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아시아나 등 정부 주도 거래도 안갯속으로
"웬만한 대기업 M&A는 모두 영향"…JV 설립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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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외교 마찰이 통상 분쟁으로 치달으면서 국내 M&A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경쟁당국이 승인 과정에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시간을 끌 경우 M&A 작업이 무산되거나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통제 조치를 발동했다. 작년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다. 우리 정부도 이를 보복적 성격으로 규정했고,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일본이 본격적인 경제 보복에 나서면서 국내 M&A 업계도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우리 기업이 일본의 내수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굵직한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 영업을 한다. 웬만한 대기업의 M&A는 핵심 시장인 일본의 경쟁당국의 승인을 거쳐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내각부 내 공정취인위원회(JFTC, Japan Fair Trade Commission)가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위원들은 다른 사람들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도록 돼 있지만 정부의 정책 기조와 완전히 분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각 국의 경쟁당국들이 긴밀한 공조 체계를 갖추고 있다지만 이렇게 이해가 상충되는 사례에서까지 협조를 기대하긴 어렵다.
가장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거래는 역시 대우조선해양 M&A다.
대우조선해양 M&A는 세계 1, 2위 조선사의 통합이다. 가장 높은 벽은 고객사가 많은 유럽 경쟁당국이지만 일본도 만만찮은 걸림돌이다. 일본은 이미 작년에 한국 정부가 조선업계에 부당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자국 조선산업에 피해를 입혔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바 있다.
정부는 일본의 심기를 거스를까 대우조선해양 전환사채(CB) 조건 조정도 조심스레 진행해왔다. 사실상 정부 주도의 거래에 심사가 뒤틀린 일본 정부와 경쟁당국이 적극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또 다른 정부 주도 거래인 아시아나항공 M&A의 전망도 불투명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인천공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노선 9곳, 김포공항 2곳, 부산공항 1곳 등 12개 일본 노선을 가지고 있다. 2017년엔 일본 내 미래 현금매출채권을 유동화해 2000억원가량을 조달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일본 내 시장점유율은 미미하더라도 다른 항공사나 기업이 인수할 경우엔 일본의 기업결합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다.
M&A 자문사 관계자는 “일본은 미국, 유럽 등과 함께 기업결합 승인 기간이 짧은 곳에 속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나 아시아나항공 등 민감한 M&A의 승인 과정에서 시간을 끌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며 “웬만한 대기업은 모두 일본 관련 사업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경색 국면일 때는 M&A를 추진하기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NXC 매각은 무산된 것이 외려 다행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해당 거래의 핵심은 일본에 소재, 상장해 있는 넥슨이다. 반년 이상 공들인 거래가 무산되며 비판이 많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선 매각 계속 결정을 내렸더라도 손에 남는 결과가 없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기업과 외국 기업간 사업제휴도 조심스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 기업과 외국 기업이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할 때 경쟁 제한 가능성을 높이 본다면 과정이 험난해질 수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들일수록 부담이 커진다.
지난 2008년 세계 2위 철광석 생산업체인 리오틴토는 3위 업체 BHP빌리턴을 인수하려다 각국 경쟁당국의 반대에 부닥쳤다. 두 회사는 50대 50 지분율의 합작사를 만들어 생산부문을 합치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이 역시 반대를 불러왔고 결국 기업결합신고를 자진 철회했다. 당시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일본 공정취인위원회 역시 합작사 설립에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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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7월 0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