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대주주 문제로 심의 못 넘어
사연 들은 아시아 헤드가 지원 나서
시짓, 성과 좋고 내외 신망도 두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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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C캐피탈파트너스 한국 지점은 좀처럼 국내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까다로운 투자심의 절차가 한 이유로 꼽히는데 이번 ‘여기어때’ 투자에서도 검토과정에서 대주주 문제가 불거졌다. 매번 결과 없이 돌아서던 모습을 재현하는 듯 했지만 극적으로 CVC는 국내에서 오랜만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게 됐다.
CVC 글로벌 안에서도 신망이 높은 아시아 헤드가 이에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어때 투자 안건에 힘을 실어줬고 결국 승인을 얻게 됐다는 것.
CVC 한국 지점은 최근 위드이노베이션(서비스명 여기어때) 경영권 인수를 확정지었다. 100% 지분 가치를 3000억원대로 평가했으며, 향후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도 추진할 예정이다. 심명섭 전 대표와 일부 투자자가 지분을 팔았고 몇몇 초기 투자자들은 지분을 계속 보유하기로 했다. 향후 2년뒤 실적에 따라 매각금액을 지불하는 언아웃(Earn Out)구조가 도입됐다.
표면적으론 외국계 투자자가 가장 좋아하는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는 평범한 거래다. 그러나 인수자가 CVC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모아졌다. 과거의 CVC와 선을 긋자면 사실상 첫 투자인데, 어떻게 심의를 통과했는지 의문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게 CVC 한국지점의 투자 집행은 외환위기 후 몇 건에 불과하다. 회수 사례도 몇 해를 거슬러가야 한다. 그나마 성공에 가까웠던 로젠택배 투자는 법적 다툼에 휘말리며 무산됐고 CJ헬스케어, ADT캡스 M&A에선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허석준 현 SK텔레콤 그룹장, 임석정 현 SJL파트너스 회장 등 수장 교체도 효과가 없었다.
CVC의 고전엔 IB와 사모펀드(PEF)의 정체성 차이, 낮은 한국 시장 이해도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되는데 독특한 투자심의·분배 절차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미국계 운용사들이 각 국의 펀드 성과를 여러 파트너들이 나눠 갖는다면 CVC는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투자한 파트너가 대부분 취한다. 게다가 하나의 큰 블라인드펀드를 각 국의 파트너들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구조다보니, 웬만해선 다른 지역 파트너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CVC는 한국 시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지만 기대는 크지 않았다. 베트남 등 신흥 시장에 투자하면 한국보다 몇 배나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한국에도 성과보수를 나눠줄 테니 사고만 치지 말라는 분위기마저 있었다고 한다.
CVC는 어떤 사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 입장을 취하도록 하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투자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작은 흠결이라도 있는 거래면 반대는 더 격렬할 수밖에 없고 심의 통과 가능성도 작아진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여기어때에 4000억원 가치를 책정하는 것도, 투자 심의를 넘는 것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투자 계획이 알려진 후에도 진성 매각 여부에 의구심을 갖는 의견이 있었다.
여기어때 투자는 처음엔 실제로도 싱가포르 투자심의 단계를 넘지 못했다. 한 영국 투심위원이 심 전 대표의 형사 혐의를 강하게 문제 삼았다. 무혐의 결정이 난 문제였지만 분위기를 돌리진 못했다. 으레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검토만 하다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우연한 기회에 반전의 계기가 생겼다.
시짓 프라세타(Sigit Prasetya) CVC 아시아 헤드가 각지의 사무실을 방문하던 중 정명훈 한국 대표를 만났다. 의도치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싱가포르의 투자 심의가 무산된 지 얼마 후였다. 정명훈 CVC 한국 대표가 시짓에게 투자 무산의 아쉬움을 토로했고, 시짓은 ‘힘을 실어줄테니 다시 안건을 올리라’는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미 부결난 사안이 다시 심의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아시아 투자심의 이사회에 들어갔던 임석정 전 회장조차 힘을 못 쓰지 못한 곳이 CVC다. 웬만한 직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원 의사를 밝혀봤자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시짓은 CVC 안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현지 대학을 나와 호주 MBA를 거쳐 2007년 CVC에 합류했다. 보통의 엘리트코스를 밟지는 않았지만 투자 성과는 남부럽지 않다. 로이 콴(Roy kuan)이 CVC 아시아 매니징디렉터(MD)일 때 디렉터로 들어왔다가 이후 동등한 자리에 오를만큼 승승장구 했다. CVC는 유럽계지만 동남아시아 지역 성과가 특히 좋다.
CVC는 2008년엔 말레이시아 게임회사 매그넘(Magnum Corporation Berhad)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기업가치는 15억4000만달러(약 1조8665억원)에 달했다. 2010년엔 컨소시엄을 꾸려 인도네시아 최대 백화점 체인 마타하리(Matahari Department Store, MDS) 경영권을 확보했다. 당시 외국 사모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한 최대 규모 바이아웃 거래였다. 롯데그룹도 마타하리 인수전에 참여한 바 있다.
CVC는 시짓이 관여한 매그넘, MDS 거래에서만 2~3배를 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짓은 인도네시아 재벌 리뽀(Lippo)그룹과의 친분을 활용해 투자 건을 발굴하기도 했다.
시짓에 대한 조직 안팎의 신망도 높다. 크지 않은 성과 보수는 연연하지 않고 부하 직원들에 나눠줄 만큼 그릇이 크고 소탈하다는 평가다. 해외 기관들도 시짓의 역량을 높이 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CVC라는 간판이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외려 제약 요소가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임원은 “CVC가 아시아 5호 펀드를 꾸리려할 때 한 글로벌 LP가 3억달러 정도를 출자한다는 이야기가 오갔는데, 시짓이 따로 운용사를 차린다면 한도 없이 출자해주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짓이 이런 위상을 가지다보니 여기어때 투자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투자 반대 역할을 맡았던 담당자를 설득했고, 결국 투자심의를 통과하게 됐다.
기존 오너의 범죄 혐의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무혐의 처분이 난 사안이기도 하지만 시짓은 ‘결국 경영권을 사오면 단절되는 문제인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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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0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