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최소화 전략, 수익 좋은 펀드서 자금 빼 메워…자급 유입 '비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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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 침체로 인한 자산운용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ㆍ중 무역분쟁과 강(强) 달러, 미국 금리 인하 등 국내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 대외 변수들이 산적했고, 이에 따른 외국인들의 자금 이탈은 심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점점 상승장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외국인 자금의 이탈과 더불어 국내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자금도 빠지고 있다. 중소 운용사를 중심으로 개인투자자들의 ‘국내 주식형 공모형 펀드’의 환매가 늘었고, 기관들도 국내 주식투자에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자금 경색이 심화했다.
이 같은 시장상황은 국내 운용사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꾸준히 하락하면서 올 상반기까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좋았던 운용사를 중심으로 추가 펀드레이징을 하지 못하는 기현상까지 발생한다.
◇ 외국인·펀드자금 이탈에 2000선 눈앞에 둔 주식시장
지난 한달간(5월12일~6월12일)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약 2조2000억원을 순매도 했다. 코스닥 시장도 마찬가지로 약 6500억원어치의 외국인 자금이 빠졌다. 같은 기간 국내 연기금에서 코스피 약 1조7400억원을, 코스닥에서 약 1800억원을 순매수 했지만 떨어지는 지수를 뒷받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2개월간(4월12일~6월12일)의 추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1조8000억원의 자금을 뺐다. 펀드를 운용하는 금융투자업계의 순매도 규모는 3조원이 넘으면서 하락장을 조성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올해 들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1월까지만 해도 약 67조원에 달하던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지난 4월, 5조원 가까이 빠진 62조원을 기록했다. 불안한 대외 변수가 산적해 있고, 시중 자금은 국내보다는 해외로, 주식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는 채권 시장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이 같은 자금흐름에 코스피 지수는 6월 초에는 2000선에 근접하며 위기감이 커졌다. 6월 중순이 넘어서 증시가 잠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펀더멘탈의 변화라기보단 코스피 지수가 2050선에 근접하며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더 우세하다.
국내 기관투자가 한 관계자는 “대외적인 변수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고, 국내 증시에 호재보다는 악재로 작용할 변수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증시 상황을 낙관하기만은 어렵다”며 “큰 손인 연기금뿐 아니라 국내 주식형 펀드 운용사들 역시 수익보단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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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관은 ‘손절’, 개인은 ‘환매’ 악순환…”운용사 투자 자금 모으기 힘들다”
이미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펀드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공모형 주식 펀드의 ‘환매’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A운용사가 1000억원 규모의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환매를 대비해 200억원가량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200억원 이상의 환매 요청이 들어와 기존에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매도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는 경우다. 개인투자자들의 환매요청과 별개로 주식형 펀드의 판매가 잘 돼 자금이 꾸준히 유입된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현재 상황에선 낙관하기 어렵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주식투자 담당자는 “중소형 규모의 운용사들이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몰리면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내다팔아 자금을 마련하는데 새로 유입되는 자금이 부족하다보니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했다.
기관투자가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곳의 운용사에 위탁을 맡겨 주식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의 경우, 올 상반기와 같은 하락장에서 수익을 낸 운용사들의 자금을 빼거나 추가적인 출자를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가 나타난다. 대부분의 운용사들의 주식 운용 수익률이 저조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록한 운용사들의 자금으로, 나머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러다보니 황당하게도 "수익률이 좋았다"는 펀드에서 오히려 자금을 빼버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
실제로 한 중소 운용사 주식운용 담당자는 “상대적으로 다른 운용사에 비해 수익률이 괜찮았는데 추가 펀드레이징을 위해 기관투자가들을 만났다가 오히려 출자금을 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개인투자자들의 자금도 빠지고, 기관들의 추가 펀딩까지 원활히 되지 않으면서 상당히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다”고 했다.
◇ 운용역 성과급은 이미 포기…”내년도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은 국내 주식운용사들엔 치명타이다.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저조하면서 일부 펀드매니저들은 당장 내년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수익률을 내지 못한 주니어급 일부 펀드매니저들은 운용하고 있는 펀드를 내어줬다. 비교적 고연봉 직종에 속하는 펀드매니저들은 활황일 때만해도 수억원이 넘는 성과보수는 기대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운용사들은 수익률에 따라 매년 한번씩 성과보수를 책정하지만 일부는 상반기와 하반기에 나눠 지급하기도 한다. 국내 한 중소 운용사의 흔히 가장 잘나간다는 한 펀드매니저의 지난해 상반기 성과보수는 억(億) 단위를 넘어섰는데, 올 상반기엔 5000만원도 채 받지 못했다. 기본급이 낮고, 성과보수가 높은 펀드매니저의 연봉 구조상 증시 침체에 따른 수익률 저하는 곧 연봉의 수직 하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부 주니어급 펀드매니저들은 개인투자자들의 환매가 이어져 펀드규모가 쪼그라 들면서 운용중인 펀드를 시니어급 매니저에게 넘겨주는 상황도 생기기도 한다.
국내 운용사 한 관계자는 “실제로 상반기에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주식 펀드매니저를 아직 못봤다”며 “현재 같은 증시상황에 연말에도 인센티브를 기대하긴 더욱 어렵게 됐고, 최악의 경우에 자리마저 위태로운 매니저들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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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6월 1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