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으로 치솟은 주가, 한달만에 10% 추락
글로벌 변동성 영향 많이 받는 증시, 하반기 부정적
"달러 약세 기반 글로벌 공조 필요해"
-
"세상의 모든 근심을 짊어진 코스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증권사 전망도 대부분 상저하고에서 상고하저로 돌아섰던데 이제 '하저'가 시작된다는 신호 같네요. 현대통화이론(MMT)까지 언급하며 끌어올렸던 주가지수는 결국 불트랩(bull trap;속임수 상승)이었나 봅니다." (한 중소형 증권사 프랍 트레이더)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일제히 연중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초 국내 저성장 우려와 글로벌 변동성 부각에도 저점대비 10% 이상 올랐던 주가지수는 상승폭을 모두 반납했다. 상반기 증시 상승은 기대감이 만들어 낸 거품이었고, 이젠 코스피 1600선까지 대비해야 할 것 같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29일 1.25% 급락하며 2023.32로 연 저점을 찍었다. 같은 날 코스닥지수는 1.6% 하락하며 다시 700선을 내줬다. 31일 장중 기술적 반등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장의 분위기를 바꿀만한 매수세는 아니라는 평가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국내 증시는 코스피 2300, 코스닥 800 재입성을 말했다. 코스피는 3월29일부터 4월16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역대 최장기 연속 상승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4분기 8조8000억원대까지 떨어졌던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 규모는 올해 1분기 9조4000억원대로 회복됐고, 4월에도 9조6000억원으로 전달 대비 5% 늘어나는 추이를 보였다.
이는 주로 낙관적 전망에 기댄 상승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자국내 경기 후퇴 우려에 금리 인상을 포기한 게 방아쇠였다. 이를 기점으로 미중 무역분쟁 해소, 북미 평화협정, 중국의 성장세 지속, 소프트 브렉시트, 반도체 업황이 조기 회복 가능성이 부각하며 주가를 밀어올렸다.
3~4월 사이 미국에서 시작한 MMT 논쟁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서 회자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달러를 무제한으로 푼다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고, 상대적으로 주식 등 자산 가치는 상승할 거라는 논리가 힘을 받았다. 일부 중소형 운용사 운용역들은 이런 논리를 앞세워 '매수'(BUY)를 외치기도 했다.
-
문제는 그 사이 국내 산업경쟁력과 상장사 펀더멘탈은 악화일로였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국내 상장사 이익 전망치 컨센서스는 지속적으로 하락 수정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코스피 상장사 646곳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2% 급감했고, 2분기에도 34.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5월 한달 동안에만 2%포인트 추가 하향 조정됐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 편입 비중 조정도 예고된 악재였다. MSCI 신흥국지수는 현재 0.73%인 중국A주 비중을 연말까지 3.3%로 늘리고, 12.8%인 한국 시장 편입 비중을 같은 기간 12.08%로 조정할 예정이다. 5월28일이 1차 기준일이었다.
MSCI 신흥국지수 추종 자금 규모는 약 1300조원으로, 국내 증시에서 약 4조원 안팎의 자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5월 한달 동안에만 코스피에서 2조6700억여원, 코스닥에서 6000억여원, 선물시장에서 6900억여원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결국 펀더멘탈이 악화하고 수급 균형이 무너진 게 5월 증시 급락의 핵심 배경이었던 셈이다. 3~4월의 낙관적 전망이 증시를 끌어올렸기에 체감 낙폭은 훨씬 컸던 것이다.
악재는 모두 끝난 것일까. 주요 증권사 투자 전략 담당자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국내 증권사의 주식시장 전망은 지난해 연말 '상저하고'에서 올해 1분기를 지나며 대부분 '상고하저'로 돌아섰다. 지금은 '상고'의 끝자락이라는 평이 많다.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반기에는 이벤트에 좌우되는 종목별 장세가 펼쳐질 거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코스피를 비롯한 국내 증시도 글로벌 투심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5월 들어 전해지는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경제 지표는 매우 비우호적이라는 평가다. 최근 2주 사이 대만, 태국, 싱가포르, 멕시코 등 주요 개발도상국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다. 유럽연합(EU)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연초 1.8%에서 현재 1.0%로, 독일은 1.6%에서 0.7%로 낮아졌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시장에서 유일하게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마저 4월 핵심 자본재 수주 실적이 3월 대비 0.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재 수주 실적은 기업들의 핵심적인 투자 지표로, 경기 상승·하강 여부를 전망하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MSCI발 악재도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MSCI는 오는 8월과 10월 중국A주를 추가 편입할 예정이다. 하반기 투자 심리를 좌우할 대형 이벤트로 꼽힌다.
시장 일각에서는 2011년 8월의 증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와 지금의 국내외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당시 코스피는 2200선에서 3개월만에 1600선으로 폭락했다.
당시 미국은 리먼 사태 이후 진행한 양적완화를 종료한 상황이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자국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대형 악재가 터지며 시장이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턴어라운드하고, 이에 기반해 수출 위주의 국내 증시가 되살아나려면 2016년 2월같은 '글로벌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당시 달러 약세를 기반으로 중국은 공급, 미국은 수요의 역할을 담당하며 글로벌 경기가 급격히 살아났고, 여기에 양적완화로 인한 유동성 공급과 저금리가 겹치며 2017년 대세 상승장으로 이어졌었다. 2011년 위기도 9월 미국이 공개시장조작(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통해 투자심리 회복을 위한 국제 공조에 나서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지금은 이 같은 국제공조가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중국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드러내고, 미국도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천안문 사태'를 언급하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실체화하면서 양국 강경파의 입지가 흔들리기 전까진 비슷한 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무역분쟁 전선은 오히려 확장되는 추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 6월10일부터 멕시코에 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불법 이민이 근절되기 전까지'라는 정치적 단서를 달았기 때문에 벌써부터 해결이 난망하다는 평가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은 건 일단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증시는 4일에 이어 5일에도 상승세를 보였고, 이는 국내 증시에도 단기적으로 투자 심리를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다만 연준의 금리 인하는 결국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의 상황마저 악화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국내 경제에도 부담이 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전략 담당 연구원은 "하반기 증시 전망을 내놓아야 하는 시기인데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며 "코스피 밴드 하단을 낮추자니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일 것 같아 연초 전망 대비 상단만 낮추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02일 09:00 게재ㆍ6월6일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