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ETF에 보험·은행 자금 쏠리며 '사상 최고가'
바이오와 비슷...'투자할 곳 없는 국내 금융시장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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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 부동산투자회사(REIT's;이하 리츠) 주가가 과열 국면에 들어섰다. 주목을 받은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밸류에이션(가치평가) 척도로는 세계 1위의 시장이 됐다. 2017년 하반기의 바이오 시장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의 신고가 경신은 보험·은행을 위시한 대체투자 자금이 패시브 펀드로 밀려들며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꼬리'인 패시브 펀드가 '몸통'인 주가를 흔든 것이다. 패시브 자금이 효율적 가격 산정을 방해하는 전형적인 '패시브의 역설'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주요 상장 리츠 주가는 일제히 지난 7일 역사적 최고점을 경신한 후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리츠의 대표적인 밸류에이션 지표인 주가 대비 운영자금(P/FFO;일반 기업의 PER과 대응) 척도는 글로벌 평균의 2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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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 대장주'로 꼽히는 신한알파리츠의 지난 7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4400억여원에 달했다. 올해 예상 운영자금(FFO)이 131억원임을 감안하면 P/FFO는 34배에 달한다. 이후 이틀간 조정을 거친 현 주가 수준에서도 P/FFO는 30~31배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이리츠코크렙, 롯데리츠 등 다른 주요 상장 리츠의 주가도 P/FFO 20~30배 안팎까지 오른 상황이다. 국내 상장리츠 평균 P/FFO는 20~23배 수준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일본 주요 상장 리츠의 P/FFO가 12~18배 수준임을 고려하면 국내 리츠 주가는 상당히 고평가돼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주가 급등은 불과 1년새 일어난 일이다. 신한알파리츠의 지난해 상장 당시 P/FFO는 15배로 글로벌 상장 리츠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자금이 리츠로 쏠리며 주가가 급등했고, 결국 세계에서 제일 비싼 수준까지 온 것이다.
수익성은 크게 훼손됐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배당을 가정할 때, 신한알파리츠의 현 주가 수준에서 시가배당률은 2.7%에 불과하다. 일부 저축은행의 1년 정기예금 금리인 2.5%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수준이다. 지난해 시가배당률 5.8%와 비교해도 크게 낮아졌다.
국내 주요 리츠들은 이미 지난 9월 한 차례 '고가 논란'이 일었다. 이후 한동안 주가가 안정되는 기조를 보였다. 9월 초 조정 이후 한동안 보합 선에서 움직였다.
리츠 주가가 다시 튀기 시작한 건 10월 중순부터다. 금융권에서는 원인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지목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상장리츠 투자 ETF인 'TIGER 부동산인프라고배당'에 보험·은행 자금이 급격히 밀려들며 대규모 수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리츠엔 장기투자가 많아 유동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주가 급등을 부채질한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7월 중순 상장 이후 9월 말까지 큰 변곡점이 없던 해당 ETF는 10월 이후 발행수익증권수가 크게 증가했다. 10월 이후 불과 5주간 무려 1080만증권이 신규 설정됐다. 9월말 기발행증권수(880만증권)의 두 배가 넘는다. 이 중 11월 들어 1주일간 유입된 규모만 450만증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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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해당 ETF의 주요 매수 주체는 보험과 은행으로 확인됐다. 10월 이후 보험사는 390억원, 은행은 46억원어치의 ETF를 자산으로 편입했다. 특히 보험의 경우 전체 순매수의 거의 3분의 2인 230억원이 11월 첫 주에 집중됐다. 이 자금의 힘이 주요 리츠의 '사상 최고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10월 들어 채권시장이 흔들리며 일부 보험사들이 채권을 매각해 이익을 실현했는데, 이 자금의 일부가 리츠 시장에 흘러들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패시브 자금인 ETF는 대상이 되는 현물의 주가를 추종해야 하는데, 오히려 주가를 쥐고 흔들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장리츠에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ETF는 아직까지 'TIGER 부동산인프라고배당' 하나 뿐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연내 'TIGER 부동산인프라채권'(가칭) ETF를 추가 상장할 예정이다. 이후 다른 운용사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는다면 '패시브의 역설'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국내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운용사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투자할만한 상품군이 극히 제한된 국내 금융시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바이오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으로 쏠렸다가 언젠가는 지나갈 유행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새 ETF는 현재 한국거래소 심사를 받고 있는 중으로 언제 상장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연내엔 상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패시브의 역설 관련) 시중자금이 쏠리는 것에 대해 운용사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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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11일 17:30 게재]