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정부가 주도한 수수료에 토스 수백억 이익날 듯
인프라 비용은 은행권 민간 사단법인에 떠넘겨
'역류 방지 법제화'에도 논란...보안 우려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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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官) 주도의 오픈뱅킹 도입에 대해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오픈뱅킹은 은행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핵심인만큼 일정 부분 개입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사실상 직접 수수료를 책정하고, 선 도입 후 후 법제화 수순을 밟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는 지적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혁신·벤처기업 육성'이라는 코드에 맞춰 '과속' 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핀테크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논란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은행권 실무협의회는 지난 4월 핀테크 기업들의 오픈뱅킹 사용료를 건당 40원(입금이체 기준), 중소형사의 경우 20원으로 확정했다. 현행 오픈 API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는 금융결제원 이사회에서 최종 확정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적 조정안의 성격을 띄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정부 주도로 설정된 가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행 대비 10분의 1',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더 낮은 수수료 적용'이라는 기본 원칙을 정부에서 제시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 결과 올해 12월 오픈뱅킹이 전면 도입되면 당장 망 사용료 부담을 안고 있던 핀테크 기업들의 실적은 대거 턴어라운드 할 전망이다. 이에 '영업적자' 회사가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토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548억원에 영업손실 445억원을 기록했는데, 616억원에 달하는 망 사용료 등 지급수수료 때문이었다. 당장 지급수수료 부담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것으로 가정하고 이를 지난해 실적에 적용하면, 토스의 영업손익은 109억원 흑자로 돌아선다. 카카오페이 역시 지난해 965억원에 달했던 영업적자가 162억원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에 건당 40원 안팎의 이용료를 내는 영국 레볼루트를 정부가 '오픈뱅킹 핀테크 혁신의 모범사례'로 꼽은 상황이었다"며 "정책이 핀테크 기업의 실적을 만들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존 은행권은 인프라 비용에 대한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진다.
오픈뱅킹이 도입되면 거래규모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영국의 경우 오픈뱅킹 API를 통한 월간 호출 건수가 2018년 6월 190만건에서 지난 3월 3820만건으로 9개월만에 20배 늘었다. 정부 역시 금융결제원의 전산시스템을 증설하고 24시간 실시간 장애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오픈뱅킹 도입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금융결제원 전산시스템 증설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비용은 금융결제원 예산으로 충당된다. 사실 금융결제원도 민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들이 낸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핀테크 육성이라는 정부 정책을 그 최대 피해자인 은행들이 낸 비용으로 부담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결제원이 정부 정책으로 인한 비용을 '덤터기' 쓰는 건 이번 경우 뿐만이 아니다. 서울형 모바일 지급수단인 '제로페이'가 사용할 플랫폼 초기 설치비 39억여원을 모두 금융결제원이 부담했다. 매년 필요한 운영비 35억여원 역시 금융결제원의 부담이다.
정부가 금융 관련 혁신정책을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민간기관인 금융결제원과 기존 은행권의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전자금융거래법과 신용정보법 개정을 통해 '제도의 안정성과 항구성'을 보장하겠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추후 은행권 자율 규약에 따라 이용료나 이용기관을 임의로 결정할 수 없도록 법에 못 박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연내 개정'이라고 일정을 공개했지만, 현재 국회 상황 등을 고려하면 올해 12월 오픈뱅킹 전면 도입 이후에야 법제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PSD2(Payment Services Directive 2) 지침(Directive), 일본의 은행법 개정, 호주의 경쟁 및 소비자법 개정 등 해외의 오픈뱅킹 정책이 법 개정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EU의 지침은 일종의 표준법안으로, 그 자체가 법적 집행력을 가진 것을 아니지만 표준법안을 참고해 회원국이 2년 내 국내법으로 도입해야 한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법제화의 순서와 속도, 그리고 취지가 다소 이해가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해외에서는 오픈뱅킹에 대해 선 법제화 후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순차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법률안의 주요 내용 역시 은행의 API 공개 의무가 핵심이며, 수수료 등 구체적인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세세한 규제안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정부가 오픈뱅킹 도입 주요 사례 중 하나로 꼽은 일본 은행법 개정안은 '오픈 API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다소 느슨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조차 법 시행 후 2년이라는 유예기간이 부여됐다. PSD2역시 18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 지난해 2월 오픈뱅킹 도입을 천명한 호주의 경우 주요은행은 2020년 7월까지, 기타 은행은 2022년 7월까지로 일정에 차등을 뒀다.
오픈뱅킹이 빠르게 도입되면 될수록 이득을 보는 건 결국 핀테크 기업들이다. 사실상 '후 법제화'를 선택한 정부안에 대해 '핀테크 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원인 중 하나다. 게다가 '기 시행 정부안'의 퇴보를 막기 위한 법률 도입은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불신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미국이 왜 의무 규정 없이 소비자금융보호국이 '제3자의 계좌정보 접근을 허용하는 방식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수준에 그쳤는지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 금융권에서는 보안에 대한 우려도 적잖이 드러내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 일상화하고, 대형 은행에서조차 보안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영세한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금융 정보에 접촉할 수 있게 되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진행된 오픈뱅킹 보안 설명회에서 일부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실사용환경에서의 모의해킹테스트까지 포함된 금융당국의 보안요건에 대해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영국·EU는 오픈뱅킹을 '공정거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정부는 '핀테크 육성'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어 기존 금융사업자들의 시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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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7월 1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