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부진 시 아시아나항공 M&A도 감수
5천억 지원요구 받은 산업은행 고심할 듯
자구안 실효성 의문…금융논리론 지원 못해
산은, 경영 관리도 부담…결국 공은 정부로
-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M&A 가능성까지 담은 자구안을 내놨다. 그룹의 핵심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용단으로 보이지만 자금 지원 요청을 받은 산업은행의 셈법은 복잡해질 전망이다.
정작 산업은행으로선 돈을 빌려줘도 크게 얻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웬만한 조건과 당위성이 아니고선 특혜 논란, 책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향후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할 기회를 잡는다 쳐도 자금 회수는 불투명하다. 금융 논리로는 자금 지원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항공물류 산업의 중요성’, ‘고용 보장’ 등 정치적 계산이 얹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당국에선 그 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압박을 가해 왔다. 금융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어려움의 근본적 배경은 그룹 지배구조 문제라고 했고,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모든 것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박삼구 회장을 몰아붙였다. 대주주의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했다.
-
금호그룹은 지난 9일 아시아나항공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이라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았단 평가다.
자구안엔 ▲계열주 일가 보유 금호고속 지분 전량을 담보 제공하고 ▲산업은행과 MOU를 체결하며 ▲경영개선 목표에 미달할 경우 M&A를 진행할 수 있고 이에 협조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매각, 비수익 노선 정리, 인력 생산성 제고 등 계획도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유동성 문제 해소를 위해 5000억원 규모 자금 지원도 요청했다. 산업은행은 채권단과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금호고속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이다. 그간 여러 기업을 나누고 붙이며 자금을 긁어 모아 어렵사리 만들었다. 그룹 경영권을 잃을 위기를 감수하고 오너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 전량을 담보로 내놓은 모양새다.
그룹의 거의 전부인 아시아나항공의 M&A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산업은행의 공동매각권(Drag along)을 인정하며 상표권 문제도 사전조치 하기로 했다. 금호타이어 M&A 때처럼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하며 납작 엎드렸다.
표면적으로는 오너 일가가 그룹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산업은행의 요구에 화답한 모양새이나 덥석 이를 수용하기는 부담스럽다.
박삼구 회장의 부인과 딸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 가치는 크지 않다. 작년 10월 박 회장이 금호고속 지분을 추가 취득할 때 가격(주당 10만5513원)을 적용해도 141억원가량에 그친다. 박 회장 부자의 금호고속 지분은 금호타이어 신규대출 관련 담보로 제공돼 있다. 1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밝힌 대로 ‘담보를 풀어줘야 가치가 생긴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아이디티(지분율 76.22%), 에어부산(44.17%), 에어서울(100%) 등 자회사와 게이트고메코리아 지분(40%)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매각한다 쳐도 1년 안에 1조원 이상의 차입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 급한 사정은 곧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산업은행이 가장 부담을 느낄 부분은 신규 자금 지원이다.
금융회사들은 갈수록 부실 징후 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길 꺼리고 있다. 지원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지분을 담보로 내놓는다지만 지분 구조만 따지면 개인 회사에 대출하는 형식이라 부담스러울 수 있다. 국책 은행은 정권 교체 후의 책임론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
재무약정(커버넌트)을 강하게 맺는 방식으로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숨이 턱까지 찬 쪽은 아시아나항공이다. 재무약정 강화는 새로 돈을 넣지 않고도 얻어낼 수 있다는 평가다.
한 대현 법무법인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은 모두 발을 빼려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에 나섰다가는 개인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며 “재무약정 역시 산업은행이 기존 대출금 만기를 연장해주는 조건으로 충분히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너 일가가 뒤로 물러난다면 경영 책임은 산업은행으로 넘어간다.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 관리에서 벗어난 후 불과 몇 년 사이에 그룹 재건의 불쏘시개로 쓰이며 망가졌다. 산업은행은 다시 맡은 아시아나항공을 예전으로 돌려놔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금호그룹이 생각하는 경영정상화 기간은 3년이다. 그간 산업은행이 부여한 개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아시아나항공 M&A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일이 발생할 지 예단할 수 없다. 이동걸 회장의 임기조차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금호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해태제과, 기아자동차, 쌍방울 등이 무너지는 사이 ‘유일한 호남기업’으로서 반사 이익을 봤다. 보수 정권에서조차 암묵적 비호를 받았다. 산업은행이 준 숙제를 한 해, 두 해 해나가는 사이 정세가 급변할 수 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물러났다 돌아온 박삼구 회장의 ‘재기 DNA’는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M&A 기회가 산업은행에 득이 될 지도 예단하기 어렵다.
단편적으로 보면 산업은행 입장에선 시총 7000억원대 회사에 5000억원을 집어 넣는데, 최후의 수단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 권리 정도를 갖는 셈이다. 금호산업 보유 지분까지 긁어 매물로 내놓는다 친들 과거 대출금에 신규 자금까지 회수하긴 쉽지 않다. M&A도 회사의 차입금이 줄고, 현금창출력이 개선됐을 때나 가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회사만 한 곳 늘어나게 된다.
산업은행이 금융 논리만 앞세운다면 신규 자금 지원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형 항공사 한 곳을 그냥 사장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거 한진해운 파산 사태가 재현될 경우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결국 산업은행의 지운 여부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산업의 지형이나 아시아나항공에 딸린 근로자의 고용 등 부차적 요소를 고려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지금 정부는 더 이상 금호그룹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보이지만 조양호 회장 타계 후 항공업계가 술렁이는 상황이라 마냥 밀어붙이기에도 부담스러워졌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조건 기업을 살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산업은행이 앞장 서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정부가 아시아나항공이 무너졌을 때의 파장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4월 10일 18:1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