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지분 확대 가능성…10%면 캐스팅보트
정기 인사 한달 당겨질 듯…내년 주총 전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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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지분 승계는 일단락 됐지만 확실한 후계 구도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오너일가를 비롯해 델타항공과 KCGI, 여기에 반도건설까지 지분 매입에 합류하며 한진그룹 지배구조는 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본부장, 조현민(조 에밀리 리) 전무,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한진칼 보유 지분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 앞서, 예년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는 정기 인사가 전초전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진그룹 오너일가는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지분을 법정 상속 비율(배우자 1.5, 자녀 1)대로 모두 물려받았다. 조양호 전 회장의 대한항공 지분(0.01%)과 정석기업 지분(20.64%) 모두 상속절차가 완료됐다.
장자 승계 원칙을 따르는 여타 기업과 달리 한진그룹은 조양호 전 회장의 지분을 각각 동일한 비율대로 나눠 조 회장 남매의 보유 지분은 거의 유사하다. 조원태 회장이 확실한 경영권을 확보해 그룹을 끌고가기엔 다소 부족해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오너 일가가 조원태 회장의 선임 과정에서 엇박자를 연출한 점도 힘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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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전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이사장은 이번 상속을 통해 아들인 조원태 회장에 버금가는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오너 일가의 불협화음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그룹 경영권 분쟁이 다시 발발하면 이 전 이사장 지분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이명희 씨가 추후 세금(상속세 또는 증여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진칼 주요 지분을 확보하면서 그룹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라며 “조원태 회장 및 조현아 씨, 조현민 전무 등 그룹이 확실한 후계자를 낙점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명희 씨가 밀어주는 자녀가 추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반도그룹, 이명희 전 이사장의 우군?…지분 확대 가능성도
지난달 반도그룹은 한진칼 주요 주주 명부에 깜짝 등장했다. 현재 지분율은 5% 남짓이지만, 추후 장내 매집을 통해 지분율을 끌어올릴 여지도 있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에선 한진칼이 최근 기타법인을 통한 주식 매수가 집중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반도그룹은 공시를 통해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라고 밝혔다. 다만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한진칼의 특수한 상황을 비춰보면 영향력 행사를 위한 지분 확보 차원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반도그룹이 오너 일가 중 한 곳에 힘을 실어주게 되면, 경영권 향방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반도그룹이 지분을 10%까지 늘리는 등 추가 지분 투자를 한다면 델타항공의 지분율인 10% 수준까지 비슷하게 맞추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델타항공(10%)이 아직까진 조원태 회장(6.52%)에 우호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 이사장 또한 반도그룹을 통해 유사한 수준의 우호지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정기 주총 또는 임시 주총에서 반도건설 지분이 이명희 전 이사장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면, 이 전 이사장의 영향력은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증권사 항공산업 담당 연구원은 “과거의 한진그룹 수주 건, 이명희 씨 집안 배경 등을 고려할 때 이명희 씨와 반도건설이 굉장히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조원태 회장의 우군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이 등장한 시점에서, 이 전 이사장이 우호지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희-반도그룹’ vs ‘조원태-델타항공’ vs ‘KCGI’ 모두 16%대 수준의 비슷한 지분을 확보한 상황에서 이 전 이사장이 조현아-조현민 자매의 손을 들어준다면 현재의 경영권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반도그룹이 복귀 의지를 드러낸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무와 연합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반도그룹이 어떤 쪽과도 연합하지 않는다면, 그룹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내세워 실리를 챙길 수도 있다.
어떤 시나리오도 예단할 수 없을 만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이명희 전 이사장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점, 반도그룹이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는 점은 모든 시나리오의 기저에 깔리게 된다.
안팎으로 경영권 보호해야…내년 주총에 쏠리는 눈
시장의 관심은 벌써부터 내년 3월에 있을 주총으로 향하고 있다. 내년 3월엔 조원태 대표이사 회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올해 주총에서 논란이 됐던 ‘사내이사 요건 강화 정관 변경’ 안건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부결됐던 점을 고려하면, 내년 주총도 수월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델타항공의 표심의 향방, KCGI의 주주제안 등도 관전 포인트지만 무엇보다 오너 일가가 한 목소리를 낼 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미 그룹 내부에서는 임원들의 ‘줄서기(?)’가 시작됐다는 후문이다.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조원태 회장, 조현민 전무, 이명희 전 이사장 등 누가 실권(實權)을 잡을 것이냐에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내부 임직원들도 아직 그룹의 후계구도를 단정지을 수 없어 오너 일가 구성원 별로 라인이 생기는 중”이라며 “조원태 회장이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경우 그룹 실무진을 장악할 능력이 있는지 또는 오너일가가 조원태 회장과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힘을 실어줄 의향이 있는지도 아직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한진그룹 임원 인사는 주총 전초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예년보다 한달여 앞당겨 정기인사를 계획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각 오너일가 구성원 별로 흩어진 핵심 임원들이 어떤 주요 보직을 차지하느냐가 초점이다.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 감시’ 및 ‘기업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삼은 KCGI의 행보도 변수다. 오너일가와 손을 잡고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란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이는 행동주의펀드를 표방한 KCGI의 당초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점점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KCGI가 기존의 투자 명분을 유지하든지, 실리를 챙기든지 등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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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07일 14:1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