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 여타 기업들에도 문제될 가능성
진출 무대는 넓어졌지만 이사회 수준 못 미쳐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에 발맞출 전문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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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정기 주주총회의 핵심 키워드는 ‘사외이사’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불을 지폈고, 그 불길은 국내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이상 기업들의 거수기 역할을 할 사외이사는 필요없다는 게 국내ㆍ해외 기관투자가들이 주장하는 바다.
사외이사들은 사내이사들의 잘못된 경영 판단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본원적인 역할은 물론, 그 이상의 자질을 요구받고 있다. 지금 대기업들은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 분주한 상황이고, 사외이사들도 이에 조언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산업 연관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이제는 글로벌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찾고 풀(Pool)을 구축하는 것이 기업들의 또 다른 주요 과제가 됐다.
◇ 현대차 vs 엘리엇 공방전의 핵심으로 떠오른 사외이사 후보
표 대결을 벌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현대차그룹과 엘리엇은 사외이사 선임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존 리우(John Y. Liu) ▲로버트 랜달 맥귄(Robert Randall MacEwen) ▲마가렛 빌슨(Margaret S. Billson)을 후보로 추천했다. 글로벌 투자 기관 및 기업을 거친 인사들이고, 엘리엇은 "업계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온 비즈니스 리더"로 자평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전문성 및 다양성 등의 관점에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가 더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엘리엇이 내건 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도 엇갈린다. 글래스루이스는 현대차가 추천한 윤치원·유진 오(Eugene M. Ohr)·이상승 후보를 지지할 것을 주주들에게 권고한 반면, ISS는 엘리엇 추천 후보인 존 리우·랜달 맥귄 후보에 대해 찬성할 것을 권유했고, 유진 오·이상승 후보에는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권고했다. 현대모비스 사외이사 후보를 놓고도 '이해상충과 전문성'으로 논란이 불지펴졌다. 모든 결론은 22일 주총에서 판가름 난다.
지금까지는 현대차그룹의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국내 대기업 전반에게 들이닥칠 문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간 회사가 추천해온 사외이사 후보들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느냐 여부다.
사실 사외이사의 역할론에 대해선 정해진 답은 없다. 대주주와 관련 없는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켜 대주주의 독단경영을 차단하는 역할은 기본이다. 하지만 국가별로, 또 시기별로 공정성을 강조할 것인지, 전문성을 강조할 것인지는 다르다. 미국의 경우 전문성 강화를 이유로 전문경영인, 금융 및 회계 전문가들이 사외이사로 각광 받아왔다. 하지만 엔론 사태를 보면 전문가가 많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번 엘리엇의 사외이사 추천 이슈는 큰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우리 대기업들의 무대는 전 세계로 넓어졌고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절대적 수준으로 커졌다. 하지만 이사회 구성만큼은 이런 글로벌 경쟁력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게 핵심이다. 게다가 워낙 전문경영인 풀(Pool)이 넓지 못하다보니 교수들이 넘쳐난다. 또 전관예우를 기대해 법조인과 관료 출신들도 많다 .
◇ 산업환경 적응 및 투자자 위해 전문성 갖춘 사외이사진 꾸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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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기준 국내 30대 기업의 사외이사진을 들여다보면 차이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들 비슷하게 꾸려져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봤을 때는 전문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볼 수 있고, 헤지펀드들이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국내 최고기업이자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사외이사진의 경우. 김선욱 이화여대 명예교수, 박재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박병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김종훈 키스위 모바일(Kiswe Mobile) 회장이 있다. 그리고 이번 주총에서 안규리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와 김한조 하나금융나눔재단 이사장을 내세웠다. 모두 외부인원으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에서 추천한 인물들이다.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이전 사외이사인 송광수 전 검찰총장과 이인호 전 신한은행장도 마찬가지지만 현 삼성전자 사외이사진이 급변하는 글로벌 IT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경영 전략에 대한 판단과 조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성을 강조하는 사외이사진을 꾸린 듯 하지만 결국 거수기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것은 회사와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주주가 경영에 적극 참여하고, 주주권익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재 상황이 이런 지적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오히려 현대차는 엘리엇 때문에 예전보다 사외이사진에 더 공을 들인 것도 사실이다.
공정성에 대한 요구도 여전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결국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심화하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 사내이사들의 역량에 힘을 실어줄 전문성의 필요성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해서 무조건 외국인을 영입하자는 것도, 그것이 좋은 결과를 장담한다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구색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경영진의 전략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영진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들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차원에서 이제 우리 대기업들은 우수한 사외이사진을 꾸리기 위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곳곳으로 발품을 팔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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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