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지향' 상업은행 이미지를 초고위험상품에 덧씌워
금감원 다음달 분쟁조정위 예정...법정 공방은 불가피
서류 서명하고도 '몰랐다'는 투자자...무조건 '금융회사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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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판매한 파생결합증권(DLS)의 대규모 손실 이슈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일단 비판의 화살은 전액손실까지 가능한 초고위험 파생상품을 안전자산으로 포장해 판매한 은행에 집중되고 있다. 실적에 목을 매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의 본질을 잊었다는 것이다.
투자자 책임 역시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S 및 이를 편입한 DLF(파생결합펀드) 상품은 일선 은행 창구가 아닌, 프라이빗뱅커(PB) 채널을 통해 사모로 판매됐다. 투자자들은 계약 과정에서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서류에 서명도 했다. 모든 책임을 판매 은행에만 떠넘길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DLS·DLF의 규모는 총 8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하나은행이 판매한 미국 국채-영국 파운드 이자율 스왑(CMS) 금리 투자 DLS가 4000억여원 규모,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투자 DLS가 4000억여원 규모다.
현 시점 기준으로 영국CMS 관련 DLS는 50% 안팎, 독일 국채 관련 DLS는 원금 전액 손실 구간에 접어들었다. 해당 상품들이 이르게는 5월부터 이후 손실 구간에 돌입하며 파생상품 시장에는 암암리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최근 일부 상품의 만기를 앞두고 손실 확정 가능성이 급부상하며 이슈가 커진 것이다.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건 9월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우리은행 판매 DLS다. 우리은행이 4월 전후에 판매한 해당 상품들의 만기가 도래한다. 해당 DLS는 만기가 4개월~6개월에 불과하고, 연장 옵션도 없다. 하나은행이 판매한 영국CMS 관련 DLS 역시 가장 빠른 상품이 오는 9월부터 만기가 도래한다. 하나은행은 만기 1년~1년6개월의 해당 상품을 지난해 9월부터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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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조원 규모의 DLS 시장에서 금리 연계형 DLS는 가장 흔한 상품이다. 상품·신용 등과 연계되는 DLS에 비해 만기가 짧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의 성향에 잘 맞는 상품으로 꼽힌다. 조기상환 4개월의 주식결합증권(ELS)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발행된 DLS 중 기초자산이 금리형인 DLS의 비중은 꾸준히 50%를 넘나들었다. 월 발행 규모가 1조7000억원안팎으로 치솟은 지난해 10월에도 금리형 DLS의 비중은 60%를 넘었다.
비중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한 건 올해 5월부터다. DLS 상품의 주력 중 하나였던 미국 국채 5년물 금리와 영국 CMS의 갭이 무의미한 수준으로 줄어든데다, 독일 국채 등 일부 자산군에서 손실이 나기 시작하며 업계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상업은행이 수익을 쫒다 본분을 잃어버려 생긴 일'로 해석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은행 판매 DLS의 경우, 기대 수익은 연 4.2%였지만 손실 가능성은 원금의 100%까지 열려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초고위험 상품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2000년 이후 독일 국채 10년물이 단 한번도 마이너스(-) 0.2%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이를 고객들은 '원금보장'이라고 이해했다.
하나은행이 판매한 영국 CMS 관련 DLS도 마찬가지다. 미국 국채와의 갭을 활용하는 구조의 DLS는 지난해 DLS 시장의 핵심 수익원이었다. 많이 발행되기도 했거니와, 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DLS가 정상적으로 상환됐다. 그러나 2분기들어 미국 국채 시장 금리가 급락하며 갭이 사라졌고, 상품도 더이상 만들지 못하는 단계가 됐다. '막차'를 탄 고객들이 상투에 물린 모양새가 된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증권사가 아닌 은행 PB센터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주로 고연령에 저위험 투자 지향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은행에서 20년간 한번도 손실이 나지 않은 상품인데다 예적금보다 2%포인트 이상 금리를 더 준다고 하니 가입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에 쫒긴 상업은행이 타락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지점이다. 중금리 안전자산이라는 은행의 이미지를 초고위험 상품에 덧씌웠다는 것이다.
이들 은행이 고객들로부터 수취한 판매보수는 1%에 육박한다. 특히 우리은행 DLS의 경우는 만기가 최저 4개월로 1년에 3회전이나 시킬 수 있어 '은행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상품'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는 미국 경기 회복과 기준금리 인상, 유럽연합(EU)의 양적완화 중단 등으로 인해 금리 상승 전망이 힘을 얻던 시기였다. 이는 올 초 정반대로 뒤바뀌었다.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했고, 경기침체(디플레이션) 공포가 다가오며 주요 선진국 장기 국채에 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올해 초 0.24%였던 독일 국채 10년물 시장금리는 올해 4월 0% 아래로 떨어졌다가 잠시 반등 후 -0.7%로 직행했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은행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말 0.3%대로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다. 이는 손실 초기 중도 환매 등 적극적인 투자자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핵심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채권시장 관계자라면 주요 선진국 국채 금리 추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연초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며 "4~5월은 주요 금리 추이가 이미 지난해 말 전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교정하지 않은 건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분쟁조정위원회를 소집해 DLS 손실 관련 안건을 다룰 계획이다. 결국 법정 공방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다.
법정 공방에서는 결국 투자자 책임이 어디까지인가를 두고 격론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DLS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은 충분히 상품의 위험에 대해 설명했다는 서류 및 녹취자료를 가지고 있다. 몇 차례 불완전판매가 이슈가 된 이후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내부 절차가 매우 깐깐해진 결과다.
결국 투자자들은 '서명은 했지만 실제로 설명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혹은 '판매은행과 직원을 신뢰했다'는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 투자업계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이 지점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서류 규제는 이미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S들은 사모 구조로 최소 1억원 이상 가입이 가능하며 대부분 담당 PB를 통해 대면상담 후 투자를 결정한 상품이다. 이번 이슈 역시 금융권에서는 상환이 무리 없이 진행될 때엔 별 말 않다가, 손실이 터지면 금융회사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사례 중 하나로 꼽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중금리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보장하면서 리스크가 아예 없는 안전한 투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국내 개인투자자들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사고가 터지면 여론을 의식한 금융당국이 어떻게든 금융회사가 보상하게 만드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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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19일 14:0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