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인 해외 SI 초빙…인수 시너지 효과는 불투명
사업성 악화 중 중국 환경 규제에 ‘50년만의 호황’
세컨더리 거래 기대감 커지나 “몸값 높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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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림포장그룹 M&A가 초기 순항하고 있지만 매각 성사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몇몇 과점사업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이라 기존의 국내 전략적투자자(SI) 후보는 기업결합 승인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또 해외 SI들은 물류 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인수 시너지 효과를 찾아야 한다. 세컨더리 거래로 풀어내려면 매각자 측 기대치를 충족하는 가격이 나와야 한다.
태림포장 매각은 지난 12일 오후 5시 매각주관사 모건스탠리를 통해 예비입찰 서류를 접수했다. 한솔그룹, 중국 샨잉(山鷹, Shanying)을 포함한 국내외 SI, 재무적투자자(FI) 등 다양한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10곳 내외로 거론된다.
매각자인 IMM PE는 이르면 8월 본입찰을 거쳐 연내 거래를 종결할 계획이다.
◇국내 SI 인수 시 경쟁제한성 상승…“결합 승인 불투명” “PEF 통해 시도할 수도”
동종 SI가 태림포장을 인수한다면 업계 통합 시 가장 큰 수혜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쟁제한성이 커지고 기업결합 승인 문턱도 높아지는 난제가 남아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는 관련 시장을 획정(劃定)한 후, 해당 시장의 집중 상황을 살피는 순서로 진행된다. 시장 집중도가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안전지대)엔 시장점유율(한 사업자 50% 이상, 3 이하 사업자 합계가 75% 이상 등) 확인 등만 거쳐 기업결합을 승인한다.
안전지대에 속하느냐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를 활용해 판단한다. HHI는 해당 시장 모든 참여자들의 점유율을 제곱해 합한 수다. 동일 시장 기업간의 수평 결합 때는 ▲HHI가 1200 미만 ▲HHI가 1200이상 2500미만이면서 HHI 증가분이 250미만 ▲HHI가 2500이상이면서 HHI증분이 150미만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 점유율 20%인 곳이 세 곳이라면 그것만으로도 HHI는 1200이 된다. 이 중 두 곳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HHI는 2000, 증가분은 800이 되어 안전지대를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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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 산업은 태림포장을 포함해 신대양제지, 아세아제지 등 소수 과점 업체가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존 과점사업자가 태림포장을 인수하면 안전지대를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골판지 사업은 크게 원지로부터 골판지 원단을 제조하고, 원단으로 판지상자를 제조하는 과정으로 나뉜다. 대부분 수직계열화가 이뤄져 있고, 이번 매각 대상도 태림포장그룹 전부라 사업별로 점유율을 산정할 실익이 있을지 불분명하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 시 안전지대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오면 정성적 평가가 좋지 않아도 큰 문제 없이 승인이 나고, 반대로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정성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승인을 받기 쉽지 않다”며 “골판지 산업은 과점 사업자들의 점유율이 높아 안전지대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동종업계 인수후보들이 '자가 소비하는 물량을 제외하자' , '수출이 이뤄지고 있으니 세계 시장 점유율을 따져야 한다', '골판지상자를 포함한 모든 포장재의 점유율을 살피자'는 주장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골판지 부문에서만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국내 골판지 후보가 태림포장을 인수하려면 사모펀드(PEF)를 활용하는 인수 구조를 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17년 한일시멘트는 LK투자파트너스가 결성한 PEF를 통해 현대시멘트를 인수한 바 있다. 12일엔 LK투자파트너스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해 PEF 지분 100%를 확보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경영목적이 아닌 단순투자활동은 경쟁제한 우려가 없는 것으로 본다.
