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호조에 환율효과까지…나홀로 주가 고공행진
"현대차와 동등하게 경쟁"…그룹 기조도 변화
기아차의 상승세, 지배구조 개편에도 '호재'
현대차와 경쟁 시작, 제네시스 SUV 부상은 변수
-
현대자동차그룹에서 만년 서자(庶子)로 취급 받던 기아자동차가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전반적인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기아차의 해외 판매는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 해외 각 거점에 생산라인을 보유한 탓에 원화 약세에 따른 반사이익도 누리고 있다. 기아차는 붕괴하는 한국 증시 속에서도 유일하게 주가 상승 곡선을 그리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사업적 또는 마케팅 측면에서 늘 현대차의 후순위로 밀렸던 기아차는 최근 국내 판매에서 현대차를 넘어섰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와 맏형 격인 현대차에 역량을 집중하던 그룹의 기조가 조금씩 변하면서 기아차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기아차의 상승세는 곧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아차는 지난 7월 내수시장에서 세단과 SUV를 4만735대 판매하며, 제네시스 브랜드와 상용차를 제외하고 4만528대의 판매고를 기록한 현대차를 추월했다. 지난 6월까지만해도 기아차의 판매가 현대차에 비해 5000대가량 적었던 점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신차 출시 효과가 컸다. 6월에 출시한 ‘K7프리미어’가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하며 판매량을 견인했고 하반기엔 셀토스와 모하비, K5의 신차 출시를 앞두고 있다.
기아차가 미국 시장에서 새롭게 출시한 기함급 SUV인 텔루라이드의 반응도 좋다. 월 5000대 이상을 판매하고 있는 가운데, 기아차는 생산시설을 약 20% 증설할 계획이다. 실적 개선세에 환율 효과까지 겹치면서 기아차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127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효과에 힘입어 기아차의 주가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인 코스피에 역행하고 있다.
-
국내 시장에서 기아차가 현대차의 판매량을 추월한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차량의 라인업을 비롯해, 신차 출시 일정 또는 마케팅 측면에서 그룹의 최우선 순위는 제네시스와 현대차였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기아차 대표이사직에서 떠난 2009년 이후부터는 이 현상이 더 고착화했다.
이는 그간의 판매량에서 극명히 나타난다. 과거 기아차의 초대형 세단 ‘K9’ 판매량은 ‘EQ900’의 10분의 1수준에 그쳤고, 유사등급인 G80 판매량의 5%도 채 되지 않았다. 2016년 출시한 K7의 풀체인지 모델 또한 현대차 그랜저의 출시로 빛을 보지 못했다.
국내 판매는 지지부진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과 사드 갈등으로 지난 2017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분의 1 토막이 났다. 그룹 내 입지는 좁아졌지만, 전형적인 현대차 출신 인사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그룹 내에선 기아차를 적극적으로 대변할 인물과 조직이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올해부턴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전형적인 현대차 인사로 꼽히던 이형근 부회장이 회사를 떠났고,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다시 돌아왔다. 사내이사진엔 기아차 출신의 최준영 부사장과 주우정 전무가 신규 선임됐다. 외국인 임원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그룹의 기조도 현대차와 기아차에 상관없이 각사의 신차 흥행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기아차의 셀토스 가격 결정 과정에서 동급차종 코나(현대차)에 미칠 영향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타깃층만을 생각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과거엔 간섭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대차와 기아차가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기아차가 양보하는 게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며 “그룹 내에서도 지금은 간섭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각사가 출시하는 신차의 흥행에만 집중해 경쟁력을 갖춰가는 방향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고 했다.
-
그룹 기조의 변화는 외부 변수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신차 출시 이후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가격을 디스카운트하는 등의 영업방식을 썼다. 하지만 기아차의 해외 시장 재고가 기존에 비해 크게 줄면서 수익성 위주의 영업전략으로 선회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증권사 자동차 담당 한 연구원은 “기아차 내부의 변화를 떠나서 기아차의 대외적인 환경이 이제는 현대차와 ‘수익성’으로 경쟁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졌다”며 “▲조기 진부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 품질을 높이려는 자체적인 노력 ▲현대차 팰리세이드의 SUV 시장 침범 등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 ▲글로벌 경쟁사들 대부분 부진한 가운데 사세를 확장할 적기라는 판단 등이 기아차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아차의 상승세는 곧 진행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기아차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인수하는 자금줄 역할을 담당했다. 새롭게 발표될 지배구조개편 방안도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계열사 주가의 상승으로 오너일가의 지분가치도 상승해 지배구조개편에는 더 많은 현금 소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 상황에서 기아차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기아차 주가의 상승은 곧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가치 상승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만 기아차가 현재와 같은 상황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한다.
멕시코를 비롯한 미국의 관세부과 정책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대외 변수가 아직 남아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업황이 하락세에 접어든 시점에서 ‘수익성’ 위주의 전략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내연기관을 벗어나고자 하는 자동차 업체들의 경쟁은 본격화했는데 기아차는 준비가 아직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기아차가 가장 강점을 가진 SUV 시장에서 현대차와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하반기엔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제네시스의 기함급 SUV가 출시된다. 경차와 소형차에 비해 수익성이 높은 SUV 시장에서 시장 지위를 뺏긴다면 기아차에는 치명적이다. 기아차가 자체적으로 다양한 SUV 라인업을 확보해 각 국가별 현지 차종을 늘려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꾸준히 지적돼 왔다. 동시에 업계 전문가들은 기아차가 그룹 내에서 입지를 공고히 해 현대차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이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1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