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한일분쟁 트리거로 수급 무너지며 지수 급락
연기금 추가 매수 기대 힘들어...코스닥은 더 캄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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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 1950, 코스닥지수 570선이 무너졌지만 전문가들이 내놓는 증시 전망은 우울하기만 하다. 수급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최근 단기 상승세를 이끌었던 외국인마저 돌아서자 국내 증시가 기댈 곳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5일 급락장의 주인공은 외국인투자자였다. 코스피에서 3169억원, 코스닥에서 368억원을 순매도하며 하락장을 이끌었다. 외국인 이탈의 배경으로는 ▲역외 달러위안화 장중 7위안 붕괴에 따른 원화 약세 위기감과 ▲한일 무역분쟁에 따른 실물 경제 침체 우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 비중 조절 등이 꼽힌다.
외국인투자자들은 7월 한 달간 국내 증시에서 약 2조원을 순매수했다. 문제는 이 순매수가 '반도체' 한 업종으로만 집중됐다는 것이다. 시가총액 상위, 특히 반도체 종목 위주 매수세에는 국내 기관들도 동참했다.
이는 일종의 왜곡을 만들어냈다. 개별 종목의 주가는 급락하고 있는데, 대형주 위주 수급의 영향으로 지수는 버티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러다 환율과 한일분쟁을 핑계삼아 외국인 수급이 빠지며 연기금의 매수세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다.
왜곡된 7월의 장세에서 개인의 수급도 꼬였다. 6월 이후 국내 증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단에 따른 안도랠리가 끝나고 방향성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지수가 버티고 외국인 매수세가 들어오며 리스크-오프(Risk-off;위험회피) 신호가 제대로 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신용거래융자 잔고 추이에서 드러난다. 6월 말 기준 전체 신용융자잔고는 10조원대를 유지했다. 코스닥은 5월 말 대비 오히려 2500억원 늘어났다. 주식 매수 비용의 일부를 빚으로 돌리고 주가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7월 하락장을 맞이하고도 신용융자잔고는 5500억여원밖에 줄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급락장엔 한 달 동안에만 1조3400억여원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시중자금이 위험에 둔감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5일 하루 동안에만 코스피지수는 2%, 코스닥지수는 7% 이상 급락하며 6일부터는 신용으로 매수했거나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매수한 주식에 대해 반대매매 매물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당장 5일 코스피에서의 개인 매도세에 대해 반대매매 혹은 반대매매에 대비하기 위한 매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지수의 추가 급락을 막으려면 이를 받아주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8월 들어 스탠스를 바꾼 외국인이 하루만에 다시 순매수에 나서줄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원화약세의 바닥이 확인되고, 한일 무역분쟁의 출구가 보여야 외국인들의 귀환을 기대할 수 있을 거란 평가다.
연기금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대부분의 연기금이 국내 주식 비중 축소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대응 여력이 크지 않은 까닭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최근 2020년 기준 국내주식 비중을 17.3%로 조정하는 중기자산배분안을 통과시켰다. 2017년 21%에 달했던 국내주식 비중을 올해 말 18%로 줄이고, 2024년까지 15%로 줄이는 것이 골자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비중은 5월 말 기준 16.44%다. 6~7월 연기금이 3조원 가까운 순매수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18% 비중 기준 추가 매수 여력은 7조원 남짓이다. 17.3%를 기준으로 따지면 2조원이 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외국인의 탈출 러시 때 자칫 연기금이 잘못 대응했다간 외국인이 좀 더 비싼 값에, 쉽게 주식을 팔고 나가게 도와주는 꼴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금융투자업계의 매수세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 주체의 매수는 주로 주식연계증권(ELS) 운용 차원에서 이뤄진다. 지수를 받치기 위해, 수급을 풀어주기 위해 금융투자업계가 나선게 아니라는 말이다.
코스닥의 경우 바이오 이슈로 인해 상황이 좀 더 꼬여있다는 평가다. 최근 3개월간 코스닥지수는 5일 낙폭 포함, 25% 떨어졌다. 바이오·헬스케어 비중이 40%에 달하는 코스닥150지수는 같은 기간 31% 떨어졌다. 코스닥150지수에 속하지 않은 중소형주 위주의 장세가 펼쳐졌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수급이 꼬이면서 5일 코스닥 중형주 지수는 7.3%, 소형주 지수는 7.02% 동반 급락했다. 바이오주가 대거 포진한 대형주와 비슷한 낙폭이다. 코스닥에 대한 투자심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코스닥은 지난해 CB 대량 발행에 따른 물량부담에 주가 급락 및 신용미수에 따른 반대매매 부담까지 짊어지게 됐다"며 "코스피 대형주 수익률 관리에도 급급한 연기금이 코스닥에까지 손길을 뻗어주길 기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5일 코스피시장에서 5207억원을 순매수한 연기금은 코스닥시장에선 58억원 순매수에 그쳤다.
증시가 무너졌지만 정부의 대응은 굼뜨기만 했다. 5일 오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선반영됐다며 여유로운 모습이던 금융위원회는 6일 오전 주요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을 불러 긴급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증시안정자금 투입, 공매도 일시 제한 등의 조치가 언급된다.
시장의 기대감은 크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코스피 2000선이 무너졌을 때에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제시한 5000억원의 증시 안정 자금은 증시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총평이다. 공매도 제한 역시 수급이 무너진 상황에서 큰 영양가가 없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들어서도 사상 최대치를 연일 경신한 미국 증시의 경우 기업들이 감세 등으로 늘어난 이익을 적극적으로 자사주 매입에 활용하며 주가를 부양했다. S&P500 상장사들은 2018년 8060억달러(980조원), 2019년에도 7월까지 9400억달러(1143조원)을 자사주 매입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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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05일 19:4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