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어 전방위 타격 우려
광물성·화학공업·플라스틱 제품 등 日 의존도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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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이어 일본산 소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 전역으로 충격파가 확산할 전망이다.
2일 일본 정부는 아베 신초 총리 주재로 각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공포를 거쳐 21일 후 시행되는데 이르면 이달 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색국가는 군사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물품 혹은 기술을 수출할 때 별도 허가를 받지 않도록 우대하는 나라를 말한다. 일본의 이번 조치로 1102개 품목에 대해 강화된 수출 규제가 적용된다. 한국 기업이 해당 품목을 들여오기 위해선 건마다 부품의 활용처에 대한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가 자의적으로 이뤄진다면 사실상 수입 자체가 어려워진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산업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다.
일본은 지난달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결정으로 규제 대상이 더 많아져 2차 피해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수입 규모가 크고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고위험 품목은 83개다. 이 중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는 37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에 필수인 섀도마스크, 반도체 제조용 웨이퍼, 각종 공정장비 등이다.
섀도마스크는 유기물이 기판 위 특정 위치에 증착하도록 돕는 소재로 일본의 두 회사가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실리콘 웨이퍼 역시 일본의 신에쓰와 섬코가 세계 시장점유율 6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으며 한국의 일본산 수입 비중도 40%에 육박한다.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에 그치는데 최근 고도화하는 장비는 일본산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역시 80% 이상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재고 확보 및 장비 국산화에 뛰어들었으나 당장 성과를 내긴 어렵다. 기술이 있는 경우도 상용화가 이뤄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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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의 충격파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다른 산업으로도 퍼져나갈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리포트를 통해 지난해 일본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이 48개라고 밝혔다. 이들 품목의 총수입액은 27억8000만달러로 광물성 생산품(10억9000만달러), 화학공업 및 연관공업의 생산품(5억4000만달러), 플라스틱 제품과 고무 제품(5억1000만달러) 등이 대부분이었다.
자일렌, 톨루엔 등 합성수지 기초 원료가 제재 품목에 들어간다.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으나 공급선 확보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수소전기차의 핵심인 탄소섬유도 일본산 비중이 높다. 도레이사가 글로벌 시장점유율 40%를 차지하고 데이진, 미쓰비시케미칼 등까지 합하면 일본 3사 점유율이 60%에 달한다. 현대자동차가 효성첨단소재가 생산하는 탄소섬유 안전도 테스트를 하고 있지만 안전성을 입증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 수소차용 부품을 생산해 온 현대제철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공작기계 분야에서 일본산 비중은 20%대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금속 공작기계에선 일본 의존도가 40%에 달한다. 핵심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삼성SDI·SK이노베이션·LG화학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 역시 부품 조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베터리를 감싸는 핵심 부품 인 파우치 필름을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파우치 필름 공급 논의를 진행했지만 아직 일본산을 대체할 기술력은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일본산 수입이 끊기면 배터리 생산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분이 어떻든 이번 갈등의 핵심은 중국 다음 자리를 둔 동북아 패권 다툼이란 시각이 많다.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갈등이 장기화 하면 대기업은 물론 중소 협력사까지 위험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가능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즉각적인 악영향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본산 부품을 대체할 수 있느냐, 부품 대체로 인한 가격 상승분을 고객들에 전가할 수 있을 것이냐에 따라 충격파의 크기가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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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02일 13:2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