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M&A 하기엔 부족하고 대상도 중소기업 국한
“결정 느린 국책은행 연합이 가장 큰 걸림돌” 지적
-
정부가 일본 경제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 협의체를 설치하기로 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소재 산업에서의 중대한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선 대형 M&A가 필요한데 재원이 넉넉하지 않다. 계획대로 중소기업만 지원해선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의사결정 과정이 느리고 무거운 주체들이 모였다는 점도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
정부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다음날 ‘피해기업 금융지원 방안’을 내놨다. 무역보복의 핵심인 소재·부품·장비 분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하나로 핵심기술 획득 및 공급라인 확보를 위한 인수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르면 이달 중 ‘해외 M&A 인수금융 협의체’를 설치할 계획인데 시장에선 벌써부터 효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통제 가능 품목 1194개 중 159개를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실제로 받는 타격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일부 산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상황에선 품목이 몇 곳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부는 반도체와 자동차, 기계·금속, 전기·전자, 디스플레이 산업의 20개 품목에 대해 1년 안에 공급을 안정화 하겠다고 밝혔다.
M&A를 통해 이런 핵심 산업의 주요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데 사정은 녹록지 않다. 2조5000억원 이상의 인수금융 재원이 있다지만 기업의 자기 자본까지 합해도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은 5조원 수준에 그친다. 고부가가치 산업에 독과점적으로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을 사들이기엔 역부족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 수출 제한에 나선 3가지 소재 중 하나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국내 공급사가 없어 일본 스미토모화학에서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스미토모화학은 2018 회계연도 영업이익만 2조원에 달한다.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성과를 내려면 대기업이 나서야 하지만 대기업은 저 정도 자금 지원이 아쉬운 상황은 아니다. 정부가 지원하려는 대상 역시 중소기업이다. 혹 의미 있는 해외 M&A 기회가 있더라도 굳이 정책금융기관이 관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민간 금융회사들은 가뜩이나 조달 금리를 앞세운 국책은행에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
애초에 이번 지원안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수출입은행(1조5000억원)과 IBK기업은행(1조원)은 이미 M&A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잠재적으로 산업은행 자금 2조5000억원도 활용할 계획인데 이 역시 ‘사업경쟁력강화 지원자금’으로 편성되어 있는 돈이다.
협의체는 향후 M&A 대상기업 발굴 및 컨설팅도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정책금융기관들은 해외 거래를 발굴할 역량이 크지 않다. 외부 도움이 필요할 수 있지만 벌써부터 협의체 참여 기회가 주어져도 고사하겠다는 투자은행(IB)도 있다.
무엇보다 정책금융기관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가뜩이나 국책은행의 의사 결정이 느린데 그런 곳이 셋이나 모이게 되면 한 목소리를 내기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얼마나 국책은행들을 압박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금융기관들이 머리를 맞댔다가 성과 없이 유야무야된 사례는 많다. 정부는 2013년 우리 기업의 해외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해외 건설·플랜트 수주지원 협의회’를 신설했다. 2016년엔 해외 인프라 수주·투자 지원센터(KoCC)가 출범했는데 별다른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KoCC는 지난해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가 설립되며 존재감이 사라졌고 이후 해체됐다. 참여 기관 사이에서도 실패작으로 거론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해외 M&A 자금 지원 방안에 대해 “아직 협의체 구성이나 향후 어떤 것을 할 지 구체적인 안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운용하고 있는 프로그램 한도 안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것이고, 향후 수요가 늘어난다면 프로그램 신설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1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