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공격적으로 인력 늘렸는데...시장은 반대
리츠엔 그나마 기대 걸어볼 만...과당경쟁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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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요맘 때만 해도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거의 6년만에 기업공개(IPO) 시장 규모가 7조원을 넘어섰고, 조 단위 초대형 거래가 잇따라 예고됐다. 주요 증권사들은 앞다퉈 관련 인력 확충에 나섰다. 이후 매년 연말만 되면 '내년 IPO 시장은 역대 최대 예고'라는 헤드라인이 미디어를 수놨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다시 보릿고개였다. 구인난에 어렵게 모셔온 인력들을 놀릴 순 없으니 일단 투자를 집행하고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을 상장시키며 2년간 버텼지만, 내년도 기약이 어려운 상태다.
올해 초부터 3분기 말까지 IPO 전체 공모 규모는 이전상장 및 스팩을 제외하고 1조7800억여원에 그쳤다. 올해는 '4분기 특수'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연간 전체 공모 규모는 2조원대에 머물 전망이다. IPO 시장은 사실상 2012~2013년 이후 6년만에 2년 연속 연간 2조원대를 기록하며 침체기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2017년 말 이런 상황을 예상한 IPO 시장 관계자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 당시만 해도 2018년 코스피지수 3000, 코스닥지수 1000이 코 앞이었다. 유통시장의 활기참과 성장주에 대한 수요가 IPO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호텔롯데·현대오일뱅크·SK루브리컨츠 등 조 단위 공모 대어(大魚)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었다.
이는 조직 구성에도 반영됐다. 대부분의 주요 증권사가 2017~2018년 사이 IPO 관련 조직과 인력을 확충했다. 삼성증권은 10여명 수준이던 관련 인력을 공격적으로 늘려 현재 30여명 수준의 대조직을 만들었다. 이른바 '빅3'인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도 2개 부서·30명대였던 IPO 실무 인력을 3개 부서·50여명으로 확충했다.
현대증권과의 합병 후 ECM에 승부를 건 KB증권과 은행과의 CIB조직을 무기로 삼은 신한금융투자, 중소형사 IB 중 IPO로 차별화를 꾀한 대신증권과 키움증권까지 공격적으로 인력을 확보했다. 인력 시장에 과장급 실무자의 그림자도 찾기 어려워졌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는 고스란히 부서의 부담으로 되돌아왔다. 빅딜(big deal)이 잇따라 철회 또는 연기되고, 증시가 무너지며 투자심리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성장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태도가 돌아서며 2017년을 전후해 '혁신기업'에 대한 영업 강도를 높였던 증권사들은 상장을 시키지도, 손에 쥐고만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한 중견 증권사 IPO 부서장은 "업황 전망이 좋다 좋다 해서 사람을 더 뽑았고 회사에서도 비교적 높은 업무 목표를 줬는데 다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며 "내년 전망이 좋다면 버티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인력 규모를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2015년을 전후로 IPO 부서의 영업 형태는 수수료(fee) 기반 비즈니스에서 자기자본투자(PI) 비즈니스로 무게추가 급격히 이동했다. 코스닥 기업의 경우 공모 규모의 일부를 대표주관사가 의무 인수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는데, 여기서 추가로 상장 전 미리 5% 미만의 지분을 투자해놨다가 추후 차익을 내는 수익 구조가 정착한 것이다.
2017년까지는 이런 수익 구조가 매우 성공적이었다. 2015~2017년 상장한 신규 상장사들은 대부분 주가가 공모가 대비 상승했다. 2018년 정부가 코스닥벤처펀드에 공모주 우선 배정이라는 특혜를 준 것도 당시 공모주 상장 이후 평균 수익률이 50%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2018년 장이 꺾이며 PI 수익도 기대가 어려워졌다. 지난해 신규 상장한 공모주의 절반 가량이 연말 기준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했다. 상장 기업 수가 줄고, 상장 해도 1년 뒤 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니 자연스레 IPO 부서의 기대 수익도 꺾였다.
스팩 상장이 늘어난 건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연초 이후 3분기까지 상장을 완료한 스팩 수는 16곳으로, 연말엔 20곳 돌파가 사실상 확실시된다. 복수의 스팩 상장이 허용된 2015년 이후 최대치다.
스팩은 상장 후 3년 간 인수합병(M&A)을 위한 쉘(피인수회사 후보)이 되는데, 상장 과정에서 100억~200억원을 공모해 이 중 2억원 안팎을 상장 주관사가 수수료로 챙긴다. 당장 실적이 급할 때 IPO 부서의 '회생줄'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스팩 상장이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직상장 시장이 위축됐고, IPO 부서들이 실적 압박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한 배경이다.
그나마 국내 증권사 IPO부서들은 외국계 증권사들의 영향력이 약해진 점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대규모 해외 공모가 필요한 빅딜이 사라지며 자연스럽게 외국계 증권사들이 발 붙일 곳도 쪼그라든 것이다. 당장 지난해와 올해 외국계 증권사가 주관사로 참여한 공모 거래가 단 한 건도 없다.
자연스레 국내에 진출해있는 외국계 증권사들은 메자닌·블록딜 등 IPO 외 다른 주식자본시장(ECM) 영역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3월 NH투자증권에서 10년 이상 IPO 경력을 쌓은 하진수 본부장을 영입한 JP모건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내년 사업계획을 세워야 하는 4분기를 앞두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기댈 곳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부동산투자회사(리츠;REIT's) 공모 상장 정도다.그러나 리츠는 부동산운용사가 거래의 주체인데다, 자산의 가치로 공모가가 정해지는 등 특징 때문에 증권사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다.
한 대형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리츠는 기본적으로 공모 규모가 큰데다 신한알파리츠가 1.9%, 홈플러스리츠와 롯데리츠가 1% 수준의 비교적 후한 수수료율을 책정해 수익성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리츠 상장이 더 활성화되고 증권사간 수수료 경쟁이 시작되면 리츠 상장 시장도 금세 수익성 없는 레드오션(초경쟁시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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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09월 3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