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사태는 재점화… 아시아나항공ㆍ금호그룹 성과 미지수
해결할 일 산더미에 임기 내년 9월…갑자기 산은ㆍ수은 통합론
논의도 없이 공개 제안…"통합수장 자리가 목적 아니냐" 비난도
없던 일 되면 민간 진출? 마침 내년 11월 KB지주 회장 임기 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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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합병하면 훨씬 더 강력한 정책금융기관이 탄생한다”
정책금융기관 혁신을 위해…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제안한 '큰 그림'이었을까? 아니면 임기 1년을 남긴 산업은행 수장이 다음 자리를 생각하며 던진 '출사표'였을까?
이동걸 회장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통합’을 언급하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수출입은행과 교감도, 주무부처간 협의도 없다고 했다. 그의 말 한마디가 곧 산업은행의 입장으로 대변되는 공식 기자회견에서다. 마침 이 날은 전(前) 수출입은행장이었던 신임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취임 이튿날이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임직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갑작스레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 수출입은행은 노동조합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반발했다.
"현 정권에 어떤 기여를 해 낙하산 회장이 됐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정책금융 역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이동걸 회장은 (두 기관의) 업무영역과 정책금융 기능에 관한 논의로 본인의 경영능력 부재와 무능력을 감추고 있다"(수출입은행 노동조합 성명서 . 2019.09.11)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동걸 회장이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한 것"이라며 “(합병은) 아무 의미없는 이야기다. 사견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사실 정책금융기관 개편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정책금융기관이 몇십 개로 나눠져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일부는 경쟁하고 일부는 합쳐서 규모의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동걸 회장의 지적에도 분명 일리는 있다. 더구나 정책금융 개혁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매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거론됐던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또 제 아무리 '사견'임을 전제로 달았다 해도… 현직에 있는 산업은행 회장이, 실무진과 어떤 사전 논의도 없이, 그것도 수출입은행장 자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통합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기업의 구조조정 선봉에 서서 국책은행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산업은행 회장으로서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더라면, ‘사견’이란 말로 책임을 회피하며 가벼이 언급할 사안은 아니었다.
차라리 산업은행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위원장, 혹은 수출입은행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장관의 언급이었다면 그 무게감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기자들이 모인 공식 석상에서 내놓을 산업은행 회장 발언이라면 이들 부처와 기본적인 논의라도 진행하고 “이러한 밑그림으로 끝까지 추진해보겠다”는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이동걸 회장은 주무부처 장관들과 당사자인 수출입은행까지 모두 패싱(Passing)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그리고 논란이 커지자 입을 닫은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다.
정책금융 통합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어떠한 교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정책금융의 개혁이란 '진정성'을 보여줄 요량이었다면 산은ㆍ수은 통합이란 ‘방법론’부터 이야기하는 건 순서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정책금융 통합이 아니더라도, 그가 발벗고 나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러니 이번 통합 언급은 현직 산업은행 회장으로서 공고한 입지를 누리거나, 혹은 통합이 이뤄질 경우 1순위 통합은행 회장 후보로 자리매김하려는 모습으로 외부에 비춰질 소지가 충분했다.
“모든 조직은 조직의 생리에 따라 조직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을 가진 관료조직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정보를 장악하고 있고, 행정 수단을 독점하고 있으며, 행정 절차에 통달한 우리 관료조직은 많은 경우 스스로의 조직 이기주의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머슴이 주인이 된 나라’ 한겨례 이동걸 칼럼 2014.03.16)
과거 교수 시절 이동걸 회장 본인이 쓴 칼럼과, 비록 농담조이기는 했지만 현재의 “원래 수출입은행 본점 건물이 우리 땅이었다. 뺏겻다니까 다시 찾아와야 할 것 같기도 하다”의 발언을 비춰볼 때, 정책금융 개혁을 위한 큰 그림이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다보니 임기가 1년 남은 이동걸 회장의 조바심이 반영, 엉뚱한 결론이 나온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우조선해양(한국조선해양)의 통합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칼을 댄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이끌어 냈지만 시장의 반응이 차갑다. KDB생명의 경영권 매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다. 아직 대우건설은 손도 대지 못했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한국GM 사태는 다시 재점화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초기엔 산업은행이 주도적으로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장은 이동걸 회장의 과감함에 환호했고, 공(公)은 이동걸 회장에게 돌아갈 상황이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갈 경우 그 책임을 산업은행 임원들 누구에게도 묻기 어려운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장은 내년 9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자연스레 이 과제들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이냐라는 의문과 함께, 임기 만료 이후 이동걸 회장의 행보에도 벌써부터 관심이 모인다. 한때는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 1순위로 거론됐던 그다.
사실 그간 자신했던 모습대로라면 임기 중 펼쳤던 일에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차례 연임을 노려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성공 사례로 기록될지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 또 연임하더라도 험난한 일들이 줄지어 남아 있다.
이왕 산업은행 회장으로 연임을 고려한다면? 통합 산업은행의 초대 회장이란 타이틀에 욕심이 날수도 있다. 대기업 구조조정 성공, 정책금융기관의 통합을 이끌어 두마리 토끼를 잡은 회장으로 남을 수도 있다. 정책금융의 창구가 단 하나의 기관으로 일원화할 경우, 통합 산업은행의 수장은 금융당국 장관급 인사에 버금가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현 정부와 코드가 일맥상통하는 이동걸 회장에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다.
다만 산은ㆍ수은 통합론에 대해 금융당국 수장이 보인 부정적인 모습을 감안할 때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낮아진 모양새다. 자칫 이번 논란이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이동걸 회장이 정말 임기 이후를 벌써부터 그려보고 있다면, 통합 산업은행 회장이 아니더라도 그가 도전하면서 새로이 노릴 자리도 거론된다.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로, 장관급 고위 공무원의 도덕성에 대한 요구는 더 커졌다. 하지만 민간 금융회사 수장들은 상황이 다르다. 실제로 올해부터 내년까지 금융권의 화두는 단연 금융지주회사 수장의 교체다.
성과여부는 별개로, 이동걸 회장은 산업은행 회장으로서 존재감은 나타냈다. 한국의 정책금융을 걱정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도 정부에 충분히 전달했다. 때마침 이동걸 회장 임기만료 무렵과 비슷한 내년 11월20일에 한차례 연임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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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