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시스템·낮은 국가 신용도·높은 몸값 등 부담
소수지분 투자 시너지 의문…”성공 사례 없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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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 열기가 이어지면서 투자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력적인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국가 신용도는 낮고 시스템적 불확실성은 크다. 기업들이 베트남 투자 성과에 급급하면서 현지 자산의 가격은 뛴다. 반면 시너지 효과는 작아지고 회수 불투명성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베트남은 높은 경제 성장률과 1억명에 달하는 인구, 풍부한 자원과 정서적 유사성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저성장의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우리 기업들로선 앞으로도 베트남 투자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위험 요소는 도처에 있다.
베트남은 급성장하는 경제를 뒷받침할 글로벌 수준의 회계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장부엔 실물 부동산 자산으로 적혀 있는데 실제 가보면 허허벌판인 경우도 있다. 재무제표의 신뢰성이 떨어지다 보니 투자 협상에 애를 먹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외국 기업은 꽌시(关系) 없이는 베트남에서 사업하기 어렵다는 푸념도 나온다.
베트남 국가 신용등급은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수준이다. 작년부터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이 베트남 국가 신용등급을 상향하거나 긍정적 전망을 부여했지만 여전히 필리핀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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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지난해에 처음으로 베트남에 투자했다. SK그룹의 마산그룹(Masan Group) 지분 투자에 참여했는데, 베트남이 투자 부적격 국가다 보니 투자 승인을 얻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올해는 빈그룹(Vin Group) 투자 절차를 밟고 있다. 베트남의 성장성보다는 SK그룹의 회수 보장책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의 투자가 얼마나 효과를 낼 지는 의문이다. 베트남 시총 2위(마산그룹), 베트남의 삼성(빈그룹)과 손을 잡은 것은 드러낼만한 성과지만, 소수 지분 투자의 한계도 분명하다. 한화그룹도 지난해 빈그룹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전략적 제휴를 맺어둔다 쳐도 국영기업 민영화에서 얼마만큼의 기회를 부여받을 지 미지수다.
한 증권사 해외투자 담당 임원은 “마산그룹의 식품 사업과 빈그룹이 펼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은 모두 성장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결국 제조기업의 소수지분에 투자한 셈인데 우리 기업이 원하는 바를 수월하게 펼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규제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진다. 베트남 정부는 여전히 외국 투자자에 친화적이지만 예전같은 저자세는 아니다. 베트남 투자 수요가 많다보니 이미 들어와 있는 기업들에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매년 높은 임금 성장률을 제시하고 기업들에 따르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갈 곳이 많아진 노동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건설사들도 베트남 진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형 분양 사업은 보기엔 근사하지만 베트남의 경제 수준으론 미분양 리스크가 크다. 우기가 맞물리면 작업보다 물을 퍼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당국의 눈밖에 나면 사업이 차일피일 지연된다. 면밀한 실사와 사업성 평가가 선행되지 않고선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금융업계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의 금융 시스템은 아직 후진적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후 취약점이 드러났고 외국계 은행의 투자 흐름도 꺾였다.
호주의 ANZ가 여러 베트남 사업을 정리했고 싱가폴 OCBC, 홍콩 HSBC, 프랑스 BNP파리바 등이 베트남 은행에 투자했던 소수 지분을 털어냈다.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한 금융선진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그렇다고 베트남을 배제하긴 어렵다. 모든 기업이 베트남을 외치는데 금융업계만 다른 소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1등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든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화답하기 위해서든 베트남에 시선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협상 주도권을 갖기 어렵고 자산들의 가격은 높아지게 된다. 베트남은 상각의 개념이 희박해 손실이 거의 확정된 자산도 그 가치를 쳐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하나은행은 1년여를 공들인 끝에 베트남 BIDV 지분 15%를 약 1조원을 주고 인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단번에 베트남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편 새로운 성장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반면 소수지분 투자의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가격도 낮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NH투자증권이 과거 베트남 법인(우리CBV증권)을 완전자회사화 할 때도 진통이 컸다. 2016년 적자를 내는 등 실적이 신통치 않았음에도 현지 대주주가 무리한 금액을 요구한 탓이다.
한 금융지주 글로벌 담당자는 “베트남 금융사의 가치가 치솟으면서 소수지분 투자는 PBR(주가순자산비율) 2배, 경영권 인수는 3배 이상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해외 금융사의 철수 사례에서 보듯 베트남 금융사에 소수지분을 투자하거나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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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7월 30일 14:1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