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열악하지만 풍부한 유동성에 ‘착시효과’
원청기업·금융사 지원 어려운 소기업 위기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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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대기업의 몰락과 같은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은 기업의 위기를 가리고 있고,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는 구조조정보다는 계속기업 '숫자' 유지에 힘을 쏟는 분위기다.
큰 기업들과 달리 보호의 사각 지대에 놓인 작은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 커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구조조정으로 가장 분주했던 해는 지난 2015년으로 꼽힌다. 건설, 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이 흔들리고 조선, 해운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상반기 정기신용위험평가를 진행한 데 이어 연말엔 수시 평가도 진행했다.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 27곳, 회생절차 대상인 D등급 27곳 등 부실징후 대기업이 54곳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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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엔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작년엔 소위 '살생부'에 포함된 대기업이 10곳으로 줄었다. 시장에 충격파를 안긴 STX, 동양, 웅진 등 대기업의 정리 작업이 일단락된 영향이 있었다.
실제로 위기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이번 정부의 소극적인 구조조정 움직임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자리 유지에 집중하다 보니 구조조정에 힘쓰기 어려웠거나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고용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터라 기업의 경쟁력은 뒷전이고 ‘존속’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막강했던 ‘서별관회의’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전 정부 시절 경제 현안을 논의하곤 했는데 ‘밀실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힘을 잃었다. 최근 '경제현안조율회의’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지만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이 활력을 잃었다 쳐도 정부가 피고용인이 많은 곳에 칼을 빼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구조조정 업계에선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문제 삼기도 한다.
한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받아 돈을 벌어서 이자를 갚기 어려운 한계 기업 현황을 조사하려 했지만 정부 측에선 난색을 표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관련 먹거리를 노렸던 자문사들도 기대를 내려 놓는 분위기다.
정부, 여당은 시장 주도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에서 소화 가능한 기업에 국한된다. 고용이 많고 덩치가 큰 기업까지 시장에 오롯이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고용에 힘을 싣다 보니 사정이 어려운 대기업들은 여유를 부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더욱 여유로운 상황이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국책은행이 회생절차 가능성을 제기하며 압박했지만 결국은 새로운 주인을 찾는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누가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냐의 문제는 남지만 기업의 존속 자체에 의문을 품는 의견은 많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정상 기업으로 유지될 것이고, 고용도 지속될 것이란 평가다.
정부가 뒤를 봐주지 않더라도 웬만큼 업력이 쌓인 기업들은 목소리를 높일 만 하다.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이라 웬만해서는 부도 등 위급한 상황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매출 몇천억원대 기업들도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닥칠 수 있다.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회생절차를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지간한 기업들은 금융회사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 성공한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 펀드(PEF) 자금도 많다 보니 결국은 위기를 넘길 정도의 자금은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가진 역량 이상의 생존력이 보장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주력인 자동차, 반도체 산업의 하청 기업들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핵심 벤더들은 정부 혹은 대기업의 비호를 받는다. 위기에 몰리면 자금 지원을 받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는 경우는 드물다.
국민연금조차 우려가 줄어든 상황이다. 한 국민연금 위원회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위원회는 자주 열린다”면서도 “투자 기업 중 망가지는 곳은 적고 주가가 빠지는 이상의 문제는 크지 않은 상황이라 회수 위원회가 할 일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소기업들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주요 기업의 1차 벤더, 많게는 2차 벤더까지는 지원을 받지만 그 이후 기업들까지 온기가 미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대기업 부실징후기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중소기업 부실징후기업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원청 업체나 금융회사들의 지원을 받기 쉽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유동성 위기를 헤쳐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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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4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