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GV80' 수익성 악화 우려에도 현지생산 어려워
시장수요 탄력적 대응 위해 노조 동의 필요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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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입 자동차·부품에 대한 25% 고율 추가 관세를 부과할지 결정한다. 현대차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25% 추가 관세는 수익성에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지난 5월처럼 관세 부과 결정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 카드를 전략적으로 꺼내들 가능성은 여전하다. 현대차엔 불확실성이다.
미국 시장은 현대차 한해 수출에서 4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한다면 수출 차종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거나, 다른 부문에서 수익성을 끌어올려 관세로 인한 판매량 감소를 보전해야 한다.
주요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이 같은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거점별 판매전략을 세우고 전략차종의 생산체계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거점을 변경하거나, 인기 차종의 생산량을 늘려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는 힘든 모습이다. 팰리세이드가 대표적 사례다.
올해 초 현대차가 출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는 국내와 미국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수요가 몰렸지만, 인도지연 기간이 길어지며 판매 실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생산량으로 미국 시장 수출까지 감당해야 하고, 출고를 앞당기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려면 현대차와 노조가 합의를 거쳐야 한다.
10월 현재 팰리세이드의 국내 대기고객은 3만5000여명 수준이다. 지난 9월 국내 판매량(2241대)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금 주문하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인도받을 수 있다. 노사가 증산에 합의했지만, 미국 시장에서 팰리세이드 판매가 본격화한 이후 국내 판매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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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리세이드의 국내 및 미국 시장 배정물량은 지난 5월을 기점으로 3 대 7 수준을 이어오고 있다. '내수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현대차로선 미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중대형급 이상 SUV의 인기가 많은 미국 시장에서 판매점유율을 확보해야 하고, 미국 현지 판매 법인의 딜러 이탈 우려도 생각해야 한다.
팰리세이드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면 국내시장 대기열 뒷줄 고객을 놓칠 가능성도 크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경쟁사 외에 현대자동차그룹 내부에서도 신차 출시 일정이 이어질 예정"이라며 "인도지연 기간이 9개월을 넘어서면 뒷줄은 다 놓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급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감수하고도 판매에서 손해까지 봐야 하는 모양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5개 공장으로 나뉜다. 각 공장이 3~4개 차종을 생산하는 혼류생산 방식이다. 팰리세이드는 현재 한 개 공장에서 생산해 국내와 미국 시장으로 유통된다. 현대차는 특정 차종의 수요가 몰리면 ▲다른 라인에서 생산하거나 ▲인력을 전환배치하거나 ▲비인기 차종의 생산을 줄이거나 ▲해외 현지생산을 하기 위해서 모두 노조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현대차는 과거 단종 차량 인력을 전환배치하는 데도 애를 먹어 왔다. 지난 10년 동안 어떤 라인은 일감이 없어 교육을 받는데, 다른 라인에선 연일 특근하는 기현상이 수차례 보도됐다. 그때마다 현대차 노조 측은 "불규칙한 생산물량은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임금으로 이어진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1월에는 GV80도 출시된다. 제네시스의 첫 SUV 모델로 미국 시장 반전 카드로 꼽히는 현대차 전략차종이다. 현대차는 2015년 제네시스 출범 후 모든 차종을 울산공장에서 제작해왔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은 현재 엘란트라(아반테), 쏘나타, 싼타페 총 3종을 생산하고 있다. GV80의 국내 및 미국 시장 흥행이 예상되는 가운데, 팰리세이드 인도 지연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글로벌 완성차시장 성장세가 둔화한 상황에서 현대차 경쟁력 제고를 위해 생산유연성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완성차시장 내 점유율을 높이고, 성장잠재력이 높은 지역에 현지화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수익성이 낮은 차종의 비중을 줄이고 수요가 꾸준한 상위급 차종 위주로 생산을 조정해 포트폴리오를 개선했다.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중형 SUV를 생산하는 인디애나 공장과 픽업을 생산하는 멕시코 공장의 증설을 결정했고, 닛산도 레저용 차량(RV)에 집중했다.
판매 거점별로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강조되는 시기다. 미국의 관세 부과나 유럽의 환경규제, 미래차 기술의 급부상 등 상황에 따른 생산과 판매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현대차가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업계 한 연구원은 "주요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원가절감에 최적화했고, 업체별 완성차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며 "현대차가 생존을 위해 경직된 생산체계 문제를 안고갈 수만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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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0월 21일 17:5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