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JL은 다른 금융사 제안 보고 조건 낮춰달라 요구
신한은 부담 큰 외화 거래의 수익 하락 우려
모멘티브 대신 린데 선회…KB 반사이익 누려
-
역대 2위 규모 아웃바운드 M&A인 모멘티브 금융주선사가 말미에 교체됐다. 차주인 SJL파트너스는 다른 금융회사들이 제시한 조건을 참조하면서 신한은행에 더 우호적인 조건을 요구했다. 기존 주선사였던 신한은행은 조단위가 넘는 대규모 외화 거래라는 점에 부담을 느낀데다 협상과정에서 주선조건이 박해지자 절차를 지속하기 어려웠다.
양측이 접점을 찾기 어려운 협상이 지속되는 사이 피로도가 높아졌고 결국 결별하게 됐다. 그간 우호적이었던 양측 관계가 이번 일로 금이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왜 셀다운부터 미리…조건 좀 낮춥시다" vs "도와 달라고 할때는 언제고"
SJL파트너스는 지난해 KCC그룹ㆍ원익그룹과 컨소시엄을 꾸려 모멘티브 인수 계약을 맺었다. 총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 규모다. 달러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책은행과 손을 잡는 편이 수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한은행에 인수금융 주선자 지위를 부여했다.
SJL파트너스와 신한은행은 셀트리온홀딩스 등 여러 투자를 같이 해오면서 관계가 돈독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신한은행은 일찌감치 16억달러 규모 인수금융 투자확약서(LOC)를 발급했다. 이후 KB국민은행과 손잡고 각각 8억달러규모 LOC를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다만 KCC그룹이 인수금융 전액에 보증을 서기 어렵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때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후 신한은 인수금융 조달 임무를 맡아 국내ㆍ해외서 절반씩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8억5000만달러를 BNP파리바ㆍ씨티은행 등에 맡겼다 나머지 8억5000만달러는 국내서 조달하는 구조를 짰다. 이중 3억5000만달러는 일찍부터 선을 대온 한국투자증권에 나눠주고 나머지 5억달러는 신한 몫이었다.국내 조달 부분에는 KCC 등의 보증이 지원됐다.
일반적으로 주선사가 총액인수하는 인수금융은 세부적인 조건이 다 확정되면 이를 다른 금융사에 셀다운(Sell down)하는 경우가 많다. SJL파트너스는 신한이 이번 건에서는 다른 금융사들에 미리 물량을 나눠줬고 이 점이 불편하다는 내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신한은행이 LOC를 전량 끊어줬다고는 하지만 협상을 하면서 조건이 바뀌면 다른 금융사들과 다시 조율을 또 거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양측은 재무약정(커버넌트) 부분에서 의견충돌을 빚었다. 즉 인수금융 상환트리거가 발동하는 차입금 대비 상각전이익(EBITDA)을 몇배수로 설정하느냐에서부터 다른 부대 조건까지 합의가 나오지 못했다.
입장 차이도 컸다.
SJL파트너스의 경우. 너무 일찍 신한은행에 조단위 인수금융 주선사 맨데이트(독점권)을 부여한터라 다른 대안이 없어 초기에는 협상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비롯, 주요 기관들의 참여가 확정되고, 인수금융에 참여를 원하는 다른 금융회사도 늘었다. 이에 더 우호적인 거래조건을 참고하면서 신한에 요구할 수 있는 협상력이 생겼다.
SJL파트너스로서는 어쨌든 신한을 믿고 맨데이트를 줬는데 왜 처음부터 최선의 대출조건을 제시하지 않느냐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신한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모멘티브 매각 측은 '확실한 자금증빙' 없이는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SJL파트너스는 블라인드펀드가 없었고 KCC는 인수금융 보증문제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금융에 참여하기로 했던 KB국민은행이 불참의사를 내비쳤다. 이런 악조건속에서 신한은행의 조단위 LOC가 없었다면 거래 자체가 성사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러니 신한의 결정적인 기여도를 감안하면 더 안전하고 수익성 높은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의미다. 또 이미 내부 투자심의위원회까지 끝난 상황인데다 불안한 대외환경까지 감안하면 재무약정과 금리부분을 SJL 요구대로 맞추기는 무리라는 판단도 있었다. 확정 LOC를 두 번이나 끊어준 상황이나 마찬가지인데 SJL파트너스가 대출조건 조정을 요구하는 자체가 탐탁치 않았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신한, 리스크 크다며 전부 셀다운 계획하기도…어부지리는 KB국민은행
양측 협상은 장기화됐다. 이 과정에서 법률자문 등의 부대비용도 점점 커졌다.
