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성장·위험부담 SI로 이전
펀드 규모 클수록 관리수익 쏠쏠
사모펀드 장기적 평판도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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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PEF) 업계에선 기업을 키워 큰 성공을 꾀하기보다는 안정적인 관리보수를 얻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경쟁 심화로 투자 기업의 성장성을 가리는 것보다 기회마다 자금을 풀어 기본 보수라도 챙기는 것이 중요해졌다.
거래를 발굴하고 프로젝트펀드를 결성해 수수료를 받는 새로운 사업 모델도 생겨났다. 투자 실적을 마련하기 위해 최소한의 보수만 받고 자금 수요처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운용사들도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해 비효율을 제거하고 기업 가치를 키워 파는 역할을 한다. 막대한 성공보수(Carried Interest)를 기대하며 투자를 집행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성공보수를 챙기는 경우가 드물다. 일정 수익률 기준을 넘기 어렵고, 기준을 넘어도 정관 해석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블라인드펀드는 포트폴리오 중 1~2개만 망가져도 성과보수를 기대할 수 없다.
국내 운용사들은 성과보수보다 안정적인 관리보수에 눈을 돌리고 있다. 회수 성과는 나중 문제고 일단 펀드를 결성해 보수를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운용사 입장에선 투자 실패보다 투자금을 남기는 것이 더 부담스럽기도 하다. 대형 운용사들의 자금 소진 경쟁이 치열해졌다.
기업 성장의 과실과 위험 부담은 전략적투자자(SI)에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앞장서 경쟁입찰에서 승리한 후 대기업을 끌어들이거나, 대기업 투자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관리보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위험도 줄어들기 때문에 운용사들도 눈높이를 낮춰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대기업과 관계 형성이라는 부가 수입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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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들이 관리보수에 힘을 싣는 이유는 기관출자자(LP)들의 성과보수 지급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과보수 지급 전에도 운용사와 LP가 수익을 공유하는 캐치업(Catch up) 제도가 도입되고 운용사의 제안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기본적으론 IRR(내부수익률) 8%를 넘어야 한다. 위축되는 대기업, 국내 경제 침체 등이 맞물린 상황에선 이를 넘기 쉽지 않다. 갈수록 커지는 펀드 규모를 감안하면 운용사들은 관리 보수만으로도 쏠쏠한 이익을 낼 수 있다.
LP들의 보수적인 성향도 영향을 미친다. 운용사의 ‘채권성 투자’가 달갑진 않지만 프로젝트펀드, 혹은 공동투자펀드(Co-investment fund)에 참여할 때는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먼저 원한다. 운용사도 애초에 회수 때 큰 돈을 벌기보다 펀드 결성에 의의를 둬야 하는 상황이다.
한 대형 LP 투자책임자는 “감시자가 많은 국내 LP 특성상 높은 수익률 보다는 SI로의 위험 전이, 회수 무산시 공동매각요구권, 최소한의 수익성 조건 등을 구조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관리보수’에 목적을 둔 투자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SI를 안전장치로 둔 거래를 발굴해 LP에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대가로 관리보수를 받는다. 프로젝트펀드가 늘수록 운용사가 가져가는 돈도 많아진다.
한 외국계 PEF 운용사 대표는 “PEF가 성과보수를 받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단순히 관리보수를 얻기 위한 ‘바이앤드홀드(Buy & Hold)’ 전략이 많아질 것”이라며 “‘뱅커 사모펀드’라는 새로운 길을 연 SJL파트너스가 대표적이다”라고 말했다.
운용사들이 당장의 관리보수에 급급하다보니 대행사로서 역할이 부각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돈이 부족하거나 규제 환경 때문에 M&A에 나서기 어려운 주체를 대신하는 방식이다. 투자 실적이 필요하거나 당장 운영자금이 필요한 운용사 입장에선 마다하기 어렵다.
우리금융지주는 웰투시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한 아주캐피탈에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다. 지주 전환을 기다려 손을 바꾸는 전략을 짰다. 우리은행은 웰투시인베스트먼트의 LP기도 하다. 사모펀드가 승리한 금융회사 M&A에선 사모펀드가 손잡은 금융사가 다음 주인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한 증권사 M&A 담당 임원은 “관리보수 40bp(0.4%)만 대행료로 주면 고민을 해결해주겠다는 운용사들은 많다”며 “LP와 텔레파시가 통하듯 알아서 움직이는 운용사가 많아지면 사모펀드 제도의 취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형 PEF 운용사 대표는 “신생 운용사 입장에선 관리보수가 많지 않은 프로젝트라도 외면하기 어렵다”면서도 “장기적으로 평판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잘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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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0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