1년 가까운 준비 끝에 가져간 건 업계에서는 '큰 사건'으로 통한다. OCIO는 이전까지 증권사들이 관심을 두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요 공적 기금의 운용을 대행해주는 OCIO는 사실 자산운용사의 먹을거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돈이 되는 사업도 아니다. 국내 OCIO 시장 규모는 현재 100조원정도로 추산되는데, 이 중 28조원 정도가 증권사들의 몫이다. 이 시장조차도 그룹 내 운용사의 위상이 높은 한국투자증권이 사실상 독식하고 있었다.
시장 규모 자체가 증권사들이 노리기엔 크지 않았다. OCIO를 통해 담당하는 자금의 규모는 크지만, 운용 마진이 3~4bp(0.03~0.04%) 수준으로 매우 박하기 때문이다. 28조원을 통으로 운용해도 떨어지는 수수료는 연간 1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OCIO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자산운용사들도 OCIO를 수익 사업이라기보단 트랙레코드 및 대외 신인도 제고 용도라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대형증권사들이 잇따라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일까.
금융업계에서는 OCIO 시장의 확장잠재력을 첫 손에 꼽는다. 덩치가 커지며 필사적으로 새 수익원을 찾고 있는 증권사들의 움직임도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분석된다.
OCIO는 현재 정부·연기금 등 일부 공적기관만이 채택하고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법제화되면 17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 OCIO 사업이 진입할 수 있게 된다. OCIO 시장 규모가 1경원에 달하는 미국의 경우 대학교 내 적립된 기금과 기업 사내 유보금 등도 OCIO를 통해 운용하고 있다.
한 OCIO 사업 담당자는 "국내에서도 향후 10년 내 OCIO 시장이 1000조원 가까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시장 급성장기에 정부나 주요 연기금 자금의 운용 주간사를 맡았다는 경험은 핵심 트랙레코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증권업계와 자산운용업계가 OCIO 시장을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까진 OCIO를 맡기는 기관들이 증권사 부문, 자산운용사 부문을 나눠놓고 각각 선발했지만, 점차 그 칸막이가 낮아질 거라는 지적이다.
OCIO사업은 투자일임업 라이선스가 있다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랩(WRAP)이나 종합자산관리계좌(ISA) 운용을 위해 대부분 투자일임업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 주식·채권 등 전통자산보다는 점점 파생상품·IB상품·대체투자 등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좀 더 종합적인 자산운용 관점에서는 증권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이 국내에서 마땅한 새 수익원을 찾지 못하자 기존 법인영업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OCIO에 일시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니겠느냐는 평가도 나온다.
한정된 시장에 이미 4곳의 대형증권사가 달라붙어 초경쟁시장(Red-Ocean)화 된데다, 한번 선정하면 보통 3~4년씩 담당하기 때문에 경쟁자들은 그 사이 관련 조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시장 잠재력이 크다곤 하지만 언제 열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며 "KB와 신한은 그룹 차원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고, 다른 증권사들은 새 먹을거리를 찾는 와중에 틈새시장으로 OCIO를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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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