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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게 ‘위기’란 단어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반도체 업황이 부진할 때, 스마트폰 사업이 크고 작은 사고로 부침을 겪을 때 삼성전자는 늘 내부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하고, 대외적으로 ‘불안감’을 토로해 왔다. 삼성그룹 특유의 관리능력(?) 때문이었을까? 삼성전자는 안팎으로 흘러나오는 불안감이 무색하게 지난해까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이미 사업적 불안함에 대해 ‘내성’이 생겼지만, 회사는 올해 또다시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고동진 IM 부문 사장은 지난달 “사장이 되고 난 후 임직원들에게 ‘내년은 위기’란 말을 써보지 않았는데 올해 말이 되면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례적이었던 최근의 삼성전자 공식 발표엔 ‘불확실성’과 ‘위기’가 또 언급돼 있다.
“삼성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한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 사업부 별로 ‘위기’에 대한 임직원들의 체감도가 크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다.
IM 부문의 무선사업부는 몇 번의 사고, 이에 따른 실적의 부침 속에서도 초과성과인센티브(OPI, 옛 PS)는 매년 최대치인 50%를 받아왔다. 삼성그룹 고유의 성과급 체제인 OPI는 각 사업부별 성과에 따라 ‘연봉의 00%’ 형식으로 지급된다. 무선사업부의 OPI는 올해 소폭 조정됐지만 연봉의 46% 수준이었다. 지난해까지 초호황을 누렸던 반도체(DS) 사업부도,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도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받아왔다. 늘 강조됐던 ‘위기’와 성과는 별개였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던 해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삼성전자 각 사업부에서 임직원들에게 공지한 올해 OPI 가이드라인은 예년에 크게 못미친다. ▲반도체 사업부 최대 30% ▲VD 사업부 40% 수준 ▲무선 사업부 최대 28% ▲가전 사업부 25% 수준 ▲네트워크사업부 최대 40% 등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성과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크게 벗어나진 않을 전망이다. 예년과 비교해 성과급이 감소할 것으로 보이면서, 임직원들의 ‘위기’에 대한 체감도도 그만큼 높아졌다.
성과급 가이드라인의 ‘발표 시기’를 두고 말들이 많다.
회사의 영업이익 목표치와 OPI 수준은 매년 3월 또는 늦어도 1분기 말에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올해엔 8월 말이 돼서야 임직원들에게 고지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임직원들 사이에선, 과거의 영업이익(또는 영업이익률)과 사업부별 성과급을 비교하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전사의 실적이 부진할 때도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받았던 부서에선, OPI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상고심을 앞두고 경영 위기를 강조해왔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단골손님이었고, 각 사업장을 찾아 현장점검에 나서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한일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이 부회장이 직접 사업적 해결책을 찾는 모습에 초점이 맞춰졌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행보를 조명하며 한국 경제에 차지하는 영향력을 부각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외국인 투자자들 눈에 비치는 오너 리스크는 더 커졌고, 이 부회장이 당장 올해 사내이사 재선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삼성전자 사업에 대한 불안감은 상수가 됐다. ‘변수’였던 총수의 공백 상황도 이제는 고려해야 한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연말 인사, 그룹 컨트롤타워의 개편 등 전반적인 경영 전략의 수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제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게도 ‘위기’란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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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02일 14:52 게재]
입력 2019.09.11 07:00|수정 2019.09.10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