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功)도 싫다’…관료들 의사결정 빠지거나 변죽만 울려
움직이는 것만도 성과지만 결과 나쁘면 산은 홀로 책임
구조조정 떼려 구조조정 사활…원칙 없거나 이해도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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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은 이번 정부에서도 구조조정 첨병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위나 방향이 예전과 다르다. 과거엔 정부가 방향을 정한 후 산업은행이 나섰으나 이번엔 정부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구조조정 결과의 책임도 온전히 산업은행에 모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산업은행은 중후장대 산업의 육성을 이끌었고 쇠퇴 시엔 구조조정도 주도했다. 최근 구조조정 움직임은 과감하다. 1년여 동안 한국GM,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등 기업에 손을 댔고 소득도 있었다. 방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동걸 회장의 결단은 높이 평가됐다.
정작 정부 관료들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전 같으면 하나하나가 경제계 전반을 들썩이게 할 사건들임에도 오로지 산업은행의 분주함만 눈에 들어온다. 핵심 관료들은 조용히 있거나, 밥상이 차려진 후에야 숟가락을 올렸다.
대우조선해양 M&A 구조 자체는 인수자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짜였다. 절차를 떠나 이 정도 해법을 마련한 것만으로도 정권 고위층의 만족감을 샀다고 평가받고 한다. 산업은행에 공이 돌아갔다. 지난해부터 함께 대우조선해양 해결 방안을 모색했던 금융위원회 내부에선 불편한 기색이 있었다. 산업은행과 별도로 자료를 내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금융위원회 고위층에서 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방안을 도출한 공이 있지만 구태여 위험 부담을 질 필요는 없었다. 가뜩이나 해외 기업결합 승인이 불투명한 데다, 기업 가치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책임도 나눠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M&A에서는 정부가 특히 소극적이다. 의중은 전달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 모양새다. 관련 채권도 적고 주주도 아닌 산업은행이 오롯이 총대를 멨다.
아시아나항공은 대우조선해양만큼 수많은 노조와 협력사 직원이 있는 것도, 한국GM처럼 미국 눈치를 볼 상황도 아니다. 산업 성장세가 꺾인 것도 아니었다. 이런 저런 부담이 크지 않다 보니 정부는 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관료 중에선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산업은행과 박삼구 회장 일가가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인 후에야 오너 일가를 비판하며 힘을 보탰다. 마지막에 가서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합의된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방안을 밝힌 정도다.
산업은행이 앞장 서는 사이 정부 부처간 협의가 원활히 진행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산업은행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부처는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다. 소위 힘있는 부처라지만 다른 산업 부처들의 의사결정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 논리로는 한 기업을 손절하는 것이 맞다 쳐도, 산업 논리로는 적합하지 않아 부처끼리 충돌할 수 있다. 예년에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열린다지만 이전 정부들의 서별관회의만큼 강력한 조정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회의에서의 발언조차 되도록 삼가는 분위기다.
그러니 또 다시 산업은행 부담만 커지게 됐다. 새로 만든 구조조정전담 기업(KDB인베스트먼트)은 일본의 구조조정 결정기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금 수행하는 구조조정 결과에 따른 책임은 산업은행과 그 구성원에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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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혹은 구조조정 떼내기 작업을 독려하고 있는 이동걸 회장의 부담이 가장 크다. '사심이 없다' '과감하다'는 평가가 언제까지 유효할 지 미지수다.
성주영 수석부행장은 회장 아래서 은행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GM과 한국GM 협상에서 공을 세웠다. 작은 사안은 각 부문, 부서에서 챙긴다지만 이런 큰 사안은 직접 챙길 수밖에 없다. 사모펀드실, 대우건설 관리단, 비서실을 거친 최대현 부행장은 금호타이어 이후 구조조정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
정재경 본부장은 한국GM, 산은캐피탈 매각, 비금융자회사 패키지 매각 등 구조조정 경험이 많다. 김상일 실장은 사모펀드실을 거치며 KDB생명을 관리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산업은행으로 향하는 화살은 날카로웠다. MB정부 시절의 강만수 회장은 결국 구속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홍기택 회장은 서별관회의 발언 파문후 AIB부총재에서 물러나고 산업 구조조정 실패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행방불명’됐다 나타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따져보면 과거 이근영 총재 (현대상선 불법대출) 정건용 총재 (김재록 로비 검찰조사) 김창록 총재 (뇌물 후원금 혐의 검찰조사) 등 전임 산은 회장들은 매번 은퇴 이후 고초를 겪어 왔다.
한 곳만 찍어 추진한 대우조선해양 M&A,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M&A 모두 특혜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과거 관리기업으로 파견 나간 산업은행 출신 임원들은 회사 부실을 야기한 혐의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혐의를 벗더라도 지난한 수사와 소송 절차를 감내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임직원의 처우가 박해지고 인력 충원도 어려워졌다.
산업은행에 <산업 구조조정은 산업은행은 물론 기획재정부, 산업통산자원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각계 부처와 관련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과 끊임없는 논의가 이뤄져야 하고 정권 교체 영향을 받지 않는 일관성도 필요로 합니다. 지금의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산업 구조조정을 보면 경제부총리 외에 여타 관계부처 장관은 이렇다 할 코멘트를 하지 않고 있고 관련업계는 배제된 듯한 모습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구조조정의 실패 책임을 산업은행이 모두 짊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올 정도입니다. 이번 정부의 구조조정에서 항상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질의했으나 공식 답변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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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내부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 산업 구조조정을 맡겨선 안 된다거나, 구조조정을 맡길 거면 정부가 나서서 힘을 실어달라는 목소리다.
산업은행법상의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 기업 지원이 필요할 수 있으나 핵심 업무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功)을 놓치는 것보다 과(過)를 떠안는 것을 싫어하는 정부가 ‘창구지도’에만 적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부담 속에도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M&A에선 둘밖에 없는 인수후보 중 한 곳엔 한 달의 시간만 줬고, 아시아나항공은 ‘즉시 매각’에 더해 시한도 연내로 못박았다. KDB생명까지 연내 매각 추진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 이동걸 회장이 강조하는 ‘혁신 성장’ 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 위해 구조조정에 힘을 쏟는 모습인데 서두르다 보니 잡음이 이어진다. 구조조정 명분이 모호하다거나 과거 검토된 조선 빅2 체제로의 전환은 지금 추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 등이다.
이런 시각과 외부 우려에 대해 의견을 묻고자 산업은행에 <시장에선 산업은행의 일련의 구조조정 작업을 두고 ▲너무 서두른다 ▲구조조정의 원칙이 없다 ▲산업 이해도와 변화 대응력이 높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이 생각하는 구조조정 대원칙은 무엇이고 추구하는 목표와 역할은 무엇입니까.>라고 공식 질의했으나 산은은 역시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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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5월 1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