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보다 '시장 잠재력'을 평가
평가 기관엔 세부적 전문가 부재
기술력 책임 묻기 어려운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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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벤처기업의 증시 입성 발판으로 자리잡은 기술특례 상장 제도의 '기술성 평가 시스템'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기술성 평가 통과'를 곧 '기술력을 공인·보증 받았다'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실상은 제대로 된 전문가도, 책임을 질 만한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5년 도입된 기술특례 상장제도는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에 대해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다.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보유 기술의 성장 잠재력’이 핵심이다.
기술특례 상장은 바이오 벤처의 ‘증시 등용문’이 되어왔다.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지난해까지 기술특례 상장 제도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 중 약 83%(64개 중 53개)가 바이오 연관 기업이다. 2015년도엔 기술특례로 상장한 12개 중 10개, 2016년엔 10개 중 9개, 2017년엔 7개 중 5개가 바이오 기업이었다. 지난해엔 기술특례로 상장한 벤처기업 총 21개 중 15개가 바이오 업체였다.
기술특례 상장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기술성 평가’다. 기술성 평가는 거래소가 인증한 11개 전문 평가기관 중 2곳이 진행한다. 보통 기술신용평가기관(TCB; Technology Credit Bureau) 중 한 곳, 정부산하 연구기관 중 한 곳이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중 한곳에서 A, 또 다른 곳에서 BBB등급 이상의 평가를 받으면 통과된다. 이후 거래소의 상장 적격성 심사를 거쳐 심사결과가 확정된다. 촉망받던 비상장 바이오 벤처 몇몇 곳이 기술성 평가에서 고배를 마시며 '깐깐한 심사'라는 인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실제로 이 평가가 기술력을 보증할 수 있을만큼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춘 것일까.
막상 기술성 평가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은 제대로된 평가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바이오 분야 평가는 더욱 그렇다.
바이오의 경우 거래소가 인증한 평가 기관 중에서 유관 연구 기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보건산업진흥원 정도다. 이마저도 여건이 맞지 않으면 않으면 기술신용평가기관 중 두 곳이 선정되기도 한다.
전문 평가기관 선정은 거래소가 임의로 결정한다. 선정된 평가 기관은 1개월 내에 평가 결과를 내야 한다. 그 동안 진행되는 평가는 2번이다. 1차 평가는 기업 실사로 대표이사 IR등이 포함된다. 이후 평가기관이 질의지를 작성해 1주일 정도 뒤에 주관사와 2차 평가를 진행한다.
기술성 평가를 '질적 심사'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체크리스트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양적 평가'에 가깝다. 평가기관은 거래소에서 제공하는 양식에 맞춰 평가 점수를 산출하고 이 점수로 최종 등급을 낸다. 기술 인력의 수, 이들의 학력 및 경력 등 수준, 생산라인의 규모, 지적재산권의 수 등이 핵심적인 평가 항목이다.
특히 해당 신약이나 기술의 해외 기술수출 여부는 핵심적인 심사 항목 중 하나다. 해외의 제약사가 기술을 인정해 구매해갔을 정도면 충분히 기술을 갖췄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바이오 벤처에서는 '해외의 유령 기업과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책임을 외주받은 기관이 다시 해외 기업에 책임을 외주 주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평가기관에 심사를 맡기고 결과를 도출해내는 시스템도 꼼꼼하게 짜여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각 평가기관 입장에서는 ‘시간이 되면’ 일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한 평가기관 관계자는 “보통 공공 연구기관들은 기술성 평가가 주 업무가 아니다 보니 평가 일정 잡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라며 “오퍼가 와도 관련 전문가가 없거나 평가할 여력이 없어 못 맡는 경우가 많고, 맡는다 해도 바이오의 경우 각 세부 분야 전문가를 갖추고 있진 않기 때문에 보통 외부에서 전문가를 섭외해 평가단을 구성한다”고 덧붙였다.
평가단은 내부인력과 외부인력을 포함해 5~6명 규모로 구성된다. 이 중 해당 평가기관의 인력은 많아야 1~2명이 고작이다. 특히 바이오의 경우 보통 대학 교수나 타 기관 전문가 등 외부 인력을 중심으로 평가단을 꾸린다. 이들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는다. 상장 후 해당 기술에 허위와 과장이 섞여있다고 해도 이를 평가한 인력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한 평가기관 담당자는 “기술 평가를 할 때 기본적으로 거래소 양식에 맞게 심사를 하고 전문가가 봤을 때 추가 확인할 내용 있으면 추가하는 식”이라며 “1개월 기간이지만 두 번의 평가 일정 정도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보긴 힘든 상황”이라 설명했다.
평가 업체와 한국거래소 사이의 책임 소재도 명확하지 않다.
기술성 평가 통과가 곧 상장 예비심사 통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기술 평가를 통과해도 거래소의 심사에서 탈락한 사례가 다수 있다. 평가 기관들은 “기술성 평가는 보조 수단일 뿐 결정은 거래소에 달렸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또한 "내부적으로 기술평가 시스템이 있고 기술평가 결과는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최근 코오롱티슈진 사태와 관련해 “거래소가 바이오 기술을 평가할 수는 없으니 외부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며 “외부 평가 기관의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으면 상장 심사기관 입장에선 기술의 실상을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책임의 소재가 달라지는 셈이다.
결국 제도의 취지 핵심인 ‘기술력’에 대한 평가 책임은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시스템인 셈이다. 바이오 기업의 경우 고유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투자 결정의 핵심이지만, 평가나 심사 과정에서 신뢰할 만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많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는 "기술 평가를 받는 바이오 업체들은 본인들이 볼 때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평가를 한다고 생각해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며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평가에 절대적인 잣대를 들일 순 없겠지만 결국 이슈가 생기면 피해를 보는 건 투자자인 만큼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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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5월 19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