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사 내정설에 요식행위 지적
"차라리 인수주관 하는 게 마음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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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주관사가 선정된다. 국내에서 첫 항공사 인수합병(M&A)인지라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관심이 클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며 무관심하거나 시큰둥하다. 입찰제안요청서(RFP)가 오면 정부와의 관계 때문에 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매각주관사가 되더라도 고민이란 게 공통된 반응이다.
지난 16일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매각주관사 선정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기는 4월말에서 5월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금호아시아나그룹 모두 매각절차에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주식시장이 들썩였던 것과 달리 외국계 IB들은 조용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조 단위 딜에 매각주관을 따내기 위해서 동분서주 했겠지만, 오히려 관심 없다고 손사래 치는 IB가 대다수다. 어떤 하우스는 굳이 RFP를 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RFP 뿌리면 입찰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 불필요한 페이퍼 작업만 늘어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우선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M&A는 수수료가 박하기로 정평이 났다. 일이 적은 것도 아니다. 정부가 원하는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려면 그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번 같이 조 단위 딜에 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IB들을 망설이게 한다.
이미 매각주관사로 크레디트스위스가 정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간 크레디트스위스(CS)는 금호타이어 매각주관을 맡는 등 산업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은행 M&A실과 기업금융팀에서 딜을 주도하며 앞 단에 CS를 세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금호타이어 매각을 담당했던 인력들이 이번 딜에도 깊이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행여 입찰에 응해 어부지리로 매각주관사가 되더라도 고민이다. 이번 딜의 구조가 '구주매각+신주발행'이라 산업은행과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 매각주관사의 역할이 박 전 회장을 대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산은을 대리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다.
한 IB 관계자는 “인수자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구주매각 가격을 높게 팔면 박삼구 전 회장 배만 채워주는 것”이라며 “산은 입장에선 구주매각 대금을 낮추고 증자규모를 늘리는 게 회사 정상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양측의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다”라고 말했다.
더 큰 고민은 딜의 성격이 ‘정치적’이란 점이다. '아시아나항공 회계처리 문제→자구안 제출→정부 거부→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이란 진행과정이 보여주듯 정부의 입김에 따라 움직였다. 향후 매각 프로세스 진행과정에서도 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수수료 좀 벌겠다고 나섰다가 정권이 바뀌면 역풍에 시달릴 수도 있다.
오히려 매각주관사 보단 인수주관사가 낫다고 한다. 항간에 거론되는 SK·한화·AK 등에 슬며시 인수 의사를 타진해 보고 있다. 항공사 M&A는 국내에서 첫 사례라 미국 등 해외 항공사 M&A 경험을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JP모건, 메릴린치, 씨티 등이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 항공 합병 등 항공사 M&A의 자문사로 참가한 바 있다.
다른 한편으론 재무적투자자(FI)와의 접촉을 고민한다. 박삼구 전 회장 지분을 되사주고 증자까지 나서야 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인수금액이 최대 2조원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의 인수 후보들에게도 부담스런 금액이라 재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FI들과의 합종연횡 가능성이 점쳐진다. 일부 국내 사모펀드들은 지난해부터 아시아나항공 투자를 검토하기도 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매각 건은 전략적인 판단보단 정부와 정치권의 풍향계를 읽는 게 IB들에 중요한 딜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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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4월 21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