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전쟁, 北 미사일 도발에
코스피 2000선도 붕괴, 코스닥 3년 새 최저점 눈앞
‘비용쓰는 부서’로 인식된 리서치센터
증시 하락에 리포트 ‘의견’도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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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무역분쟁,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은 한국 증시에 직격탄이 됐다. 지수와 개별 종목을 막론하고 상승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증권사들의 백오피스와 리서치센터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평소와 달리 개별 종목에 대한 매수(BUY) 리포트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개별 기업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매도(SELL) 리포트도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몇 안되는 인력으로 꾸려가야 하는 중소형 증권사들의 피로감은 더 큰 가운데, 국내 주요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은 “당장 내년을 기약하기 어렵다”며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본격화한 올해 초부터 국내 증시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결국 일본이 2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긴장 수위가 최고조에 달했다. 한 동안 평화 무드에 돌입했던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예측하기 힘든 대외 변수가 산적한 상황에서 국내 증시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하반기에 들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 코스피는 2일 장중 한 때 2000선이 붕괴했다. 코스닥 시장은 3년 만에 600선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은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의 수익률과 유사한 상황. 그렇다고 인덱스 펀드들의 수익률도 긍정적이진 않다.
개별 종목은 이벤트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다. 기업의 인수·합병 또는 기술 수출 등과 이벤트에 급등락했고, 한일 간 갈등이 격화하면서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테마주’ 외에는 주가 상승을 기대할 만한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개별 기업들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증권사들은 주식투자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대신 비상장 기업들에 대한 메자닌투자 또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평가받는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 주식운용 한 담당자는 “국내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국내 주식투자를 자제하고 메자닌과 비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라며 “증시를 받쳐 줄 기관들이 떠나면서 증시의 활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고 했다.
증시의 하락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증권사 부서는 단연 주식운용본부다. 증권사의 수익을 상당부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실적 부진은 전사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증권사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곳은 주수익원인 주요 부서보단 백오피스, 즉 리서치센터다.
애널리스트들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정규직 비중은 줄어들고, 수억원에 달하던 연봉도 이미 옛말이 됐다. 국내 증권사들이 국내 주식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애널리스트들의 입지는 어느때보다 좁아졌다.
국내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금융회사들은 외국계와 다르게 리서치센터를 ‘비용’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증시가 이같은 하락세가 계속된다면 애널리스트들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당장 내년을 기약하기 힘든 연구원들도 상당히 많다”고 했다.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의 애환(?)도 이해할 만하다.
개별 종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종목 리포트를 내는 것도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개별 종목의 방향성을 예측하지 못한 증권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솔브레인의 투자자들은 “솔브레인은 액체 불화수소 제조기업으로 가스 불화수소와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리포트를 낸 키움증권을 지난달 말 형사고발 했다. 솔브레인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본격화 한 이후 대체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가는 크게 올랐으나, 리포트의 발표 이후 주가가 반토막 났다. 투자자들은 키움증권이 허위사실 유포를 통해 시세 조종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의 일탈로 인한 피해는 현재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더 촘촘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4년 한국투자증권 한 애널리스트는 CJ ENM의 미공개 정보 거래 혐의로 기소됐고, 2016년엔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등 약 10곳의 금융사를 한미약품 미공개 정보 이용으로 남부지검이 압수수색했다. 2018년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배당금 지급 오류를 이용한 애널리스트들의 주식 매도가 도마위에 오른 바 있다.
국내 증권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리서치센터 한 팀장급 인사는 “사실 최근 리포트엔 매수와 매도 시그널을 주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깊이있는 보고서를 만들어 내면 꼬투리를 잡힐만한 사안들이 많기 때문에, 지극히 객관적인 내용들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리포트를 내는 게 사실이다”고 했다.
리서치센터의 입지는 예년만 못하고, 애널리스트들의 운신의 폭도 좁아졌지만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보고서를 써내야만 하는 곳도 있다. 20명 미만으로 운영되는 40여곳의 리서치센터들이 그 대상이다. 기관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선 일정수준 이상의 보고서가 리서치센터에서 발간돼야 하기 때문에 4~5명의 인력으로 반 년만에 약 60여건 이상의 보고서를 만들어 내야하는 곳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1년에 2번 거래 증권사를 평가해 증권사에 자금을 위탁한다. 거래 증권사의 등급은 1~3등급으로 분류된다. 높은 등급은 당장 자금유치 효과 외에도 다른 기관자금 거래에서 평판 역할을 톡톡히 한다. 100점 만점으로 구성되는 평가항목 중 리서치센터의 정량평가 15점, 리서치 특화 5점, 정확성 평가가 10점으로 구성돼 있다. 3분의 1가량을 리서치센터가 담당해야 하는 셈이다.
리서치 정량평가 15점을 채우기 위해선 50대 기업 중 15곳을 포함해 총 60곳 기업에 대한 리포트를 6개월마다 채워야 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인력 현황을 기준으로 58개 증권사 중 금융투자분석사(애널리스트)가 20명 미만인 증권사는 총 38곳(65%)이다. 라이선스를 보유한 인력이 모두 리서치 부문에서 근무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실제로는 10명 안팎의 인원이 반기마다 수십개 기업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량평가 배점을 채우려 전문분야 외 섹터까지 챙기다 보면 6개월이 모자라는 게 현실이다"며 "애널리스트들 각각의 전문 분야가 있어도 당장 커버해야 하는 종목부터 봐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고퀄리티의 리포트를 기대할 수 없는게 어쩌면 당연한 현실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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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02일 15:3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