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딜에서 마저 배제되는 경우 발생
인력층 얇아지고 주니어들 IB 이탈 심화
오너와 대화 가능한 MD만 생존하는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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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싱글 정장에 넥타이, 구두를 갖춰 신은 '글로벌 IB'의 위상이 이전만 같지 않다. 인력 층은 얇아지고 IB의 '꽃'으로 불린 MD(매니징디렉터)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반면 MD를 달고 빅딜을 소싱할 수 있게 된 일부 임원들의 위상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올 1분기 인베스트조선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외국계 IB가 국내 딜에 참여한 경우는 IMM의 린데코리아(1조3000억원) 인수를 자문한 메릴린치, LG서브원(6000억원) 매각을 자문한 크레디트스위스, CJ헬로비전(8000억원) 매각ㆍ인수자문을 각각 담당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정도가 전부다.
이 중에서 IB 딜이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IMM의 린데코리아 인수 정도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등 떠밀려 나온 LG서브원, 팔 곳도 살 곳도 뻔했던 CJ헬로비전 매각은 IB의 네트워크도 전략도 크게 필요치 않은 딜이었다. 이제는 몇몇 조단위 딜을 제외하고는 IB를 고용하지 않거나, 회계법인-법무법인 정도만 쓰고 마는 것이 요즘 M&A 시장이다. 오죽하면 1분기 리그테이블 재무자문 1위를 삼일회계법인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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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대기업간 거래에서 IB들이 제외됐을 때부터 이미 위기론이 불거졌다. 2014년 삼성-한화 빅딜에선 한화는 법무법인 광장, 회계법인으론 딜로이트안진을 고용했을 뿐이다. IB 출신의 난다 긴다 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한화 전략팀이 딜 구조를 짰다. 이듬해 삼성-롯데 빅딜에서도 롯데는 딜로이트안진과 태평양만을 고용했다. IB 자문은 여기서도 배제됐다.
IB만의 ‘엣지’가 없어졌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대기업들에는 이미 외국계 IB 출신 인력들이 넘쳐난다. 거래과정에서 필요한 도움은 회계법인, 법무법인에게 맡기면 된다. 전략적 사고는 대기업의 역할이 됐고, IB의 역할은 점점 축소했다. 일례로 지난해 국내 대기업이 진행한 크로스보더 딜에 참여한 자문사들 사이에서 “IB 존재감은 없었다”라고 평한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인수과정의 수 많은 회의에서 IB를 본 적이 손에 꼽힌다”라며 “나중에는 회사에서 아예 찾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M&A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떠오른 사모펀드(PE)도 대기업과 다르지 않다. 해외 MBA에 컨설팅, IB 경력으로 무장한 인력들이다 보니 "굳이 왜 우리가 IB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팽배하다. 자연스레 IB들의 수수료는 낮아졌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1조원 규모의 딜을 하면 1%(100억원)의 수수료는 받아야 하지만 요즘에 30억원 받는 IB도 찾기 힘들거다”라며 “리그테이블에 이름은 올려야 하니 수수료 깎아가면서 딜에 참여하는 게 대세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국내 M&A시장에서 ‘IB’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기업이나 금융지주, PE의 오너 혹은 CEO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뱅커만 필요한 시장이 됐다. 교보생명 경영권 분쟁 사태와 같은 급박한 일이 터졌을 때 오너 입장에서 조언을 구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들에게 달리는 훈장이 ‘MD’다. 통상 회사에서 전무급 이상 인력으로 한 하우스당 많아야 2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표와 MD급 인력 1명이 사실상 회사를 이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역할이 줄어들다 보니 하우스별로 MD 한 명 늘리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인사를 단행하는 외국계 IB 입장에선 한국에 MD를 왜 더 늘려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매년 외국계 IB 한국지점 철수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미 조단위 딜은 홍콩에서 상당부분 컨트롤 한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다 보니 IB는 자연스레 인재 사관학교가 됐다. 주니어들은 3년 정도 IB 업무를 배우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최근 M&A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모건스탠리도 상무급 인사 2명이 각각 국내ㆍ해외기업의 재무 혹은 전략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국계 IB에서 이직을 한 관계자는 “지분을 받고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것이 대세가 됐다”라며 “MD만 바라보고 기다리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라고 말했다.
IB뱅커 선호가 줄어든 것은 비단 국내에만 한정된 일은 아니다. 세계 톱 MBA 졸업생들의 취업현황을 살펴보면 IB뱅커의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2018년도 MBA랭킹 1위를 차지한 스탠포드 MBA 졸업생 중에서 단 1%만이 IB를 택했다. 2010년에는 4%에 달했는데 해마다 IB 지원자들이 줄고 있다. 대신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대한 선호도는 커졌다.
한국지점도 마찬가지다. 주요 IB 대표들의 상당수가 해외 유수 MBA를 졸업했다. 하지만 현재 IB 주니어 인력 중에서 해외 MBA를 나온 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외국계 IB들은 인력 구성만 보면 국내 증권사인지 외국계 IB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극소수의 MD를 제외하고는 주니어 인력은 상시 채용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이제 하우스의 실적은 곧 MD의 역량이다라고 볼 수 있는 시장이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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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3월 29일 11:3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