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등에 영향은 크지 않아
"하향 가능성 열어둬야" 의견도
미래차 시장, 대규모 투자 불가피
정의선 체제의 빠른 대응 '주목'
지배구조 개편 등 숙제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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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부진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며 'AAA'라는 국내 최고 신용등급은 위협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끊임 없는 주주가치 제고 요구와 노사 갈등·대규모 리콜·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 등 불안한 요소가 눈앞에 산적해 있다. 이 상황에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그룹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정 부회장 체제로 전환한 이후, 현대차 내부에선 대대적인 세대교체, 인적쇄신, 전략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비해 한 발 또는 그보다 훨씬 뒤쳐진 미래차 시장에선 선두 업체를 따라잡기 위한 절실함도 다소 느껴진다. 현대차는 진짜 위기를 맞은 것일까? 아니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기 위한 긴 준비 과정에 돌입한 것일까?
◇ 고착화한 낮은 영업이익률, AAA 유지도 미지수
꾸준히 4%대를 지켜오던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이미 2% 초반대로 떨어졌다. 올해 들어 실적이 반짝 반등하는가 싶지만, 중국과 사드(THAAD) 갈등의 여파가 남아있던 지난해의 기저효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제 1시장인 중국에서 판매율을 끌어올리긴 쉽지 않다.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처음으로 가동한 베이징 제 1공장은 올초 폐쇄했다. 독일과 일본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성장할 동안 현대차는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다. 현지 업체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경쟁력은 서서히 약화해 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한 때는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아예 철수할 것이란 얘기까지 돌았다. 판매량은 줄었지만 중국시장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다. 현재 상황에선 큰 성장세를 기대하기 보단 현상유지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미국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입산 완성차 업체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당분간 연기했으나, 추후 정치적인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미국 정부가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최악의 경우 현대차는 원가경쟁력을 잃고, 가성비로 승부를 봤던 전략의 대대적인 수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엔진과 에어백 결함에 대해 대규모 리콜 조치가 시행되면 미국 시장에서 수익성 악화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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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현대차의 AAA 신용등급의 전망을 지난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사업경쟁력 악화로 근원적인 수익창출력이 저하했고, 주요 시장에서의 판매 회복이 지연되면서 실적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요 논리다.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차의 ▲차량부문 매출액 대비 조정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지표가 10% 미만 ▲차량부문의 조정 EBITDA 지표가 1배를 지속적으로 초과할 경우 신용등급 하향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해부터 하향 가능성 지표에 포함된 상태다. 기아차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눈에띄는 수익성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등급 하향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등 가장 큰 시장에서 아직 부진한 모습이고, 수익성은 기대만큼 올라오지 못했고, SUV 판매 확대를 필두로 한 믹스 개선에도 불구하고 기존 차량의 경쟁력 회복이 수반되지 않았다”며 “현대차 신용도에 대한 물음표는 현재 진행형이고, 최고 신용등급에 부합하는 사업경쟁력 입증을 위해서는 뚜렷한 실적 개선이 확인돼야 한다”고 했다.
◇ 현대차는 꼭 AAA를 유지해야 할까?
국내 최고 신용등급인 ‘AAA’는 기업의 채무 상환 불이행 위험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신용평가 기관으로부터 AAA 등급을 부여받은 민간기업은 SK텔레콤과 KT, 현대차이고 제조사로는 현대차가 유일하다.
현대차의 신용등급 하향은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지만, 신용등급의 변화가 기업가치 또는 재무상황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회사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하거나, 외부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상당하기 때문에 당장의 신용등급 변화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대외 이미지와 그룹의 평판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차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론을 다소 다르게 봐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선 현대차를 제조업 기반의 완성차 업체로 보기보단, 현대모비스도 포함해 일종의 투자회사 형태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신용등급의 하향 가능성은 앞으로도 늘 열려있다고 봐도 무방하고 이를 절대적 가치로 여길 필요도 없다”며 “경기에 민감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소비 둔화에 따른 자동차 시장의 전반적인 성장세 저하와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차 시장에 대비한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등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정의선 체제 “지난 10년보다 최근 1년의 변화를 더 체감”
자동차 시장의 변화는 어느때보다 빠르다. 내연기관의 시대는 저물고 있고 그 자리를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 차량 등 차세대 이동 수단이 대체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기술과 자동차의 연계는 빨라졌고 실제 생활에 점점 밀접해 지고 있다. 글로벌 톱티어(Top Tier) 완성차 업체들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을 위해 수년 전부터 움직였다. 현대차는 한발 늦은게 사실이다.