M&A 업계 관계자는 “거래 초기엔 SJL파트너스가 상대적으로 신한은행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으나 이후 거래 확실성이 높아지자 금리 인하와 재무약정 완화를 바라게 됐다”며 “몇 차례 조건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 서로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후 SJL파트너스는 BNP파리바와도 직접 접촉해 투자조건을 자사에 유리하게 재조정했다. 차입 금리는 최초 조건보다 낮췄다.
당초 신한은행은 BNP파리바에 물량을 나눠주는 대신 BNP파리바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구조를 짰다. 하지만 BNP파리바는 금리조건이 낮아지면 가져갈 파이가 줄어들기때문에 신한은행에 수수료를 주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신한은행으로서는 주선 작업을 이어갈 이점이 없다.
신한은행의 깐깐한 '리스크 관리'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달러화 거래는 원화환산한 금액보다 훨씬 위험도가 크다. 이로 인해 신한은행은 직접 맡기로 한 5억달러 가운데 또 2억달러는 KB국민은행에 나눠줬다. 그리고 나머지 3억달러도 은행이 직접 부담하기보다 계열 금융사 등에 모두 재매각(셀다운)하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예정대로 거래가 진행됐다면 신한은행은 달러대출의 위험을 전혀 지지 않고, 이를 계열사 또는 다른 금융회사에 넘기고 자신은 주선 수수료만 챙기는 구조를 짠 셈이다. SJL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SJL파트너스는 올 초 신한은행의 인수금융 주선사 맨데이트를 회수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거래 성사가 중요했던 만큼 일단 협상을 지속했다. 그러다 신한은행이 일부 중요 약정 조건에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SJL파트너스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양측은 이달 초 서로 갈라졌다.
다만 신한은행도 마지막까지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국내 조달 금액은 KCC 측의 보증이 들어가 안정성이 높았던 데다 오래 공을 들였기 때문. 최종적으로는 신한은행이 요구한 대출조건을 SJL이 받기로 하면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양측은 결국 거래를 실행시키지 못했다.
대신 신한은행은 모멘티브 거래에서 빠지기로 한 후 IMM PE의 린데코리아 인수금융에 대해 7000억원 규모 LOC를 발급했다. 외화 거래인 데다 해외 승인도 염두에 둬야 하는 모멘티브보다는, 국내 원화 거래고 관계도 더 공고한 곳을 택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반사이익'은 KB국민은행이 봤다.
처음부터 신한은행과 손을 잡고 있었고, 신한은행이 빠지기로 하면서 참여 물량을 2억달러에서 5억달러로 급히 높였다. 심사 부서에선 리스크 관리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신한은행이 빠진 점에 의문을 보이기도 했으나 결국 지난주 승인이 나왔다. 이미 신한은행이 많은 조건을 조율해 논 상황이어서 사전작업도 크게 줄었다. 신한은행과 SJL파트너스가 마지막에 논의한 최종조건을 그대로 KB국민은행이 받아간 것으로 알려진다.
SJL파트너스 입장에서도 KB국민은행까지 놓치면 거래 종결이 위험하기 때문에 더 큰 무리수를 둘 수 없었다. KB국민은행은 5억달러 중 일부는 국책은행, 보험사 등에 재매각할 예정이다.
남은 관심사는 신한은행ㆍSJL파트너스간 관계다. 셀트리온부터 모멘티브까지 이어진 우호적인 관계 덕분에 'SJL은 필요한 거래가 생기면 신한을 먼저 찾아간다'는 암묵적인 믿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런 신뢰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협상 과정에서 모두 상대 측 태도에 대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라는 평가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21일 12:1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