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역할 기대했더니, 민간 운용사와 경쟁하는 모양새”
내부 어수선한 분위기도 도마 위
금융당국 차원 명확한 정체성 확립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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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장금융과 연합자산관리회사(유암코; UAMCO)는 국내 기업 구조조정을 이끄는 양대 축으로 꼽힌다. 엄밀히 말하면 유암코가 그동안의 부실채권(NPL) 투자와 기업구조조정에 상당한 역할을 해왔으나 이제 유암코와 ‘기업구조혁신펀드’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성장금융의 경쟁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동시에 유암코는 금융당국도 바랬던 바대로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펀드의 주요 출자자(LP)로서 역할이 기대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유암코가 한국성장금융이 출자하는 펀드에 지원해 공동 운용사(GP)로 최종 선정됐다. 정책 금융기관 성격이 짙었던 유암코가 민간 운용사들과 경쟁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암코의 ‘명확한 정체성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유암코는 지난달 30일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운용사로 선정됐다. 선정된 3곳의 공동 운용사 ▲유암코-키스톤PE ▲유진자산운용-신영증권 ▲KB증권-나우IB캐피탈 등을 대상으로 모펀드인 기업구조혁신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가 각각 500억~750억원을 출자한다. 유암코-키스톤PE의 최소 펀드결성 금액은 1000억원이다.
지난해 한국성장금융을 통해 설립된 기업구조혁신펀드는 회생형 기업을 주요 투자대상으로 삼고, 기존 NPL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유암코와 경쟁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는 게 목표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자본시장 중심의 기업구조조정 시장 육성을 위해 정책 자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며, 기업구조혁신펀드를 향후 5조원 규모까지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한국성장금융과 한국자산관리(캠코), 유암코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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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암코의 경쟁 상대로 설립된 기업구조혁신펀드에 유암코가 되레 운용사로 참여, 민간 운용사들과 경쟁하는 모습에 국내 주요 사모펀드(PEF) 및 운용사 관계자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09년 설립된 유암코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이 각각 지분 14%씩을 보유한 회사다. 기업구조혁신펀드에 출자한 금융기관 면면과 거의 동일하다.
유암코는 올해 중순 국민연금의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 출자사업에 도전장을 냈지만 탈락했다. 정책 자금 성격이 짙은 탓에 민간 운용사들과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깔려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한 PEF 대표급 인사는 “유암코가 한국성장금융에서 자금을 받는 것은 산업은행이 국민연금에서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이번 유암코가 위탁 운용사로 선정된 것은 기업구조조정의 정책적 방향성이 모호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고 말했다.
다른 한 PEF 대표급 관계자 또한 “유암코는 시중 은행이 주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달 금리 낮아 다른 운용사들에 비해 NPL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기업구조조정 시장 활성화를 위해 민간 영역과의 협업을 확대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민간 운용사의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모양새다”고 했다.
민간 시장에 대한 침범 등을 막기 위해선 유암코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유암코의 내부적인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체성 확립과 명확한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3월 취임한 김석민 사장은 2009년 유암코 설립 이후 11년 동안 수장을 맡아온 이성규 전 사장의 후임이다. 김석민 사장은 우리금융지주에서 재무관리 담당 상무 대우를 지낸 후 유암코 사장으로 취임했다. 비슷한 시기엔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유암코의 상임감사로 선임됐다.
‘상무급 인사의 사장 취임’과 금융업계 관련 경력이 전무한 ‘청와대 출신 인사’가 준공공기관 성격을 띤 금융기구의 감사로 선임되면서 ‘코드 인사’와 ‘낙하산 인사’가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의 모습은 당시 시장의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석민 사장과 황현선 상임감사의 네트워크, 조직 장악력과 사업적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감시자로서 역할을 할 상임감사의 의중이 경영 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실무진들 사이에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 상무 출신 인사와 청와대 민정수석실 출신 인사를 금융당국 실무진이 대하는 데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경영자보다 감사가 투자자들에게 더 회자되는 상황이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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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1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