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기술력 확보시 두 회사 수주 경쟁 가능성
기술 유출 우려…’정부 정책 맞추려 무리수’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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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 업체) 전용펀드 출자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해상충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두 기업이 힘을 싣는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위탁생산)의 잠재 고객에 자금을 지원하는 셈인데 향후 물량을 받아올 때 알력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팹리스 고객을 통해 민감한 정보가 오갈 가능성도 있다.
정부 정책에 맞추기 위해 한 데 뭉치기 어려운 경쟁사를을 무리하게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고 지원 방안 중 하나로 팹리스 전용펀드를 제시했다. 팹리스 기업의 연구개발, 마케팅, 해외진출, M&A 등을 지원하는 목적이다. 펀드 예정 규모는 1000억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절반씩 돈을 대기로 했다. 반도체협회 주도로 펀드 조성 실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17년 반도체성장펀드에서도 뜻을 모은 적이 있다. 삼성전자가 500억원, SK하이닉스가 250억원을 출자 약정했다. 이후 자(子)펀드를 통해 중소 반도체 산업 전후방 기업에 투자가 이뤄졌다. 일부 회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 한 곳에만 제품을 공급하다 수요처를 넓히는 등 성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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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리스펀드에서도 이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단순히 대체 가능한 물품을 공급하는 것에 비해 민감한 요소가 많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비메모리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파운드리 사업이 핵심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파운드리 사업을 별도 조직으로 독립시켰고,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분야 세계 1위를 꿈꾸고 있다. SK하이닉스도 2017년 파운드리 사업을 전담할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를 설립했다. 매그나칩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반도체 공정상 파운드리 사업 성패는 결국 고객, 즉 팹리스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미국 팹리스 스타트업 라이언반도체(Lion Semiconductor)에 35억원을 투자해 지분 5.42%를 확보했는데, 이 역시 고객 관리 차원이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팹리스 기업이 전용펀드 투자를 받아 높은 기술력을 갖추게 되면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파운드리 확대를 원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물량 수주를 꾀할 경우 경쟁이 불가피하다. 두 회사가 똑같이 돈을 대는 펀드의 자금을 받은 기업이 어느 한 쪽에 물량을 몰아주기는 쉽지 않다. 운용사(GP) 역시 기업에 의사를 전달할 때 두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기술 유출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팹리스 기업이 파운드리에 일을 맡기기 위해선 그 회사의 역량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술 정보들이 유입될 수 있다. 철저한 보호장벽을 치겠지만 두 회사 중 한 곳에 생산을 위탁한 팹리스가 얻은 정보가 또 다른 투자자인 기업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는 팹리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물량을 나눠 맡기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팹리스 기업의 기술만 취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술의 핵심인 설계 도면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팹리스조차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삼성전자에 위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국내 중소 팹리스라면 이런 위험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러 난제가 있다보니 애초에 한 데 섞이기 어려운 기업들을 무리하게 끌어들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라는 화두는 던져놨는데, 반도체 사업을 하면서 돈을 댈 수 있는 곳이 달랑 두 곳 뿐이었다. 펀드를 결성하는 쪽에서조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는 팹리스 산업 생태계 육성보다는 단순 ‘비즈니스’로 보기도 한다.
팹리스에 대한 기대가 있든 없든 두 기업 입장에선 정부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이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을 앞둔 민감한 시기다.
M&A 업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동종 사업을 하는 경쟁사가 이해상충 우려가 있는 펀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하다보니 급히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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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8월 2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