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업 평가할 역량·제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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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그룹들이 앞다투어 혁신 기업 지원을 위한 펀드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기존에 하던 사업을 포장만 바꿔 내놓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방식을 내놓더라도 급조한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를 따르는 데 급급하다 보니 실효를 거두기 어렵고 부실 위험은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달 ‘혁신성장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밝혔다. 1조7000억원 규모의 직간접 투자를 하면 총 6조원 규모 투자유발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했다. 작년 11월엔 3조원 규모 성장지원펀드 조성 계획을 밝혔다. 우리금융그룹도 한 달 뒤 3조원 규모 혁신성장펀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KB금융그룹은 지난해 혁신기업 창업 및 지속가능성장 지원에 29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5년간 500억원 규모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도 결성하기로 했다. 하나금융그룹도 지난해 생산적 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모펀드를 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그룹 내 CVC 하나벤처스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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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그룹은 지금까지처럼 은행과 이자수익에만 기대서는 영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은행 회계 제도가 갈수록 강화하면 비용이 늘고, 고객들은 은행 대신 자본시장을 찾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자놀음으로 막대한 이익을 쌓아 올리기보다는 직접 초기 성장 기업에 투자하는 편이 미래를 위해 유리하다. 초기 기업일수록 적은 돈으로 관계를 쌓기 좋고, 추가 투자-상장-금융 고객 확보 등 건강한 가치사슬을 만들 수 있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파이는 커진다.
금융그룹의 펀드 결성과 성장 기업 지원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저마다 다양한 명분, 막대한 투자 효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실행 계획보다는 포장이 잘 된 면이 없지 않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의 펀드는 3조원 규모지만 그룹에서 부담하는 금액은 각각 총 3000억원이다. 1000억원으로 1조원의 홍보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애초에 은행이 실효성 있는 투자를 집행하긴 쉽지 않다. 펀드 출자는 비상장사 투자로 위험가중치가 높기 때문이다. 펀드 결성은 어디까지나 계획이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결과는 그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금융그룹들이 발상을 전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벤처기업이나 성장기업 투자는 이전부터 진행돼왔다. 자의에 의한 경우도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고, 정책 목표를 설정한 정부의 독려에 따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 정부가 ‘창조경제’를 모토로 기술금융실적 평가를 통해 금융그룹을 압박했다면, 이번 정부는 ‘생산적 금융’, ‘창조적 금융’ 등 의제를 강조하고 일자리 창출에 따른 인센티브 도입을 고려하는 식이다. 수혜가 없더라도 금융그룹들이 유독 금융권에 서슬 퍼런 정부에 반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그룹들이 절박함을 갖고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쳐도 효과가 금방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공식적인 투자 절차를 갖추고, 손실 시 면책을 확대하는 등 의욕을 보이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초기 기업을 평가하고 기술을 살필 역량이나 제도가 갖춰졌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의 기술금융대출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실적 압박에 떠밀리다 보니 자의적으로 등급을 조작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옥석을 가릴 역량이 부족한 탓인지 돈을 날리는 경우가 많다. 은행 돈이 들어갔어야 할 국내 유니콘 기업들의 투자액 대부분은 해외 자본이다. 정부는 뒤늦게 제도 정비에 나서는 모습이다.
한 금융그룹 임원은 “정부가 혁신 성장을 압박하는 통에 금융그룹은 물론 보증만 해야 하는 신용보증기금조차 직접 돈을 풀고 있는 상황이다”며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다 보니 실력 없는 기업에 돈이 흘러 들어가는 등 자원 낭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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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