정의선 부회장 체제에 돌입한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현대차 임직원들도 “지난 10년 동안 회사가 변한 것보다 최근 1년의 변화가 더 빠르다”고 할 정도다.
현대차를 이끌던 정몽구 회장의 가신그룹은 모두 물러났다. 정 부회장의 머리와 손, 발이 되는 핵심 자리는 글로벌 기업 출신의 외국인 임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무대인 현대차는 끊임없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는 인력과 조직의 구성을 요구받아 왔다. 현대차에 높은 배당과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했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도, 외국인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진을 추천했다. 이는 거수기 역할을 했던 정부 또는 관료, 학자 출신 인사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현대차를 견제하고 조언할 수 있는 인사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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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엘리엇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외국인 사외이사를 추천해 주주총회에서 승인 받았다. 외국인 임원 중 최초로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 본부장 자리에 올랐고, 또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막론하고 고성능 차량 및 디자인, 마케팅 분야에서 외국인 임원들의 약진은 눈에 띈다. 현대차의 핵심인 전략기술본부 또한 글로벌 기업과 투자은행(IB)·사모펀드(PEF) 출신의 인재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현대차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도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로 인력을 충원하겠다고 밝힌 것을 보고 한편으로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라고 평가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로 통하던 수직계열화를 위한 M&A는 2015년 삼성동 한전부지 인수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최근 현대차의 M&A는 미래 모빌리티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회사의 지분 투자에 맞춰져 있다. 분야는 차량공유·ICT·인공지능·의료서비스·드론·라스트마일 물류 등 다양하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자체 기술’로 ‘독자 생존’을 외치던 현대차에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돼 왔다.
국내 자동차 산업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가 앞으로 완성차 업체나 대형 부품업체를 통째로 인수해 운영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수 있다”며 “빠르게 변하는 자동차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내외 정치 상황 또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인트벤처(JV) 설립 또는 소수 지분 투자를 통한 기술력 확보 등 가성비 높은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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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한 사업 환경 속 지배구조개편도 과제…투자 성과 입증도 ‘필수’
현대차의 빠른 변화는 다행스럽지만, 글로벌 사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한층 격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은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 입지에 또 한번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 관세부과가 연기된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정의선 부회장의 가장 큰 숙제는 ▲본원적인 사업의 회복 ▲미래차 시장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oower) 입지구축 ▲지배구조(거버넌스)의 불확실성 해소 등으로 평가된다.
특히 국내 규제당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요구받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은 하루 빨리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 실패 이후 현대차는 글로벌 IB와 국내 증권사 등을 수시로 불러 새로운 지배구조개편안을 고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이 한 가지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현대차가 ‘정공법’을 택할 것이란 점이다. 지난해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안은 그룹 최상단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주주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무산됐다. 삼성그룹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한쪽의 기업가치를 무리하게 부풀리거나, 이로 인해 오너일가가 수혜를 받는 일을 택하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오너일가의 자금력을 고려할 때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기업의 가치가 서서히 올라가는 모습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는 올해 들어 코스피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NDR)도 급격히 늘었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편법적인 수단을 사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며 “지배구조 개편은 단순한 권력의 이양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그룹 이미지와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2년 간 크고 작은 투자들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앞으로 나아갈 비전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꾸준한 M&A 활동은 수반돼야 할 과제로 꼽힌다. 수년 후 투자 기업들의 기술이 현대차 제품에 접목되고, 가시적인 실적으로 연결된다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글로벌 각 거점에 생산기지를 갖춘 몇 안되는 기업이다. 이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제품을 보다 빠르게 보급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가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게임체인저로서 탈바꿈하기까지 정의선 부회장의 어깨에 많은 짐이 놓여있다. 지금의 재무제표가 현대차의 미래를 제대로 반영할 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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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