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나서던 증자 시장도 위축 뚜렷
'신라젠 쇼크' 사모 CB 시장에도 번질 듯
'공모 위축은 물론 우회자금조달 통로도 막힐 우려'
-
주식자본시장(ECM)에 '폭락'이라는 공포가 내려앉았다. 당장 유통되고 있는 주식들의 가치 하락도 하락이지만, 동종업계 밸류에이션(가치산정)에 영향을 받는 예비 공모주의 자금조달 통로 역시 경색되고 있다는 평가다.
당장 투자심리가 얼어붙은데다 밸류에이션이 급락하며 공격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기엔 적절하지 않은 시장이 됐다는 분석이다. 신라젠 사태로 전환사채(CB) 등 우회 자금조달 통로마저 막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한 차례 공모 일정을 연기한 호텔롯데는 점점 더 상장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는 평가다. 당장 미중 무역분쟁 및 한일 갈등으로 인한 간접적인 피해가 우려된다.
호텔롯데의 주수익원은 매출의 85%를 차지하는 면세사업부다. 면세사업부의 실적은 방한 관광객수와 환율에 영향을 받는다.
방한 관광객 수는 2017년 급감한 후 점차 회복세를 띄고 있었다. 올해 상반기(1~6월) 방한 관광객 수는 844만여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6.9% 늘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29.1%, 일본인 관광객이 26.6% 늘어난 영향이다. 이에 힘입어 호텔롯데의 지난 1분기 매출액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2017년 수준을 회복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하반기 상장 준비에 다시 착수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평가다.
문제는 한일 갈등이 본격화하며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세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중반 이후로 한국여행 주의·자제를 수 차례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아시아 동맹국에 설치하겠다고 선언하며 제 2의 사드(THAAD) 사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 담당 운용역은 "호텔롯데도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선 실적 개선에 더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며 "단순히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한다는 내부적인 목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산을 투자할 투자자는 없다"고 말했다.
상장이 점쳐지던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롯데지알에스(롯데리아) 등 다른 계열사도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븐일레븐과 롯데리아 등 롯데그룹 소매 브랜드는 대부분 '일본 불매 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다. 롯데쇼핑이 지분 49%를 가지고 있는 에프알엘코리아(한국 유니클로)는 불매 운동의 핵심 타깃 중 하나다.
재무적 투자자(FI)와 중재 절차를 밟고 있는 교보생명보험의 경우 0.3배 수준으로 떨어진 생명보험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부담이다. 공모 할인까지 감안하면 현 상황에서 예상 상장 시가총액은 3조원대로 뚝 떨어진다.
이 경우 주당 가치는 16만6000원꼴로, FI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 된다. FI들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게 주당 40만9000원의 풋옵션 행사가격을 요구했다. 업계 PBR이 0.6~7배 수준이었던 2017년 하반기 신 회장이 상장의 결단을 내렸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하반기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히는 SK바이오팜은 일단 예정대로 상장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기업가치에 대한 눈높이는 다소 낮아질 전망이다. 지난 4월 상장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SK바이오팜은 증권사들로부터 9조원대 기업가치를 제시받았다.
SK바이오팜이 주관사를 선정한 이후 4개월간 코스닥 150 생명기술지수는 30% 하락했다. 주요 바이오 대형주들의 주가는 연초 대비 반 토막 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기대되는 신약 '세노바메이트'에 5조원, 나머지 6개 임상 중인 파이프라인에 1조~2조원의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산정(밸류에이션)은 시장의 동의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요 신약개발 바이오사의 임상 3상이 잇따라 실패하며 임상 중인 파이프라인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며 "바이오 전체적으로 거품이 빠진만큼 SK바이오팜도 눈높이를 시장에 맞추지 않으면 공모 흥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상장 예비심사 통과에 실패한 바디프랜드의 상장 재도전 일정도 다소 순연이 불가피해 보인다. 바디프랜드는 상장 실패 이후 일단 마케팅에 집중하며 몸 만들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 사이 업종 밸류에이션은 크게 떨어졌다. 렌탈업계 1위 웅진코웨이의 현재 주가순이익비율(PER)은 18배 수준이다. 연초 21배에서 10% 이상 떨어졌다. 가정용가전제품 업계 전체 PER도 20배선 아래로 내려왔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570억원 기준, 웅진코웨이 PER을 적용해도 예상 시가총액은 1조원 수준에 머문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증권가에서는 바디프랜드의 예상 시가총액을 2조~3조원으로 평가했다. 유사업종 기업들의 주가 추이가 좋았던데다, 바디프랜드 자체 성장성도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상장 준비에 다시 착수한다면 기업가치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VIG파트너스와 네오플럭스는 2015년 4000억여원을 투입해 바디프랜드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유상증자 시장도 된서리를 맞았다. 올해 상반기 국내 상장사 유상증자 규모는 1조385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건수는 41%, 규모는 73% 줄었다. 자금이 급한 코스닥 중소형사들이 잇따라 증자에 나선 까닭에 건수 대비 규모의 하락폭이 눈에 띄게 컸다.
그나마도 하반기 하락장에 들어선 이후엔 상장사의 신규 공모 유상증자 결정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7월 중 신규 지분증권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기업은 '제로'였다.
이미 공모를 진행 중인 기업들도 최근 증시 급락으로 인해 이들은 목표한 금액을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6일 유상증자 규모를 확정한 코스닥상장사 앤씨앤의 경우 당초 공모가 3000원에 225억원을 조달하려 했지만, 주가 급락으로 공모가 2080원에 156억원만 조달할 수 있게 됐다. 투자심리 악화에 따라 잔액인수 계약을 체결한 한국투자증권이 실권 인수 부담을 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모 위주로 재편된 주식연계증권(ELB) 시장 역시 '신라젠 쇼크'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5개월전 투자한 11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가 사실상 수익 실현 불가능한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조기상환(풋옵션) 청구 가능일은 2021년 3월인데도 불구, 투자자들은 벌써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여기에 지난해 코스닥벤처펀드로 인한 대규모 사모 CB가 주가를 억누르며 기존 주주들의 불만도 팽배한 상황이다. 여기에 헤지펀드 큰 손인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메자닌 편법투자로 인해 당국의 조사를 받으며 시장 자체가 위축되기도 했다. 당초 연 4조~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사모 ELB 시장은 올해 하반기엔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증권사 담당자는 "대부분의 업종에서 주가가 연초 대비 20~30%정도 하락한 상황이라 그만큼 밸류에이션 재점검이 필요하다"며 "기업가치에 민감한 대형공모주가 공격적으론 나서기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0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