◇해외 SI 초빙 공들였지만 '물류비용' 때문에 인수 시너지 애매
매각측은 이번 거래를 위해 해외 SI 초빙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력이 국내 사업이지만 외국계 IB를 매각주관사로 뽑은 것도 다양한 경쟁자를 확보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초기부터 나인드래곤(NINE DRAGON)을 비롯한 중국 회사들, 북미 골판지 포장 1~2위 업체인 인터내셔널페이퍼(International Paper)와 웨스트락(WestRock), 이 외에도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 업체들의 인수전 참여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현재까진 일부 외국 SI가 관심을 보였다. 관건은 이들의 인수의지가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진지한가 여부다. 표면상 태림포장과 해외 SI 사이의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인수가격에도 미칠 요인이 있다.
그나마 중국 후보의 가능성이 높게 매겨진다. 다만 골판지가 필요하다면 직접 국내 회사를 인수하는 것보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편이 수월할 수 있다. 한 중국 업체는 한솔그룹과 물밑에서 공동으로 인수 전략을 짜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경우, 해외서 폐지 수입을 규제하는 대신 완제품인 골판지 수입을 늘렸지만 최근엔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분위기다. 한중 관계가 부드럽지 않은 데다 중국 정부가 해외 투자를 탐탁지 않게 보는 점도 걸림돌이다.
먼 대륙의 기업들은 시너지 효과가 더 작을 수밖에 없었다. 인수전에 참여해 시장을 살피는 효과는 기대할 만 하지만 고부가가치 제품도 아닌데 물류 비용까지 감수해야 하는 점이 고민거리다. 다른 증권사 임원은 “골판지를 해외에서 사오는 비용이 더 드는 데다 국내 골판지 공급량도 충분하다”며 “해외 SI들 가운데 진지한 의사를 보이는 곳이 얼마나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컨더리 거래 기대감 커져…급격한 가치 상승 부담
사모펀드가 태림포장그룹의 새로운 주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유동성이 풍부한 국내 및 해외 PEF들이 다량 포진하고 있다. 시장 전망을 밝게 본다면 이들로서는 미소진 투자금 (Dry Powder) 해소를 위해 인수를 시도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특히 태림포장은 안정적 시장점유율과 수익성, 향후 시장 성장 가능성까지 사모펀드가 관심을 가질 요소가 많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점차 세컨더리 거래가 늘고 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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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관계자는 “태림포장은 아직 인터넷 쇼핑몰 활성화에 따른 매출 증가가 미미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박스 수요 증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덩치가 커지고 미소진 자금이 많은 리즈널 펀드들의 관심이 높아 SI들과 각축전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남은 문제는 결국 '가격'이다. 세컨더리 거래 성사 여부는 새 주인으로 나선 사모펀드도 이익을 낼 여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인수 가격이 비싸면 향후 수익률을 남기기 쉽지 않다. 좋은 실적이 얼마나 유지될 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IMM PE는 2015년 3500억원을 들여 태림포장공업(현 태림포장)과 동일제지(현 태림페이퍼)를 인수했다. 이후 사업 구조를 간결하게 정리했지만 수직계열화 한 공정간 마진율이 줄어들면서 수익성도 악화하기 시작했다. 한 때 투자 원금 수준에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중국발 환경 규제가 전환점이 됐다. 중국으로의 폐지 수출이 막히면서 골판지 원가율이 낮아졌고, 전 공정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2018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전년 대비 두 배로 뛰었다. 이례적 호황이라는 평가가 많다.
투자회수 실적이 필요한 IMM PE와 인수자간 힘겨루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른 M&A 자문사 관계자는 “태림포장의 실적이 급격히 개선되긴 했지만 이런 호황의 지속성이 결국 관건”이라며 "후보들이 시장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1조원대 금액을 제시할 지가 중요한데 이 가격을 받아들이지 못해 완주를 포기하는 인수후보들도 생겨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동종 업계의 전망은 나쁘지 않다. 제지 업체들조차 ‘50년만의 첫 호황’이라며 의아해 하지만 지금의 실적이 크게 꺾이진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인터넷 쇼핑의 성장세는 꾸준할 것이고, 중국 정부의 기조가 당분간은 바뀌진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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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13일 11:1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