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단 우려로 ‘산업은행 CB 상환’ 명시적 표현은 빠져
“금융지원 금액인 최소 8000억 신주발행” 문구 넣어
사실상 '영구채 돌려 받겠다' 의도…후보들 묵시적 상환 의무
-
산업은행이 17일 아시아나항공 인수후보들을 대상으로 본입찰 안내서를 배포했다. 내달 7일 최종 입찰이 예정돼 있다.
당초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에 지원한 영구 전환사채(CB)를 상환하는 조건을 본입찰 안내서에 명문화하는 작업을 추진했으나, 최종적으로 해당 내용을 제외했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의 신주 인수 규모를 산업은행이 지원한 8000억원으로 설정하면서, 사실상 영구채를 상환하는 조건을 달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4월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5000억원 규모의 하이브리드 CB를 발행, 3000억원의 스탠바이론(보증신용장)을 발급했다. 30년 단위로 무제한 연장되는 영구채 성격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에 반영됐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자금지원을 통한 재무안정이 목적이었지만, 반대로 경영권 매각을 담보하는 족쇄로도 작용해왔다. 산업은행이 자금지원의 대가로 요구한 박삼구 회장의 퇴진,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이 순서대로 진행됐다.
산업은행은 본입찰 안내서에 “대상신주 인수 대금 총액의 최저한도를 금융지원 실행금액인 8,000억원으로 설정하였다”고 명시했다.
애초에 산업은행은 영구채에 대한 상환 조건을 안내서에 넣을 계획이었으나 자문단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를 수용, 최종적으론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산업은행이 영구채 상환 의무 조항을 포함했다면 보유한 채권의 주식 전환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영구채가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재무제표상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큰 논란이 불거질 상황이었다.
대신 산업은행은 이번 본입찰 안내서에 “산업은행 영구채를 상환하라”는 명시적인 단어만 제외했을 뿐, 사실상 신주 발행을 통해 지원 자금을 모두 회수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주요 인수후보들은 매각측으로부터 산업은행의 과거 지원 자금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본입찰 당일 신주 발행과 산업은행 영구채 상환에 대한 보증을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수후보자들이 이미 신주 발행을 통해 영구채를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며 “매각 측에서 인수후보자들에게 본입찰 때 지원 자금 상환에 대한 커밋먼트(보증)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인수를 위해서는 8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신주 인수가 단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정해지면서 금호산업 등의 구주에 대한 가치 평가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매각이 구주 매각과 신주 발행이 병행되는 조건이다보니, 신주의 발행 비율이 높아질수록 구주에 매길 가치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다.
매각 발표 이후 치솟았던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이미 액면가 5000원에 근접해 인수후보자들의 부담은 이전에 비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올해 말까지 어떠한 방식이든 M&A를 종결해야하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반대로 산업은행은 그리 급하지 않다.
구주 가격에 욕심을 내다가 자칫 매각에 대한 권리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인 금호그룹과 산업은행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에서 결국 산업은행의 의중이 대거 반영될 소지가 크다. 인수제안서를 제출할 때 신주의 인수금액이 8000억원 이하일 경우 중대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신주 발행에 대한 비율을 최대한 높인 후보자들에 가점이 주어지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자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산업은행의 입맛에만 맞는 후보자를 선정했다는 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 박삼구 회장과 오너일가를 제외하고도 핵심 계열사를 떼내야 하는 금호산업의 주주들 입장에선 구주 매각 가치가 쪼그라드는 것에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구주의 가격을 높게 받지 못한 금호그룹 임직원들의 배임 문제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
사실 굳이 신주발행 규모를 미리 확정하지 않아도 2021년부터는 이자에 대한 스텝업(Step-up; 금리 조정) 조항이 포함돼 9.5%의 금리가 책정되는 고금리 채권을 떠안고 갈 인수후보자는 많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수후보자들의 전략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산업은행이 자금 회수에만 초점을 맞춰 거래를 진행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간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해 "산업은행은 절차의 공정성에만 관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17일 20: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